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숨 쉴 구멍

What’s In Your Bag

너는 아침 출근 버스에서나 퇴근 버스에서나 요즘 책을 읽고 있다.

상반기에 너는 좋아하는 아나운서의 북클럽 서비스에 가입했다.

반 년 동안 너는 북레터를 기다렸고 택배 오는 날만을 기다렸다.

다만 달에 한 번씩 북 큐레이터의 신중한 선택 끝에 보내어진 책은

그동안 네가 읽은 책과는 전혀 달라 너의 손에는 맞지 않았다.

읽지도 않는 책이 여섯 권이나 쌓였을 무렵 너는 결국 탈퇴했다.

’그 즈음 너는 퇴사를 했고 돈을 아껴야 했을 무렵이었으므로‘ 라고 변명을 적어 둔다.

네가 다시 그 책들에 손을 대고 있다.

어려워서 읽지 못하겠다던 여섯 권의 책 중 가장 얇았던 책을 끝내고

지금은 금융 관련 소설을 읽고 있다.

반 년 전의 너는 그 책을 읽으면 졸리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너는 틈틈히 버스에서 꽤 많은 양을 읽고 어느새 끝을 보이고 있다.

책을 읽는 너의 귀에는 카세트 플레이어의 이어폰이 꽂혀 있다.

앞서 말했듯 너는 책을 읽을 때면 귀를 닫아 버리는 사람이었지만 귀가 심심한 것은 또 참을 수 없나 보다.

내가 사 주었던 무선 이어폰은 주머니에 넣어 둔 채 테이프를 들으며 책을 읽어 간다.

플레이어 속에는 네가 어렵게 구한 아끼는 테이프가 세월을 이기고 돌아가고 있다.

요즘 너는 다가오는 연말을 준비하며 다이어리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너의 일상을 적고 해야 할 일을 적고, 그것들을 한 눈에 보고 싶어 한다.

새해를 준비하는 7권의 노트 중 한 권이 그날 그날 너의 기분에 따라 너의 가방 안으로 입성하게 된다.

너는 지독한 목 통증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너의 파우치에는 화장품보다 약이 더 많이 들어있다.

네가 가방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약이 들어있는 파우치를 넣다 뺐다 하기 귀찮아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