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버른앨리스 Sep 11. 2018

나의 워홀 전, 올챙이 시절 이야기

워홀러 H의 고민을 듣고서.


온라인 또 오프라인으로 나는 고민상담을 꽤나 많이 받아.

워홀, 유학, 이민을 생각하고 있는 한국의 20대 친구들이 대부분의 고민 상담 신청자.

내가 뭐라고 인생의 꽤나 중요한 결정을 하라 마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으면 내가 아는 만큼 바로 잡아주고, ' 언니는 어땠어요? 혹은 누나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라는 질문에는 내 나름대로의 성의를 다해서 답을 해주는 편이야. 물론 바쁠 때는 답장해야지, 하고 생각했다가 까먹는 경우도 부지기수지만.

얼마 전에 한 친구한테서 긴 이메일을 받았어.  우연히 서점에서 내 책을 발견해서 무심코 아무 페이지나 폈다가 앉은 자리에서 삼분의 일을 읽고는 내면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는 (이런 감동...ㅠㅠ 눙물이...) 독자인 H가 보낸 메일을 읽고 나는 답장을 했지. 그렇게 인연이 되어 인스타를 주고받게 되었는데 어느 날은 디엠으로 고민상담이 왔더라고. 그래서 또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지.


내용을 짧게 줄여보자면 아래와 같았어.



언니!

내가 사실은 호주 가기 전에 정착 초기 자금을 최소 500 정도는 모으고 가려고 했거든.
그런데 열심히 한다고 하는 거 같은데 생각보다 돈이 잘 안모이더라고. 영어에 자신이 없다 보니까 가자마자 일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어서 남들 보통 가져가는 거보다 많이 가져가야 할 거 같다는 강박이 있는 거 같아. 돈 조금 더 모으고 가자, 영어 조금 더 해놓고 가자, 하다 보니까 기간만 계속 길어지고 있어.

호주 갈 생각에 마음만 붕 떠있다 보니까 일하는 것도 너무 지치고 출근길이 매일 지옥이야. 매사 축축 쳐지고 그래. 여기 있다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돈도 나름대로 모은다고 하는데 생활하다 보면 제자리걸음이고.  

영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한국 사람 없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도 알고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러다가 일도 못 구하고 돈 떨어지면 돌아와야 할 까 봐서 친구들이 있는 시드니로 가야 할 거 같고... 쫄보 본능 때문에 뭐든지 안전하게 하고 싶은 거 같아. 언니는 처음에 얼마 가지고 떠났어? 언니는 일단 되는대로 가서 막 부딪혔을 거 같아. 용감하게. 내가 언니처럼 무대포로 일단 부딪히고 보는 깡다구가 있었으면 이렇게 어영부영하지 않았을 텐데. 벌써 한국에서는 자리잡기 시작해야 하는 나이 26살이고 지체하면 할수록 나이만 먹는 것 같아서 계속 불안한 거 같아. 언니 같은 용감함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언니가 보기에는 나 너무 바보 같지. 어쩌면 좋을까. ㅠㅠ



그녀의 이야기에 괜스레 나도 모르게 광분한 (?) 나는

과한 격려와 응원을 담아서 이런 비슷한 답을 했어.



그래, 바보같이 뭘 망설여!
떠날 수 있을 때 최소한만 준비해서 빨리 떠나!

돈을 벌어도 여기가 더 벌기 쉽고 영어를 해도 여기가 훨씬 빨리 느는데 왜 마음 정해놓고 꾸물꾸물 시간 낭비야. 호주에 어차피 돈 벌고 영어 하러 오는 거 아니야? 여기가 두개다 더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을 텐데 왜 거기서 괴로워하는 거야. 그리고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데고 막상 와보면 다 살게 돼있어! 다 뭐라도 일하게 되고 생각보다 막 적응이 필요할 정도로 낯설 일도 없어. 오히려 해외생활이 뭐 이렇게 시시해, 하게 될걸?

이그, 쫄보 맞네. 뭘 그렇게 겁내는 거야.
비행기 표랑 한 달 생활비만 가지고 오면 할 수 있어! 용기를 내.



다른 고민 상담에는 늘 신중하게 말하거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말해주려고 노력하고 절대 단정 짓는 듯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 모든 상황은 다 다르고 개인마다 케바케가 심하니까 절대 내 의견 혹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흔들리지 말라는 게 보통 내가 조언을 하는 방법인데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음, 편파적인 의견을 마구 제시했어. 감정이입이 심했어.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지구 반대편의 20대의 한 친구에게.



용감

언니 같은 깡다구

언니라면 이런 고민 안 하고 일단 부딪혀봤을 텐데.

라는 H의 말이 나를 흔들었던 것 같아.



정말 정말 정말 정말*100000 아니었거든.

지금 나름 잘살고 있는 것은 '용감하게 도전한 과거의 내' 덕이 아니었어. 그 오해를 바로 잡아주고 싶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길어졌고 그녀와의 대화는 나를 다시 과거로 소환했어.

10년 전 호주 워홀을 가려고 준비하던 26살의 내가 지금 26살의 H였어. 내가 고민상담의 답이랍시고 쏟아내는 말들도 아마 H한테 하는 게 아니었을 거야. 26살의 나에게, 그때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는 걸 그녀와의 대화가 끝난 후 깨달았어.





오로지 호주 워홀과 성공적인 호주 워홀을 위한 필리핀 어학연수에

필요한 자금 1000만 원을 모으기 위해 나는 1년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꾸역꾸역 했어. 계약직으로 다녔던 회사는 너무 지루하면서도 고되기 까지 했어. 그러니까 업무 자체는 정말 진저리 치도록 지루한데 업무량은 적지 않고 쓸데없는 야근도 엄청 많은 거야. 대기업 건설 회사의 설계 프로젝트 팀이었거든.  

전문대 전자과를 나왔다는 말에 캐드라도 할 줄 알겠지 하고 나를 채용한 과장님은 첫날


"네? 파워포인트 할 줄 모르는데요...

엑셀요? 몰라요..."


라고 하는 나에게 경악을 했고 팀장님께 불려 가서 엄청나게 깨졌어. 내가 전문대 야간을 무려 학사경고 3번에, 평점 1.6으로 겨우 졸업만 했다는 거까지는 모르셨거든. 고등학교 때도 교과서 한번 제대로 본 적 없다는 건 더더욱 모르셨겠지. 유일한 여직원 겸 경리였던 나는 작은 책상에서 사람들이 쓴 영수증을 정리했고 손님이 오실 때마다 벌떡 일어나서 커피를 대접했고 회의 자료를 인원수대로 복사해서 스테이플러를 곱게 찍었고 점심과 야근 식사할 식당을 예약을 하고 빈 영수증을 달라해서 모았어. 내가 하는 업무 (업무라는 단어도 거창하다)라는 것들은 사실 길바닥에서 아무나 끌고 와서 앉혀놔서 할 수 있을 만한 일이어서 내가 있던 없던 빈자리가 전혀 티 나지 않았어. 내가 병가를 일주일을 내도 아무도 나에게 전화해서 '다음 주에는 올 거지?'를 물어보지 않더라니까.

내가 하는 일 중에 그나마 잘한다고 칭찬받고 존재감을 드러냈던 일이 뭔지 알아?

이 지하철 설계팀이라는 게 여러 개의 대기업 설계팀들이 각각의 설계도로 경합을 해서 한국 지하철 공사에게 입찰을 받는 구조거든. 우리 팀은 국내 최대 건설사 중 하나인 D기업 소속이었고 다른 기업들도 어마어마해. 이게 경합이 참 힘든 게 어차피 대기업들끼리 붙는 거라 설계 실력이랄지 단가경쟁이랄지 하는 게 거기서 거기란 말이야. 다 잘하니까.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어떤 팀이 '서울 지하철 공사 관계자'들의 환심을 사느냐, 가 갈림길이 되는 거야. 진짜 별거 다 사서 보낸다? 00 과장 스키 좋아하니까 시즌권, 00 부장 아들 대학 합격 선물로 아이패드, 00 대리 결혼 선물로 뭐 최신 김치냉장고...뭐 이런 선물 공세 ( = 뇌물수수^^)를 하루가 머다 하고 하는 거야. 내가 제일 젊으니까 아무래도 인터넷으로 좋은 걸 싸게 잘 찾았지. 그러다 보니까 이게 '00팀 경리 여직원이 센스 있게 선물 (뇌물)을 잘 고른다' 고 소문이 나서 다른 팀에서도 찾고 그랬어. 근무기간 중 그게 내가 제일 돋보였던 순간이었지. 그거 아니었음 다들 내 이름도 몰랐을걸.

회사 다니면서 제일 즐거웠던 시간들을 떠올려보자면, 매주 화요일인가 탕비실에 물품 들어올 때 가위 하나 들고 건물 돌아다니면서 커피랑 녹차 박스에 오케이 캐시백 쿠폰 오리고 다녔던 거. 경력이고 돈이고 배울 거고 나발이고 얻어갈 거 하나 없는데 이런 콩고물 얻어먹는 소소한 재미라도 있어야지, 생각했던 기억이 나.


그때의 나는 벌써 26살
호주에 가면 27살
1년 워홀 마치고 돌아오면 28살.


뭐 아무것도 없이 서른을 목전에 두겠구나. 돌아와서 취업은 될까, 알바로는 부담스러운 나이라 안 써주겠지.

신경 안 쓴다고, 그깟 나이 같은 거!라고 큰소리는 치지만 속으로는 아니었어. 내 젊음이 활활 타오르지도 못하고 시시하게 스르륵 시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숫자가 문제가 아니고 그 숫자를 채울 동안 뭐 한 게 없다는 게 문제였어. 이렇다 하고 내세울 경력도 학위도 뭐 아무것도 없이 시간만 보낸 내가 '나이 같은 건 숫자일 뿐이야. 신경 안 써!'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지레 자격지심에 쿨한 척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뭐 예를 들면 '서울대? 구려서 난 안 갈 거 같은데? 대기업, 아, 난 오 라그래도 안 가지.' 비슷한 느낌이랄까.  나이와 상관없이 소신대로 멋있게 사는 게 아니고 그냥 모자라서 나잇값 못하는 주제에 뭘 잘났다고 내 입으로 그걸 떠드냐, 하는 생각이었지.


나이, 신경 쓰였어. 26살이 되고 주변 친구들이 하나하나  취업하는 소식을 들으며 엄청 초조해졌었어.

그만큼 신경 쓰이면 호주에 가지 말고 지금이라도 뭐를 하던지, 아니면 갈 거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가던지. 뭐 어쩌자는 건데? 생각했지만 그런 마음이 짙어질수록 자존감은 떨어졌고 용기는 없어졌어.





그곳에서 1년의 '존버' 끝에 돈은 충분히 모았어.

보통 워홀 가는 애들보다 더 넉넉하게 들고 갈 수 있을 숫자가 통장에 찍혔지만 나는 바로 떠나지 않았어. 돈이 준비가 되니까 '영어'가 슬슬 걱정이 됐거든. 내 영어로 거기 가서 일할 수 있을까? 일자리도 못 구하고 돈은 떨어지고 그래서 바로 돌아오면 창피한데, 기초문법이라도 뽀개고 가야 하는 거 아닐까? 마침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받을 수 있는 건 받고 가는 게 합리적이지 않아?라는 생각이 내 머리 속에 어느새 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지. 언제나 안전제일이니까. 그래서 나는 몇 개월 동안 더 어물쩡 어물쩡 한국에서 시간을 보냈어.

무슨 엄청난 유학도 아니고 고작 '워홀'을 무려 1년 반이나 준비하면서 나는 27살이 되었고 그 후로도 반년이 지난 후에야 아주 힘겹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


'어, 뭐야. 너 아직도 안 갔어?', 얼굴 마주치는 사람들한테 마다 듣는 말들에 등 떠밀리듯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노병으로 군에 끌려가듯이.

아, 원래는 퍼스나 애들레이드 등 한국인이 없어서 영어를 많이 쓰는 곳으로 예정했었지만 막판에 시드니 한복판 코리안 타운으로 목적지도 바꿨어. 솔직히 진짜 자신 없고 무서웠거든.  




그때의 나도 그랬어.

지옥 같은 출근길, 나는 하는 일도 없는데 붙잡혀있던 야근이 끝나고 돌아오는 퇴근길.

지긋지긋한 일상 속, 내 마음은 언제나 '호주'라는 미지의 콩밭에 가있었어. 계획했던 돈이 좀 모자라더라도 이번 달만 끝내고 가고 싶다, 이번 달, 이번 달만.... 영어가 모자라더라도 가서 하면 되지 않을까? 올해만 지날까?

돈이 막 벌리는 것도 아니고 영어는 알면 알수록 막막하기만 하고. 어영부영하다가 꿈만 꾸고 못가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과 그래도 조금만 지나면 내가 더 자유로운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이 매일 공존했어.


H는 세상 양반일 정도로 나는 훨씬 쫄보였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더니, 온갖 걱정과 상상에 겁만 잔뜩 먹었던 10년 전은 생각 못하고 '용기를 내' 라니. 나도 못했으면서. 훨씬 겁쟁이 었던 주제에! 그런 조언을 하다니.

어떻게 보면 웃기는 일인 거는 알아.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내가 겁을 먹었던 것들이 생각보다 별게 아니었다는 걸 떠나고서 알았기 때문에, 내가 못했기 때문에. H는 나보다 덜 후회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들이었어. H에게 하는 말들은 그녀를 부딪히고 다시 나에게 돌아와서 10년 전의 나를 떠올리게 했거든.





막상 와보니까 말이야.

내가 그렇게 유난을 떨며 호주에 와보니.

초반에 총알이 많이 장전돼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크지 않았어. 돈이 없으면 일을 빨리 구하고 돈이 있으면 그걸 어느 정도 다 쓰고 구하게 되니까. 보통 뭐 엄청난 빈부격차가 날 정도의 자금 차이도 애초에 아니다 보니 3개월쯤 지나면 다 비슷비슷해져. 돈이 많으면 마음은 더 편하지, 그게 가장 큰 장점이기는 한데 그 마음 편한 게 오히려 독으로 작용해서 나태해지는 경우도 많았어. 당장 일구할 필요가 없다보니 유유자적. 그런데 호주 물가라는게 워낙 세다보니 생각보다 여유는 짧고 나중에 허둥대고 일을 구하려면 막상 없지.

10년간 수백 명의 워홀을 곁에서 지켜본 결과, 한 달 집값, 비행기 값, 한 달 정도는 생활할 수 있는 생활비, 이 이상의 돈은 사실 워홀의 질에 큰 영향을 못 미치는 거 같아.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영어는 말이야.

음, 난 한국에서 주말에 '그래머 유즈 인 베이직' 문법 뽀개기 강좌를 8주 듣고 온 거 말고는 영어 공부를 해본 적이 없거든. 나는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어서 기초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불안함이 커서 호주 오기 전 거금을 들여서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3개월도 했어. 이 정도면 호주에 가서 '일명 오지잡(현지가게에서 일하는것)" 을 할 수 있겠지, 했어. 나름대로는 어느 정도 '생존 가능한 수준'의 영어라는 준비물을 챙겨서 왔다고 생각했어. 그 필리핀 갈 돈 500만 원을 버느라, 그리고 필리핀에서 3개월 있느라 호주행이 거진 9개월 정도 늦춰졌다고.

음... 그런데 어차피 못 알아들어. 내가 하는 말도 얘네가 못 알아듣어. 어차피 와서 부딪혀야 하는 일이었어. 한국에서 배운 것들은 호주에서 다시 과외를 받았어. 필리핀에서 영어가 친숙해진 효과는 있었지만 내가 상상했던 만큼 내가 막 영어로 일하고 대화하고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더라. (또르르..ㅜ)

그리고 또 느낀 거는, 생존 스킬이 '영어실력의 수준'과는 상관이 없어서 놀랐어. 영어 한마디 못해도 일 척척 구하고 친구 척척 사귀고 호주가 지네 집 안방인 마냥 다니는 애들이 있는가 하면 영어를 정말 잘해도 일 못 구하고 적응 못하는 애들도 있더라. 신기하게도 말이야.


그때의 나는 이 워킹홀리데이 1년이란 시간이 너무 귀하고 아까웠어.

1년 동안 최대로 '영어와 돈'을 뽑아내기 위해서 초석을 다지고 가고 싶었어. 내 생애에 다시는 안 올 1년, 이 1년이 끝나면 끝일 줄 알았거든. 그러니까 본 게임, 1년이 카운트 다운되기 전에 준비를 철저히 잘해야 할 거라고 느꼈어. 그래서 이 1년을 위해서 다른 1년을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원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었어. 한국에서의 시시한 1년을 밑천으로 특별한 호주에서의 1년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아.

하지만 워홀 1년은 생각보다 길었고 그리고 만약 짧았다 해도 이 1년을 연장할 방법은 생각보다 너무 쉽고 흔했어. 정말 많은 수, 체감 상 30퍼센트 정도의 워홀러들이 워홀이 끝난 후 세컨드, 관광, 학생비자를 연장해서 더 머무르거든. 다른 비자로 이렇게 쉽게 연장할 수 있다는 걸 그때의 내가 알았다면 '1년밖에 없어! 완전 최대한 많은 걸 이뤄야 해!!'라는 생각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을 거야.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시간에 후회나 나쁜 기억은 없어.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만큼 부질없는 게 없잖아. 지금 아는 건 지금이니까 그런 거야.

지우고 싶은 흑역사도 아니고 부끄럽지도 않아. 축축 처지는 몸을 이끌고, 불투명한 미래에 초조해서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면서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았어. 지금도 쫄보인 구석이 있고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기도 해. 그때의 나와 지금은 나는 그렇게 다르지 않아. 모든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이 된 걸 테니까.

그때, 돈을 모으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소소한 행복은 분명히 있었고 그 기억들도 많이 남아있거든.  울렁거릴 거 같은 초조함과 설렘, 두려움. 그때에만 느낄 수 있었던 복잡한 감정들이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 그때의 내가 어리석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지금의 H가 전혀 어리석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해주고 싶은 말들은 몇 가지 있어.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H에게. 조심스럽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




네가 아무리 영어, 돈, 뭐를 열심히 준비한들

낯선 나라에서 네가 완벽하게 보호받을 수는 없어.  

분명히 사건사고가 일어날 거야. 모험과 여행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익숙한 곳에서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고 싶다면, 안 떠나면 되잖아. 하지만 떠나고 싶다면, 모든 위험의 가능성을 사전에 틀어막으려는 노력은 무의미해. 어차피 가능하지도 않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생각보다 다들 금방 잘 지내.

호주가 생각보다 마음에 안 들고 재미없어서 돌아가는 사람은 꽤 있어도 일 못 구하거나 돈 떨어져서 돌아가는 사람은 정말 없더라. 호주로 가고 싶으면 가도 돼! 조금 부족해도 빨리 가도 괜찮아. 또  천천히 가고 싶으면 천천히 가도 되고. 일 년 우물쭈물 버린다고 인생 망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하고 싶은 대로 해도 큰일은 안나!


그리고, 모든 시간의 밀도는 동일하니까 어떤 시간을 위해 다른 시간을 너무 많이 희생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잘될 거야. 걱정되는 마음은 잘 알지만 한번 속는 셈 치고 믿어봐.

새로운 세상에서의 새로운 너를.





INSTAGRAM : ALICEIN MELBOURNE




https://brunch.co.kr/magazine/alicemelbourne


https://brunch.co.kr/magazine/your-migrant


https://brunch.co.kr/magazine/aussienews




.


매거진의 이전글 예스 24에서 나를 인터뷰를 하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