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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라의앨 Feb 06. 2024

CEO 인터뷰 전문 통역사요?

매체/언론 인터뷰 통역 A to Z

CEO 인터뷰 전문 통역사요?


친구의 지인이 패션 브랜드 홍보팀에 있는데 CEO 매체인터뷰 진행할 때 통역사가 필요해서 지인이 나를 소개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꼭 CEO 인터뷰 전문 통역사를 원했다고... (허허.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CEO 인터뷰만 전문으로 하는 통역사가 과연 존재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가능만 하다면 제가 하고 싶습니다!) 친구는 이래저래 설명하기 귀찮았는지 나를 CEO 인터뷰 전문 통역사로 소개한 모양이다. 다행히 지금까지 CEO 통역 경력이 적지 않아서인지 최종 진행하기로 했고 정말 나를 CEO 인터뷰 전문 통역사로 생각해 주신 것 같다^^;




통역이 필요한 세팅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규모 있는 국제회의 동시통역이나 B2B(기업 간) 또는 B2G(민관) 사업 논의를 위한 순차통역은 기본이고 VIP 수행/의전, 공장 또는 사옥 투어, 기업실사, 각종 강의/강연, 기자회견, 신제품 출시, 기업/브랜드 홍보 등 다양한 자리에서 통역이 필요하다.


최근에 브랜드 매체인터뷰 통역을 연달아 진행한 바 있다. 매체인터뷰(언론인터뷰)란 잡지 에디터나 언론사 기자가 브랜드 관계자(보통 CEO나 회장, 아태지역총괄 급으로 한 브랜드나 기업,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인사)와 마주 앉아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하는 인터뷰를 일컫는다. 짧으면 20-30분, 길어야 1시간 정도 진행한다. 해당 브랜드나 기업에서 기념할 만한 일이 있을 때 (창립 n주년이나 업계에서 중요한 날, 신제품 출시, 특별 홍보 등) 기획특집 형식으로 인터뷰가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종류의 인터뷰는 대중과 소비자의 브랜드 인식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홍보팀에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 인터뷰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과 방향성을 어느 정도 정리해 두고 질문지도 에디터/기자님으로부터 미리 받아서 통역사에게 함께 전달해 준다. (기본적으로 질문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질문은 모두 영어로 번역해서 준비한다.) 내용도 대단히 기술적인 내용보다는 브랜드와 기업의 가치와 철학, 역사,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과 방향성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통역을 앞두고 사전 준비를 할 때 이 브랜드와 기업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는 물론이고 핵심 가치와 철학을 살펴보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나 가족경영으로 몇 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기업의 경우 특히! 매체인터뷰 통역을 앞두고는 홈페이지의 브랜드/기업 소개 부분에서 클릭할 수 있는 모든 버튼을 빠짐없이 눌러가며 내용을 살펴보고 키워드와 표현을 정리한다. 그리고 잘 보면 제품소개에도 해당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가 녹아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살핀다. 특히 가치나 철학에 사용되는 단어나 표현은 일반적이고 쉬운 것들도 있지만 평소에 잘 안 쓰는 표현도 있고 딱 떨어지게 통역하기 어려운 표현이 많아서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를 꼭 확인하는 게 좋다. (예. authenticity, integrity 같은 표현은 의미도 뜻도 알지만 매번 참 통역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가치와 철학을 바탕으로 경영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오너가 경영을 하는지, 경영을 분리해서 CEO를 두고 있는지), 어떤 제품이 있는지 (라인업, 컬렉션 등),  최근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특히 최신 뉴스를 통해 해당 브랜드/기업이 어떤 부분에 주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 보다 구체적으로 공부할 영역을 찾아갈 수 있다.


한번은 명품 주얼리 브랜드 CEO의 매체인터뷰에 통역사로 참여했다. 새로운 컬렉션이 출시되어 CEO가 홍보차 방한한 것. 그래서 해당 컬렉션에 대한 각종 소개자료부터 찾아보았다. 홍보팀에서 제공한 기본 자료가 있기는 했지만 해외 매거진과 블로그 등에서 이 컬렉션에 대해 쓴 글을 많이 찾아서 읽어보았다. 너튜브에서 주얼리 관련 영상도 찾아보며 관련 용어와 표현을 익히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통역 준비다. (네, 그렇습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매체인터뷰 통역하는 자리는 기자회견과는 달리 대개 굉장히 프라이빗하다. 보통 서울 시내 5성급 호텔 회의실(미팅룸)이나 레스토랑 프라이빗룸에서 진행하고 참석 인원도 인터뷰어(에디터/기자), 인터뷰이(브랜드 대표자), 통역사 이렇게 최소 인원으로 제한한다. 경우에 따라 홍보팀 담당자가 동석하기도 한다.


인터뷰어의 역량과 스타일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매체인터뷰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진행된다. 질문하고 답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확장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하고 서로의 경험과 느낌을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통역을 위한 시간 확보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 통역사로서 대화의 흐름을 깨지 않으면서도 너무 길어지지 않게 적당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가는 센스가 필요하다.


에디터/기자님이 통역사와 호흡을 맞추어본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만 통역사와 함께 인터뷰 진행하는 것이 처음이라면 사전에 안내를 드리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1:1 대화에 통역사까지 더해져서 대화를 끌어가야 하는 세팅이다 보니 처음에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영 어색해하시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부분은 인터뷰 시작하고 가볍게 아이스브레이킹 질문 한두 개 정도 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감을 잡으시고 자연스럽게 잘 진행해 주신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어떤 분은 너무 긴장하셔서인지1시간 내내 대본을 읽다시피 질문을 하셔서 대화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딱딱한 분위기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어떤 기자님이 인터뷰 예정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하셔서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린 적도 있었다. 통역사인 나는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해서 대기 중이었고 CEO도 10분 전에 도착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40분으로 예정된 인터뷰였는데 20분 늦어서 결국 남은 20분 + 10분 해서 총 30분 동안 급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물론, 기자님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셨겠지만 시간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느꼈다.


인터뷰이의 스타일에 따라 인터뷰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말을 잘하고 자신의 열정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면 인터뷰 분위기는 걱정 없다. 인터뷰어와 통역사의 긴장까지 풀어줘서 인터뷰가 말 그대로 물 흐르듯 진행된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만큼 재미있기도 하다. 반면에 인터뷰이가 목소리가 너무 작거나 말수가 적으면 인터뷰어와 통역사가 더 주의 깊게 듣고 분위기까지 이끌어가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어떤 인터뷰이는 답변을 너무 단답형으로 해서 참 난감했던 통역도 있었다. 기본적인 답을 짧게 하더라도 설명을 덧붙여줘야 소위 말하는 스토리텔링이 되는데 단답으로 끝나다 보니 인터뷰가 전반적으로 뚝뚝 끊기는 느낌이었다. 이 날 기자님도 조금 더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계속 추가 질문을 해가면서 애쓰시는 게 내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그렇다고 통역사가 없는 말을 덧붙여서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인터뷰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곧 인터뷰 기사를 작성할 재료인데 재료가 부족하다는 사실에 인터뷰 후에도 계속 걱정하시던 기자님의 모습에 나도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매체인터뷰도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내가 통역사로 참여했던 인터뷰는 보통 2일에 걸쳐 하루에 2-3개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이렇게 되면 같은 주제와 내용으로 인터뷰를 반복적으로 하는 셈이기 때문에 통역사 입장에서 갈수록 일이 수월해지는 게 사실이다. 비슷한 주제로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고 인터뷰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이 다듬어지다 보니 더 깔끔하게 정리된 문장이 완성된다. 즉, 통역하기 좋은 발화가 된다는 것. 통역사의 통역도 연사의 개선된 발화만큼 정리가 되고 또 필요한 부분을 수정/보완해 가면서 완성도가 높아진다. 갈수록 통역 퍼포먼스가 좋아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이다. 질문에 따라 (핵심 요소와 방향성은 같지만) 답이 달라지고 갑자기 완전히 다른 주제가 언급되기도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화는 정말이지 스릴 넘친다.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끝가지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 한 마디까지 잘 전달하고 안녕을 고하고서야 통역이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인터뷰 내용을 찾아서 읽어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통역을 하다 보면 설명이 길어지거나 문장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런 부족한 통역 내용을 재료 삼아 멋진 글로 정리해 주시는 기자님, 에디터님께 감사하게 생각한다.) 인터뷰 기사에는 통역사에 대한 언급은 1도 없지만 내가 그 자리에서 통역했다는 걸 나만 아는 나만의 비밀 같은 마음에 내가 통역한 인터뷰 전문을 꼭 캡처해서 저장해두곤 한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관심이 많고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가치, 비전 등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인터뷰를 통역하다 보면 한 개인은 물론이고 그 사람이 속한 조직 혹은 몸담고 있는 회사, 브랜드 등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 수 있어서 좋다. 이 세상에는 참 멋진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많고 그런 분들을 통역사로서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곧 다가올 인터뷰 통역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해 볼까 한다 :)



Tip>

브랜드 매체인터뷰 진행 시 통역사로서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의상! 통역사의 의상은 기본적으로 TPO에 맞게 단정하게 입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즉, 때와 장소에 맞게 회의나 행사 목적과 성격에 맞게 하면 된다. 필자도 통역하러 가는 자리에 늘 소위 말하는 '풀 정장' 차림으로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매체인터뷰, 특히 주얼리, 시계, 명품 등의 브랜드 통역사로 갈 때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블랙'이다. 그리고 주얼리 브랜드의 경우 액세서리를 최소화한다. 이 날 만큼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결혼반지도 빼두고 귀걸이도 스터드 형태의 기본 큐빅 귀걸이 정도만 한다. 시계 브랜드의 경우 시계도 착용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이런 자리에 갈 때는 액세서리를 일절 하지 않는다는 동료 통역사의 이야기도 들었다. 모 브랜드 홍보팀에서 액세서리 착용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을 한 적도 있는 걸로 봐서는 이런 자리에 다소 화려한 액세서리로 치장을 하고 온 통역사도 있었던 모양이다. 자리에 맞게 의상도 액세서리도 절제할 줄 아는 것, 브랜드 홍보를 위한 자리인 만큼 해당 브랜드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도록 하는 통역사로서의 배려이자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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