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나라의앨 May 28. 2022

영어면접을 앞둔 당신에게

면접위원의 눈으로 본 영어면접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채용시험 영어면접위원으로 참여하곤 한다. 사실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고 ‘평가’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 개인적으로 매우 관심 있는 분야의 한 공공기관에 영어 면접위원으로 위촉되어 다녀왔다.


기관마다 영어면접 진행 방식이 다르다. 어떤 곳은 면접을 한 곳에서 20분 정도 진행하는데 15분은 한국어로 심층면접을, 그리고 마지막 5분 동안 영어면접을 진행한다. 이번에는 아예 다른 방에서 영어면접을 별도로 진행했다. 두 가지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다.


전자의 경우, 한국어로 면접이 진행되는 동안 지원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각 지원자의 배경이나 관심사, 그리고 영어 구사력에 맞는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지원자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영어 구사력 평가에 필수적인 것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불필요한 색안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게다가 한국어 면접이 진행되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이 상당히 길다는 단점이 있다.


후자는 일단 영어면접만 진행하는 것이다 보니 면접위원 입장에서 기다리는 시간 없이 쭉쭉 면접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리고 오롯이 ‘영어’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 똑같은 질문을 수십 번 반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역동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다른 요소를 모두 배제하고 영어 구사력만 평가해야 한다면 후자가 더 공정하고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영어 면접위원은 내부 원어민 에디터 한 명과 외부 전문가 한 명, 이렇게 총 두 명이었다. 책상에는 ‘면접위원’ 명찰과 지원 서류, 노트북, 필기구, 간식 등이 놓여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지원했는지 궁금한 마음에 지원 서류를 몇 장 넘겨 보았다. 블라인드 채용이라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지만 경력사항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이제 마지막 학기에 재학 중인 대학생부터 석사 졸업생, 그리거 이미 직장생활을 10년 가까이 해온 지원자도 있었다.


얼마 후 같이 면접위원으로 참여한 원어민이 도착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어떤 방식으로 면접을 진행할지 상의했다. 원어민 면접위원은 책상에 놓인 서류와 물건이 뭔지 물어보고는 “I don’t need this(난 이거 필요 없는데)” 라며 보지도 않고 치워버렸다.


순간적으로 헉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상식적으로 면접으로 보러 들어오는 지원자는 여기 앉아있는 두 사람이 면접위원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고 우리는 각 지원자에게 원어민은 내부 에디터이고 나는 외부 전문가로 면접에 참여한다고 소개하기로 했다. 때문에 ‘면접위원’이라고 적힌 명패와 명찰은 불필요한 위화감을 조성할 뿐,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지원서류도 마찬가지였다. 지원자의 영어 구사력을 평가하는 게 목적이니 전공이나 경력은 볼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토익점수도 중요하지 않았다. 주어진 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 사람이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고 그거면 충분한 것. 애초에 지원자의 성별, 나이, 출신학교, 지역 등의 정보가 전혀 없고 심지어 이름이 아닌 번호로 지원자를 구분했다.


그렇다. 지원자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라도 그 사람의 ‘영어 구사력’을 평가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진정 블라인드! 생각해 보면 영어 말하기 시험에서도 수험생에 대한 정보는 일절 제공되지 않은 채 순전히 영어만 평가하지 않는가.


그래서 원어민 면접위원의 쿨함에 나도 동참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깨끗한 책상 위에서 점수 표기를 위한 노트북만 열어둔 채 지원자를 맞이했다.




영어면접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 그리고 지원자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점을 감히 몇 가지 정리해보았다.


1. (뻔한 이야기지만) 긴장하지 말자

한국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한국인 중에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며 자기 생각과 의견을 편하게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면접을 보러 온 지원자의 대부분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다들 정말 많이 긴장한다. 가끔은 긴장한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같이 심호흡을 해주고 싶을 만큼. 긴장하면 아는 것도 생각 안 나고 말이 꼬이고 난리도 아니다. 그럴 땐 솔직하게 긴장했다고 이야기하고 잠깐 숨을 가다듬어도 좋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심층면접이나 임원면접이면 모르겠지만 영어면접에서 그 몇 초 못 기다려 줄 면접위원은 없을 거라고 본다. 천천히 심호흡 몇 번 하고 속으로 파이팅 한 번 크게 외치고 다시 차근차근 말해보자. 뻔하게 들릴지 몰라도 실전에서는 이 마저도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게 사실이다.


2. 제발 외워서 말하지 말자

생각보다 외워서 말하는 지원자가 정말 정말 많다. 준비 과정에서 예상 질문을 뽑아 답변을 적어보고 스크립트를 작성해보는 것은 좋은 자세라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글과 말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데에 있다. 글을 외워서 말로 하면 상당히 어색하다. 또 한 가지 큰 문제는 동문서답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답은 하는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질문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대부분 너무 티 난다. 표현을 외우는 건 좋지만 문장과 문단으로 통으로 외우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3. 많이 말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영어 면접에서 끊임없이 말을 많이 하는 지원자들이 있다. (이건 비단 면접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발표를 할 때도,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가.) 술술 말하는 것 같은데 가만히 들어보면 외운 것을 읊고 있거나 시간을 채우기 위해 아무 말 대찬치를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말도 그렇지만 영어도 결국엔 콘텐츠다. 많이 말하는 것보다는 핵심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면접은 단순히 질문하고 답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대화다. 면접 질문도 얼마든지 추가되고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말을 수려하고 길게 많이 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말하는 것이 훨씬 내용 전달에 있어 훨씬 효과적이다. 단, 말하는 속도가 너무 느려도, 너무 빨라도 전달력이 떨어지니 적절하게 속도 조절하며 말하는 연습을 하자.



4. 기본적인 용어와 표현은 익혀두자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기관에서 쓰는 기본적인 용어와 표현은 자연스럽게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숙지하자. 적어도 이 회사/기관이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정도는 영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원하는 회사/기관의 영문 홈페이지 정도면 충분하다.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고 표현을 정리해서 나만의 문장으로 만들어 두자. 실전에서 표현 한 두 개라도 써먹었다면 대성공이다.




(여기서는 비록 영어면접이라는, 여러 면접 중 아주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면접이라는 절차가 왜 있는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한 번은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면접위원 두 명에 지원자 한 명씩 들어와서 영어면접을 보는 형태였는데 테이블에 면접위원을 마주 보고 앉는 의자가 한 개 그리고 벽면 쪽에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당신이 지원자라면 어느 의자에 앉겠는가?) 놀랍게도 지원자 열명 정도가 벽면 쪽 의자에 앉거나 어디에 앉아야 하냐고 물었다.


어디선가 회의실에서 자리를 잡는 양상을 보면 한국인이, 그리고 상대적으로 여성이 테이블 중앙에서 가장 먼 자리에 앉는 경향이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동시통역을 하러 가서 회의장을 보면 보통 참가자들은 맨 뒷줄을 선호하는 듯하다. 먼저 오는 사람들이 뒤쪽에 앉고 늦게 오는 사람들이 마지못해 앞쪽에 비어있는 자리에 앉곤 한다.


면접을 보는 상황에서는 지원자가 평가를 받는 입장이다 보니 면접위원이 한없이 어렵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갑을 관계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우리 모두 한 때 어린이였던 것처럼 누구나 과거에는 지원자 입장이었지 않나.


면접은 고용주가 잠재적인 직원을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지원자 또한 잠재적인 고용주를  조금이나마 경험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나를 뽑을지 안 뽑을지는 그들이 판단하지만 그곳에 몸 담을지 말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면접장에서는 지원자/수험생이지만 면접장을 나오는 순간 고객이라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이 생각난다.



epilogue



이 날 영어면접이 모두 끝나고 같이 면접위원으로 참여했던 원어민은 어떻게 똑같은 질문을 60번 넘게 하는데 그렇게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 답은 간단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 관심 있어 하는 분야라서.  나는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을 지원자들에게 물었고 그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게 재미있었다.


모든 면접위원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지원자를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면접위원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는 가능하면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영어실력을 최대한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그리고 영어와 관계없는 불필요한 정보로 색안경을 끼지 않고 오롯이 영어만 보고 정직하고 정확하게 평가하고 싶다. (나도 언젠가 다시 면접을 보러 가는 지원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위 내용은 일반적인 채용시험에서의 영어면접에 해당하며 영어 전문가를 채용하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또, 모두 제 개인적인 견해이니 참고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필 사진, 꼭 필요한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