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택했지만,
대학은 문과인 행정학과로 진학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빠가 내가 꼭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다. 작은 아빠와 작은엄마 모두 공무원이었고, 집안의 공기는 늘 '안정된 삶 = 공무원'이라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특별히 큰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그 기대에 따라간 셈이었다.
대학 시절, 아빠의 바람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긴 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매달려 본 적은 없었다. 세 번 정도 시험을 치렀지만, 솔직히 말해 공부다운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냥 횟수만 채우듯 응시했다.
계속 시험에서 떨어지고 나니, 부모님도 조금씩 기대를 내려놓으시는 듯했다. 나 역시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건 내 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엄마 지인의 소개로 핸드폰 매장에 취직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개통과 전산처리만 맡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판매까지 해야겠다.
실적 압박과 고객 응대의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퇴근 후 술로 하루를 버티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새 일주일 중 다섯 날은 술에 기대어 살고 있었다.
이렇게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부모님께 말도 하지 않은 채 출근을 멈췄다. 그때의 나는 그저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는 관심 있던 뷰티 분야로 눈을 돌렸다.
강남의 한 뷰티 아카데미를 찾아가 상담까지 받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비싼 학원비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현실은 언제나 꿈보다 먼저 나를 붙잡았다.
그 무렵 친구가 말했다.
"나 간호학원 다니려고 하는데, 같이 가볼래?"
나는 깊이 고민하지도 않고 그 길을 따라나섰다. 그저 엉겁결에 발을 맞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선택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간호학원에 등록하고 첫 수업을 들었을 때, 마음 한구석이 잠시 가라앉는 걸 느꼈다.
오랜만에 집중해서 공부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대학 다닐 때 이렇게 했으면 벌써 공무원 되고도 남았겠네'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애초에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건, 그 길이 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불안감이 늘 나를 방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때의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다.
아빠는 내가 간호학원에 다니는 모습을 보고 말씀하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간호학과 보낼 걸 그랬다."
간호학원이 아닌, 간호대학에 가는 게 어떻겠냐는 아빠의 질문에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도 집에는 대학생인 둘째 동생과 고등학생인 막내 동생이 있었고, 나는 더 이상 부모님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묵묵히 이 길을 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늘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아빠가 그려준 길은 공무원이었지만, 내가 끝내 선택한 길은 간호복을 입고 환자 곁에 서 있는 일이었다. 그 시작은 엉겁결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