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버른앨리스 Jun 17. 2019

내가 한국이 불편한 또 다른 이유

분수와 주제를 왜 알아야 하는거야?!



기생충은 불편한 영화야.

어디가 왜 불편했는지 콕 찝지는 못해도 전체적으로 그렇다는 데에 대부분 동의하더라. 이 정도의 경제대국 안에서의 끔찍한 빈부격차, 한국 사회의 숨어있는 어둠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는 주변인들이 많았어. 보는 내내 무서웠다고.

그런데 그중에서 특이한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있더라. 기택 가족의 ‘주제 모름’이 비극을 불러온 것이라며 ‘선을 넘어서’ 주인집에서 술판을 벌이고 기물을 파손하고 ‘분수도 모르고’ 주인집 딸을 넘보고 하는 것들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예고된 수순의 파국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나는 한국이 ‘나이’에 미친 나라라 싫어.

만나자마자 나이를 싫든 좋든 물어봐야 내가 뭐라고 부를지 호칭을 정할 수 있고 그게 관계의 기반이 되는 곳. 자유로운 소통과 교류를 아예 차단해 버리는 것이 바로 이 ‘나이’로 대변되는 수직문화라서 싫고 불편해. 그리고 또 무언가 하나 더, 나를 계속 불편하게 하는 게 있었거든. 뭐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대화 속에서나 생활 속에서 계속 찝찝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서 이번에 좀 찬찬히 관찰을 해봤어. 그리고 나름대로 고심 끝에 찾아낸 거 같아. 한국사회에서 ‘나이’와 더불어 집착하는 또 한 가지.

내가 한국 문화가 불편했던 이유의 자가 진단을 하나 더 하게 된 거야.




한국은 참,  ‘분수’와 ‘주제’에 집착하는 것 같아.

분수 넘는 짓, 주제 파악 안 되는 것에 대해 항마력이 엄청 낮은 거 같다고 할까. 그 꼴을 잘 못 보는 어떤 심리가 있는 것 같아.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까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해서도 어떤 선을 그어놓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그 선을 넘으면 불편함을 느낀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특정 인물의 상황, 벌이, 나이, 외모 등등을 종합해서 따져봤을 때 00은 주제넘고 00 정도면 괜찮다, 이런 생각을 하고 그게 본인한테도 적용이 돼. 이게 내 주제에 맞나, 내 분수에 맞는 것인가? 그리고 스스로 남들에게 주제넘게 보이지 않을까,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는 것 같아. 알게 모르게.


어떻게 생각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어.




친구 A를 만났어. 책을 한 권 쓰는 게 버킷리스트였는데 그걸 나는 못하고 네가 했구나, 하는 친구에게 야, 책, 그거 쓰면 되지! 했더니 단박에 돌아오는 말이


야, 내 주제에 무슨..


네가 나보다 책도 더 많이 봤고 글도 잘 쓰잖아. 스타트업 하는 이야기도 연재 많이 하고 출간하던데. 요새는 독립출판물도 많고. 나도 일하면서 틈틈이 쓴 거야. 너도 그러면 안돼?


야, 됐어. 내 주제에 먹고사는 거로 만족해. 그런 거야 어렸을 때 꿈이지. 너 보니까 그냥 옛날 생각나서 해본 이야기야. 술이나 먹자.




친한 동생 B가 이번에 차를 샀는데 차를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좋은 차 같았어.

다들 한 걱정하면서 한소리씩 하는데 나는 진짜로 걱정돼서 하는 걱정으로 느껴지지 않더라.


야, 걔 주방일 벌이 뻔한데 그게 감당이 되냐? 좀 분수에 맞게 소박한 차 사라니까. 결혼은 어떻게 하려고?


분수에 맞는 차라는 게 있어? 취향에 맞는 게 아니고?


얘 또 해외 오래 살다온 티 내고 모르는 소리 하네…

연봉이나 나이나 뭐 가정환경에 맞는 수준의 차 같은 게 있는 거지. 주제 모르고 취향만 따지다가 카푸어 되는 거야.




또 다른 친구 C는 휴가를 받으면 주말을 다 붙여서 늘 해외여행을 가.

그게 취미야. 술자리에서 그 친구 이야기가 나왔어.


걔 유럽이래? 아니 그게 감당이 되나? 저금은 하고 있나 모르겠네. 걔네 집 잘 사는 편도 아닌데 진짜 간 크다.

걔도 그렇고 우리 회사만 봐도 요새 신입사원들은 진짜로 받으면 받는 대로 다 쓰더라. 해외를 무슨 집처럼 드나들어. 나중에 정신 차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잘 사는 집 자식들도 아니면서.


너무 많은 대화가 그런 식이었어. 본인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D : 언니, 제가 진짜 되고 싶은 건 뭔지 모르겠어요. 아직 저는 22살이라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어서 좀 찾고 싶은데 부모님은 대학까지 뼈 빠지게 보내줬는데 집안 형편 뻔히 알면서 제가 주제를 너무 모르고 현실적이지 않다고들 해요. 부모님 말씀대로 그냥 빨리 공무원 시험이라도 준비하는 게 맞는 걸까요.


E : 누나, 나는 바리스타 일이 너무 좋은데 대회 같은 거 준비하고 하는 건 진짜 ‘끕’되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잖아. 내가 대회 준비한다 그러면 다들 웃지. 몰래 가게 일찍 와서 연습하고 하기는 하는데 휴, 괜한 짓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F : 야, 걔 공무원 아직도 7급 시험 준비한 대매? 솔직히 걔가 7급은 무리지 않나, 9급으로 낮춰서 호봉 높이는 게 낫겠다.


G : 야, 00는 아직도 시나리오쓰고 있다는데 걔네 형편에 그게 말이 돼?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니고. 여자 친구는 무슨 죄임? 될 거면 진작 됐겠지. 객기야, 객기 그거.


H : 할머니가 70살이 넘었는데 창피한 줄 모르고 그 나이에도 얼굴에 주사 맞고 아주 팽팽한 게 꼴 보기 싫더라. 나이에 맞게 분수에 맞게 늙어가야지. 주변 사람들 보기에 좋지.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닌데 말이야.



K : 내가 무슨ㅋㅋㅋㅋㅋ(장사는, 공부는, 여행은, 결혼은, 도전은…) 아무나 하냐? 그것도 뭐가 받쳐줘야 하는 거지.


L: 언니, 내 몸매에 무슨 비키니야. 입으면 다 쳐다봐, 다른 의미로 ㅋㅋㅋㅋㅋㅋㅋㅋ내 주제에 래시가드나 입지 무슨 비키니야. 근데 예쁜 건 많더라. 사고는 싶더라고.


M : 누나, 호주에서 나 골프 싸서 배웠잖아. 여기서는 내가 골프 치러간다고 하면 직장상사들이 다 욕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신입사원이 주제 모르고 허세 떤다고 ㅋㅋㅋㅋㅋ기껏 배워놨는데 여기서는 한 번도 못 쳤다?





끝도 없어. 내가 들은 이야기 중에서 이런 식의 이야기가 정말 끝도 없었어.

암묵적으로 무슨 사회적 합의가 있는 거 같았어.


쟤는, 나는, 너는, 우리는, 너네는. 여기까지.


여기부터 여기까지 허락되는 각자의 주제와 분수라는 어떤 선이 있는 거 같더라니까.

그래, 본인이 본인에게 선을 긋는 것은 도전에 따른 실패가 상처로 남는 것이 두려워서겠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그렇고 누구나 그럴 거야. 그건 우리 인간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자기 방어기제라고 생각해. 그게 우리를 무모한 도전과 그로 인한 피해로부터 보호해주고 있는 것도 맞아. 그런 소심함이 우리 인간을 여태까지 살아남게 한 이유일 수도 있어. ( 맘모스 같은 게 무서워서 몸을 사리고 원거리 무기를 발명하게 하고, 등등 블라블라)


그런데 타인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까지 엄격해야 하는 걸까. 왜 타인의 주제와 분수를 판단하는 걸까.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상황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잖아. 본인이 내일 어떻게 될지는 한 치 앞도 못 보면서. 남이야 분수에 넘던 주제 파악을 하던 못하던, 알빠야? 넘어졌을 때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결정적으로 이런 사회적 합의가 나한테 불편하게 느껴진 이유는 사실 이거야.

슈퍼리치들 중에 상속이나 증여로, 그러니까 핵금수저로 태어나서 부자가 된 비율.

그러니까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위 1퍼센트가 된 비율의 국가적 차이를 보고 굉장히 놀란적이 있어.


중국은 2%,

일본은 18.5%,

미국은 28.9%


한국은?

무려 74.1%


한마디로 한국에서 슈퍼리치가 되려면 그 집안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이야기야. 중국에서는 가난한 자가 스타트업으로 슈퍼부자가 되는 꿈을 꾸는게 가능하지만 한국은 아니라는 거지.

우리나라의 땅 97퍼센트를 인구 10퍼센트가 소유하고 있고. 현 경제의 90퍼센트는 우리나라 30대 기업에서 독점하고 있어. <*명견만리 -공존의 시대 편 발췌*>


재벌이 잘살면 우리도 잘살게 될 것이라고 낙수효과를 믿었던 기성세대들은 배신당했고 우리는 개천의 용은 더 이상 없음을, 로또나 비트코인이 아니면 인생역전은 불가함을, 계급의 사다리는 붕괴되었음을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데 승자들이 독식하는 시장은 점점 커져. 그들은 더 갖지 못하고 더 높이 오르지 못해서 상상도 못 할 일들을 저지르고도 잘 살아. 더 원하고 원하는 만큼 더 가져가. 그들은 그렇게 살 주제라서 그렇게 사는 걸까. 더 잘 살 팔자라서 타고난 분수가 그래서 계속 그렇게 넘치도록 가지고도 더 갖고 더 욕망하면서 사는 걸까. 그리고 그렇게 태어나지 못해 그들만의 리그에서 제외된 우리들은 왜 우리들끼리 이렇게 서로 재는 것이고 또 왜 스스로의 삶에 욕심을 부리는 것을 지양하게 된 걸까.


나는 이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고 살아야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 한다는 굉장히 오래 축척돼 온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의식적으로 우리가 어떤 한계를 넘는 것, 계급을 이동하려는 욕심을 부리는 것을 막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미연에 길들여진 유교 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 거야. 지긋지긋한 망령처럼.

계급사회에서 양반이나 귀족의 태생으로 태어나지 않은 평민, 천민들이 주어진 계급과 역할에 순응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처럼.  내게 허락된 것에 만족하며 살아감의 미덕. 튀지 않고 바라지 않고 내 그릇보다 큰 세상을 꿈꾸지 않고 나에게 세상이 허락한 이상의 것은 욕심내지 않는, 소시민으로서의 role을 세상이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아서 숨이 막혀. 너무 착하고 성실한 대부분의 사람들. 취미와 취향도 본인의 분수에 맞게 선택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소확행과 욜로를 찾는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 세대, 그리고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후덜덜할 스펙을 그렇게 힘들게 쌓고도 취업이 안 되는 것을 본인이 더 열심히 하지 않아서, 본인이 운이 안 좋아서 라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많은 청년들. 이번 한국 방문에서 대학교 특강과 많은 미팅을 하면서 느낀 것은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스스로와 상대방에게 야박한 면이 있다는 거야.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 비해서 두드러진다고 느껴.





주제도 모르고, 주제를 알고.

분수에 맞지 않게, 분수에 알맞게.

감히.


라는 말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그리고 타인을 후려치고 있어. 아주 다양한 각도로.

그리고 이 후려침에는 늘 ‘현실감각이 뛰어날 뿐이야. 현실을 이야기할 뿐이야.’ 이 따라와. 이게 현실이야, 현실을 알려줘도 고마운 줄 모른다고 까지 이야기하더라.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어. 현실이라는 건 냉혹하고 만만치 않으니 그런 말들이 물론 맞을 때도 있겠지. 그런데 틀린 거라면? 우리가 허상 속의 선을 스스로 넘지 못해서 스스로 인생에 한계점을 아주 타이트하게 그려놓고 사는 거라면? 마치 어릴 때 묶어놓은 기둥의 줄을 충분히 뽑아버리고 남을 힘이 생겼는데도 가느다란 줄에 묶인 채로 정해진 선 밖을 넘을 엄두를 못 내는 코끼리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끊임없이 주제와, 분수와 나이를 이야기하며 보이지 않은 선을 계속 긋는 이 사회에서 내가, 너희가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래.

피곤하지만, 우리는 그럴 때마다 계속 의심해야 한다는 거야.
 
정말 그럴까?

이게 내 주제에 안 맞는 걸까?

취미나 취향이나 꿈을 갖는데도 내가 주제를 파악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누구 좋자고 나는 계속 자기 검열을 하고 남들로부터 검열을 당하는 걸까?

나의 주제파악은 대체 누구한테 이익인 거야?


근데, 잠깐. 그 '주제'라는 게 뭔데?

조선시대도 아니고 ‘분수’나 ‘주제’라는 게 있어?

그리고 그걸 왜 네가 판단하지?


근데 있다고 해도 내가 그걸 대체 왜 지켜야 해?

그리고 왜 지켜왔지?



남들 하는 대로 살고 함께 사는 세상 둥글게 둥글게 순응하며 정해진대로 흘러가듯 살면 편하겠지. 하지만 네가 그러고 싶지 않다면, 네가 나처럼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피곤하겠지만, 이렇게 사는 것은 정말 피곤하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계속 의심하고 반문했으면 좋겠어.


나의 친구이며 동료이며 동생인, 이 글을 읽고 있는 네가

누군가로부터 주제 파악을 강요당할 때마다 말이야.





덧 1. 말했듯이 자가진단이라는 거야. 나 스스로 한국을 떠나고 싶을 만큼 불편했던 점과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를 말하고자 함이니까 쪽지나 메일로 한국을 일반화해서 욕하지 말라는 말들은 정중히 사양할게!


덧 2.  나이와 마찬가지로, 이 성향도 세대가 높을수록 심하고 보수적인 집단일수록 심한데 또한 나이와 마찬가지로 그게 반드시 룰은 아니야. 젊은 꼰대가 더 무섭듯이 젊은 사람들이 더 무서울 수도 있더라. 남에 대한 검열은 기성세대가, 스스로에 대한 자기 검열은 오히려 청년층이 심한 걸 느꼈어.


덧 3.  어차피 세상만사 케바케, 닝바닝이라 비교하는 것은 의미없지만 중국계나 서양계 친구들 만나면 비교가 많이 되서 이런 글을 쓴 걸 수도 있어. 중국계 친구이랑 친해지고 대화가 깊어지면 이 친구들은 크던 작던 꿈을 말을 해. 계급 상승이랄까. 하고 싶은 일들이랄까, 사고 싶은 것들에 대해 거침없이 말을 해. 대부분 그런 성향이 있어. 지금 현실이 시궁창일지라도 돈은 없더라도 앱을 개발해서 대박을 치면 살 럭셔리 차라던지, 차리고 싶은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꿈을 꿔. 그게 중국인 특유의 허풍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그저 부럽기만 하더라. (한국 친구들은 이런 이야기를 보통 토요일 오후에 몰아서 하지. 로또 사고 난 다음에.)

호주 친구들은 대체적으로 근자감이 강한 편이랄까, 본인의 작은 업적에도 크게 감동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게 나는 좋아 보이기도 하고 가끔 귀엽기도 해. 좀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 같아.  내가 고졸이라서, 내가 뚱뚱해서, 내가 가난해서, 내가 이렇고 저래서 뭐를 못한다는 이야기는 여기서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는 한국에서의 대화 중에 아주 자주 놀랐던 것 같아.




PHOTO CREDIT (INSTAGRAM)

@SBIN_



INSTAGRAM:  @ALICEINMELBOURNE

YOUTUBE : 멜버른 앨리스



https://brunch.co.kr/magazine/your-migrant



https://brunch.co.kr/magazine/alicemelbourne


https://brunch.co.kr/magazine/movetoaustralia


매거진의 이전글 독자와의 첫만남, 오늘 최인아 책방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