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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EGGIE Dec 09. 2022

알레르기 Free 그림 재료

알레르기 때문에 선택한 재료와 재료에 대한 이야기

 나는 다양한 물질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피부와 몸이 약해 어린 시절 결벽증에 걸리기도 했다. 다 같이 음식을 먹어도 나만 아팠고, 공공장소에 오래 머무르면 반드시 감기에 걸렸다. 햇빛 알레르기도 있어 야외활동을 하면 한참을 고생했다. 청소년기를 보내며 알레르기를 피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미술을 시작하고 새롭고 강력한 알레르기를 맞닥뜨렸다.


 유화물감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독한 화학물질에 노출되었다. 처음 유화 물감을 사용했을 때 피부가 전부 뒤집혔다. 부재료인 테레빈유가 몸에 닿으면 피부가 간지럽고 부풀어 올랐다. 테레빈유에 첨가된 리모넨 알레르기가 있었다. 독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유화 물감은 점성이 높아 어디든 묻으면 지우기도 어려웠다. 손이나 옷에 묻으면 기름을 사용해 지워질 때까지 문질러야 했다. 가뜩이나 약한 피부는 건조해졌고, 옷의 수명은 줄었다. 미대 실습실은 환기가 잘 되는 편이었지만, 스무 명이 동시에 유화를 그리면 환풍기는 무용지물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밖으로 뛰쳐나가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한 해 동안 병을 달고 살았다. 교수님께 조언을 구했고, 새로운 재료들을 추천 받았다. 수채화, 구아슈, 아크릴 같은 수용성 재료였다. 물로 잘 닦이고, 독성도 적으며, 냄새도 없었다. 나는 아크릴을 자주 사용했다. 아크릴은 물의 양을 조절해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번지는 효과부터, 유화처럼 두껍게 물감을 쌓는 표현까지 가능했다. 풍경화를 그린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수채화와 유화를 비교해보면 분명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아크릴은 장점이 많다. 마르는 속도가 느린 유화에 비해 빠르게 마른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그릴 수 있다. 온도나 습도에 강해 변색과 균열이 적어 오랜 시간 보존이 가능하다. 알레르기 때문에 사용했지만, 빠르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아크릴은 짧은 역사에도 끊임없이 발전했다. 1950년대에 발명되어 1960년대에 널리 이용되기 시작했다. 작품 한 점에 1020억원을 호가하는 데이비드 호크니는 60년대부터 아크릴을 사용한 그림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유화에 비해 발색과 질감이 떨어져 단점을 보완해야 했다. 물감회사 Golden Artist Colors는 느리게 굳는 아크릴을 개발했다. 유화의 점도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아크릴에 비해 마르는 속도가 늦어 젖은 물감 위에 덧칠해 그림을 그리는 Wet on Wet 기법도 가능해졌다. 아크릴과 보조제를 혼합해 두께감과 반짝임도 조절할 수 있다. 네온사인처럼 현란한 형광이나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야광 아크릴도 생겼다.


 새로운 재료를 연구하면서 그림 그리는 방식도 바뀌었다. 내 작품 중 ‘소용돌이 시리즈’는 두꺼운 질감을 표현해야 했다. 자연 속에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번개, 유성, 빗방울을 수집해 ‘소용돌이 숲’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사물의 속도를 보여주기 위해 물감을 손가락으로 휘휘 돌려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묽은 아크릴은 입체적인 소용돌이를 표현하기에 부족했다. 아크릴과 섞어 두꺼운 질감을 내는 모델링 페이스트라는 보조제를 찾았다. 이로인해 그림에서 튀어나온 소용돌이를 만들 수 있었다.

‘소용돌이 시리즈’의 튀어나온 소용돌이 부분

 알레르기 때문에 유화를 그리지 못했다. 유화를 포기할 때, 내 작품이 가벼워 보이거나, 전통성이 떨어져보이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새로운 재료인 아크릴이 유화보다 내 그림에 잘 어울렸다. 물감의 층을 쌓는 기술과 빠른 속도를 표현하기에는 아크릴이 유용했다. 재료를 바꾸며 창의적 기법도 가능했다. 알레르기 덕분에 좋은 재료를 선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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