10화 보물찾기

그것은 독서처럼 내가 방해할 수 있는 수준의 행위가 아니었다.

by AYEON

“으아, 심심해.”


8월의 휴가를 앞두고 카페는 평소보다 더 손님이 없었다. 모두들 벌써 더위를 피해 멀리 떠나버린 걸까. 나는 두 팔을 길게 쭉, 뻗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남자는 내 맞은편에 앉아 지겹지도 않은지 벌써 몇 시간째 책을 읽고 있었다. 아침에 남자가 틀어놓은 CD는 이제는 순서를 외웠을 정도로 지겹게 반복되었다.


“그렇게 재밌어요?”


나는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로 남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남자가 책 너머로 힐끗, 내게 시선을 던졌다. 나는 남자가 읽고 있는 책의 표지를 다시 확인했다, 괴테의 파우스트.


“심심하면 뭐라도 좀 하든가,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 심심한 게 당연하잖아.”


남자가 힐난하듯 말했다.


“휴가 때는 뭐할 거예요?”


나는 아예 무시할 작정으로 남자에게 질문했다. 남자는 한숨을 쉬며 결국 무거운 책을 내려놓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설마 집에만 계속 있을 건 아니죠?”


“집에만 있을 거야.”


“시시하네.”하고 중얼거리며 나는 다시 테이블에 엎드렸다. 남자가 빈 찻잔을 들고 일어서며 내게 물었다.


“보물찾기라도 할래?”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나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보물찾기요?”


찻잔을 헹구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 거야, 말 거야?”

“하, 할래요. 그런데 대체 뭘 찾아야 하는데요?”


그때도, 그 별장에서도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보물찾기를 할 생각이라고. 그리고 나한테는 보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그 말인즉, ‘그것‘이 남자에게는 진짜 보물이라는 말인가? 호기심이 일어 일단은 보물찾기에 동참하기로 했다.


“홈즈 선생, 뭐 좀 떠오르는 게 있으신가?”


내 말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사뭇 진지하게 덧붙였다, 글쎄.


“야, 힘 좀 제대로 써봐!”


글쎄, 라고? 정말로 글쎄, 였다.


“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거든요!”


나는 끙끙거리며 책장을 옮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힘이 이것밖에 안 돼? 생긴 건 천하장사 뺨치게 생겨가지고는.”

“이봐요, 그쪽도 만만찮거든요? 무슨 남자가 이런 것도 혼자 못 들어서 여자한테 도와달라고 해요? 약해가지고는-”

“야, 아무리 힘이 센 남자도 이런 걸 혼자 옮기는 건 무리거든? 아, 힘 좀 줘!”


티격태격하며 겨우 책장을 원래 위치에서 두 뼘 정도 앞으로 옮긴 후 완전히 지쳐버린 우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는 책장 뒤를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3번째 실패였다.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찾을 거면 도면은 왜 들여다봤담? 난 또 추리라도 하는 줄 알았잖아요, 홈즈 선생은 무슨! 몰라요, 난 더는 못 해, 힘들어 죽겠단 말이에요.”


나는 엄살을 피우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남자는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다음 목표물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시선이 커다란 책장에 닿는 것을 보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저건 진짜 무리예요, 절대 안 돼!”

“자, 어서 제자리로 다시 옮겨두자.”


남자가 방금 힘들게 옮긴 장식장의 한쪽 모서리를 잡으며 나를 재촉했다. “아아, 정말 힘든데.”라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나는 다른 한쪽 모서리를 잡았다. 응차, 하고 기합을 넣으며 우리는 다시 힘겹게 장식장을 원래의 위치로 옮겨두었다.


“이건 정말 무린데, 그러다 허리 나갈지도 몰라요. 남자의 생명은 허리라고-”

“시끄럽고 빨리 들기나 해.”


나는 입을 삐죽이며 묵직한 책장의 한쪽을 잡았다. 생각보다 책장은 훨씬 무거웠고 남자도 얼굴까지 빨개질 정도로 애를 먹고 있었다. 마침내 주먹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틈이 벽과 책장 사이에 생겨났다. “더는 못 해요! 절대!”하고 손을 내저으며 나는 물러섰다. 남자는 그 빛도 잘 들지 않는 틈새로 고개를 들이밀어 본다.


“뭐가 좀 보여요?”


남자가 한참 들여다보기에 나도 그 좁은 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보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반대편에서 벽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남자의 눈동자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네, 이번에도 실패인가?”


나는 손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별안간 책장에서 책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니, 책들을 바닥으로 집어던지는 행동에 가까웠다. 나는 영문을 몰라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왜, 왜 그래요?”

“이것 좀 옮기자, 도와줘.”


도와줘, 그런 말을 하다니. 절박한 남자의 표정에 나는 좀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책장의 한쪽을 잡았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힘을 주자 책장이 움직였다. 남자와 나는 이제 제법 호흡이 잘 맞았다, 비록 힘쓰는 일에 한해서였지만.


“아이고, 허리야.”


나는 허리를 두드리며 엄살을 피웠다. 하지만 남자는 우두커니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시선을 따라 나도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 책장에 가려있던 벽에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나도 좋아, 라고.


“이, 이거 뭐예요?”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그곳에 자신과 그 글자밖에 없는 듯 온통 그 글자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그것은 독서처럼 내가 방해할 수 있는 수준의 행위가 아니었다. 나는 말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남자처럼 가만히 그 벽에 그려진 글자를 바라보았다. 그 대답의 주인공은 틀림없이 이 남자이고, 이 대답을 써놓은 사람은 아마도 이유정일 것이다.


“하, 정말….”


한참을 멍하니 그 대답을 보고 있던 남자가 마침내 토해내듯 중얼거렸다. 나는 남자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서, 설마 지금 울고 있는 건가?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처럼 가만히 숨을 죽였다.


“그 녀석은 정말….”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나는 문득 수진이의 말이 떠올랐다. 아직 다시 누군가를 좋아할 준비가 안 되었다고, 분명히 남자는 그런 말로 수진이를 거절했다고 했다. 아, 그래, 그런 것이다. 이 남자는 아직도 그 여자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7월의 마지막 오후가 남자의 나지막한 흐느낌과 함께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원래대로 옮기자, 이제.”


한참을 흐느낀 후 남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내게 말했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그럼?”

“힘들게 찾았잖아요?”

“됐어, 저딴 낙서-”


대답은 책장에 다시 가려졌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책을 정리했다. 우리 막 정리를 끝냈을 무렵 지혜 언니가 전단지로 부채질을 하며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완전 푹푹 찌는 날씨야.”하고 언니는 에어컨 앞으로 달려갔다.


“으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얼마나 더운지 몰라, 바깥은.”

“그래요? 시원한 물 한 잔 드세요. 여기요.”

“고마워, 다아씨.”


언니는 물을 단번에 꿀꺽꿀꺽, 마셨다. 밖이 덥기는 엄청 더운 모양이었다. 그제야 더위가 좀 가신 언니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네? 훨씬 좋네, 여름 분위기도 나고.”


나는 동의한다는 듯 웃어 보였다. 언니는 던지듯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후 전원을 켰다. 위이잉- 소리를 내며 노트북 화면이 깜빡였다. “주문은-”하고 내가 묻자 언니는 “평소처럼 부탁해.”라고 대답했다. 평소처럼, 그 말에 왠지 가슴이 찡했다. 남자는 벌써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바에 기대서서 남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짓말쟁이. 내가 있다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간절했으면서-




언니가 저녁 7시가 조금 넘어서 “도저히 안 되겠어!”라고 히스테릭하게 외치고 돌아간 후로 손님은 더 이상 없었다. 나는 먼저 퇴근할 준비를 시작했다. 남자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은 조금 불안했지만, 별 다른 핑곗거리가 없었다. 솔직하게, 그쪽이 걱정이 된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먼저 갈게요, 일찍 들어가요.”


남자는 다시 파우스트를 들고 괴테와 씨름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를 줄 알아, 몇 시간째 같은 페이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서.


“휴가 잘 보내고 수요일에 봐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였다.


“우리 같이 어디라도 가지 않을래?”


나는 우뚝, 멈추어 섰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저 남자?


“뭐, 딱히 너도 할 일이 없다면.”


남자가 덧붙였다, 파우스트 대신 나를 들여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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