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국민메신저앱에는 친구로 저장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듯) 사실 그중 실제로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람은 정말 가까운 친구와 업무상 연락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몇 되지 않는다. 소통하기 용이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락을 더 자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연락을 하기 위해 힘쓰지 않게 되는 아이러니.
요즘은 프로필 사진이나 내용을 바꾸면 빨간 표시가 뜨면서 친절하게도 업데이트사항이 있음을 알려준다.
나도 가끔 사람들 프로필을 염탐(?)하곤 하는데 전 직장에서 잠깐 같이 일했던 분의 프로필이 매일같이 업데이트되는 것이었다. 프로필을 자주 바꾸는 것도 개인 취향이니 그러려니 했는데 이분은 업데이트가 있다는 프로필을 눌러봐도 딱히 바뀐 게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카카오*토리에 글을 올리면 그것도 업데이트로 뜨는 것. 이 분은 카카오*토리에 글을 매우 활발하게 올리고 계신 것이었다. 같이 일할 당시에도 글 쓰고 기록하는 걸 좋아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일상을 기록으로 참 멋지게 남기고 계셨다.
이 분으로 말하자면 소위 말하는 '개발자'인데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개발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 만한 전문가다. 함께 프로젝트를 할 당시에도 고객사에서 뭔가 구현하기 어려운 요구사항을 이야기하면 다른 개발팀원들은 팔짱 끼고 일단 ’ 안된다 ‘ 혹은 ’ 어렵다 ‘고 이야기할 때 이 분은 조용히 계시다가 ’ 방법이 없지는 않다 ‘며 어떻게든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고 방법을 찾으려고 고민하고 애쓰시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대단히 성격이 쾌활하거나 붙임성이 좋은 것도 아니고 다소 괴짜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결국은 실력으로 인정받은 분이었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이고 신앙을 가진 분이었다. 그래서 미국에 장기출장 가 있는 동안 이 분을 포함해 몇몇 다른 분들과 함께 주말에 같이 교회를 찾아다니며 예배드리기도 했다.
당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 분은 다른 팀으로 가셨고 이후 나는 퇴사해서 딱히 연락을 주고받지 않고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SNS로 연결되어 우연히 보게 된 이분의 글과 기록을 보니 여전히 참 멋지게 소신 있게 살고 계셨다. 일도 그렇지만 일상이 참 멋졌다. 최근에 올리신 글을 재미있게 또 인상 깊게 읽고 용기 내어 댓글을 남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지 못한 격려와 위로가 되는 답글이 달렸다.
나라는 존재를 기억해 주는 것.
기억은 흐려지고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다. 뇌 용량이 제한적이니 그게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하지만 우리 뇌는 강약을 아는 모양이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임팩트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우리 머릿속 어딘가 저장되어 있다가 어떤 자극에 의해 다시 꿈틀거리며 되살아나곤 한다. 세월이 지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나를 '최고'로 기억해 주는 것.
그런데 그냥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최고로 기억해 준다는 사실은 정말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사람이 나를 최고로 생각한다고 해서 그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영어 잘하는 사람도 통역 잘하는 사람도 정말 많고 내가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람이 경험한 영어 통역하는 사람 중에는 기억에 남을 정도였고 나는 그걸로도 충분하다. 진심이라면 정말 감사한 것이고 빈 말이라 해도 괜찮다. 기분 좋게 들었으니 또 누군가에게 기억에 남을 만큼 열심히 또 잘하면 되니까.
나를 응원해 준다는 것.
과거의 나를 좋게 기억해 주는 것도 물론 좋지만 나의 현재와 앞으로의 날을 응원해 준다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SNS를 통해 주고받은 짧은 글이자 대화였지만 정말 큰 격려와 힘을 얻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일을 병행하면서 물리적으로 한계에 다다르는 상황도 있고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좌절하는 순간도 많은 요즘인데 이런 작은 말 한마디에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장마와 무더위가 혼재되어 있는 7월 초 어느 날, 다시 힘을 내 보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오랜만에 글을 남겨본다. 글도 다시 조금씩 쓰며 기록으로 남길 수 있기를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