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의 아침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간호복이 든 가방끈을 쥔 손바닥에는 땀이 났고, 옆에서 나란히 걷던 친구도 말이 없었다.
간호학원에서 몇 달 동안 배운 지식이 실제 병원이라는 현장에서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
그 날 만큼은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병원 문을 들어섰다.
탈의실에서 준비해 온 간호복으로 갈아입고
근무 배정을 받았다.
친구는 병동, 나는 응급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첫날부터 응급실이라니...'
그러나 응급실 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한마디.
"외래로 가세요."
그 순간부터 나의 첫 실습은 외래에서 시작되었다.
외래 진료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중 내가 안내받아 들어간 곳에는 두 명의 간호사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은근히 구박하는 듯 한 말투,
말끝마다 가시가 숨어 있는 공기.
나는 구석에 조용히 서서, 숨을 고르는 법부터 배웠다.
처음엔 단순히 정형외과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알게 된 건, 그곳이 대표원장님이 수부외과를 전문으로 진료하는 자리였다는 사실이었다.
대표원장님이 없을 때는 부원장님이 진료를 보는,
병원의 중심 같은 공간.
그곳에 내가 배정되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누군가의 시선이 쏠릴 것 같아
한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두 명의 간호사 중 한 명은 3년제 대학을 졸업한 간호사였고,
다른 한 명은 2년제를 졸업한 간호사였다.
그 사이에서 내가 느낀 묘한 분위기는
단순한 성격차이가 아니었다.
학력 차이에서 비롯된 은근한 서열 의식,
상대를 가볍게 대하는 태도였다.
그 미묘한 위계감이
진료실 공기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었다.
곧 진료가 시작되었다.
버스에서 누군가 커다란 링 귀걸이를 잡아당겨
귓불이 찢겨 온 환자,
기계에 손가락이 잘려 산업재해로 접합수술을 하고
경과진료를 보러 온 환자.
눈앞에 아득해지고 손끝이 저려 왔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공만 맴돌았다.
의사와 간호사의 움직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치듯 펼쳐졌다.
나는 그저 그들의 전문적인 일상을 눈으로 담을 뿐이었다.
그렇게 낯선 장면 속으로 조금씩 발을 들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외래는 낯설지만 견딜 만한 공간이 되었다.
소독약 냄새, 모니터를 가득 채운 환자대기명단,
직원들이 바쁘게 오가는 발걸음 소리조차
조금씩 내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늘 무거운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이번에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
이것마저 버티지 못하면
나는 또다시 흔들릴 것이라는 불안함.
그 무게는 나를 지치게도 했지만, 동시에 붙잡아 주기도 했다.
몇 주 뒤, 새로운 실습생이 들어왔다.
나처럼 어색한 손놀림과 굳은 어깨로 시작했지만,
긴장감을 드러내면서도 늘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친구였다.
서툴지만 애쓰는 모습이 꼭 나를 보는 것 같아 더 마음이 갔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말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사실, 나도 수없이 도망치고 싶었던 날이 많았는데...
실습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묵묵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어떻게 버텼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버텨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무게는 나를 버겁게 했지만, 결국 단련시켰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
그 시절의 나는 분명 서툴렀지만,
작은 어른으로서 무게를 견디려 애쓰던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때 배운 버팀의 리듬은
앞으로의 갈림길에서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