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행정학과를 졸업했지만, 그 길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세 번의 공무원 시험 낙방은 내게 실패라기보단,
'이 길은 내 길이 아닐 수도 있구나'라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그 뒤로는 핸드폰 매장, 백화점 신발 코너, 맥도날드, 호프집까지, 정말 다양한 곳에서 하루를 버텼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에 미소는 지었지만,
속으로는 늘 어딘가 자리를 잃은 듯 불안했다.
스물넷, 친구를 따라 들어선 간호학원.
무언가에 이끌리듯 첫 달 수업료를 내고 돌아오는 길,
나는 오래 헤매던 마음이 잠시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날의 나는 서툴렀지만,
돌아보면 그 순간의 나는 불안 속에서도 이름 없는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날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지만,
그 선택이 내 삶의 오랜 시간을 물들일 첫 발걸음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1년 동안 공부하고 실습을 거쳐 합격과 함께 자격증을 취득해 스물다섯, 한의원에서 간호조무사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날의 선택 이후, 수많은 아침과 저녁이 스쳐 지나갔다.
여러 병원을 거쳐,
여전히 환자의 곁에서 웃고 울며 시간을 보낸다.
환자의 눈빛, 치료실의 공기, 따뜻함과 지침이 뒤섞인 하루들.
그 모든 날들이 켜켜이 쌓여 오늘의 내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또 한 번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퇴사를 고민하는 이 마음은 두려움과 설렘을 함께 품고 있다.
무엇을 끝내야만, 무엇이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글은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길을 차분히 돌아보려는 시도다.
언젠가 이 기록이 나처럼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닿아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