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마조마한 마음, 서툰 시작 그 위에서

by 수아했어오늘도

간호조무사 자격증 시험을 치르고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시험을 마치자마자 '널스잡'에 들어가 집 근처 병원 공고를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친구와 함께 피시방에 앉아 게임을 하다가도, 이력서 양식을 띄워놓고 하나하나 채워 넣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직원을 두 명 구하는 한의원 공고가 떴는데,

같이 지원해 볼래?"


우리는 함께 면접을 보러 갔다. 친구가 먼저 들어가고, 그다음이 내 차례였다. 진료실에는 대표원장님 한 분, 앞으로 전담하게 될 원장님 한 분, 그리고 총괄실장 역할을 하는 간호사 선생님이 자리하고 계셨다. 생각보다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셨다. 아니면 그 순간의 긴장감이 시간을 더디게 만들어, 면접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건지도 모른다. 둘 다 붙게 될지, 둘 다 떨어질지, 아니면 한 명만 붙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제로 구하는 인원은 단 한 명뿐이었다.


결국 친구는 떨어지고, 나 혼자 합격했다. 공고를 알려준 것이 친구였기에 미안한 마음이 크게 밀려왔다. 원래는 같이 일할 줄 알았기에 든든했는데, 혼자 남게 되니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내가 붙어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불안과 안도, 그리고 미안함이 뒤섞인 그 마음은 새로운 시작 앞에서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출근 첫날, 새하얀 바탕에 노란색으로 포인트가 들어간 간호복을 건네받았다. 목카라에 리본 매듭을 묶으니 꼭 스튜어디스 같았다. 낯설지만 단정한 차림새는 나를 한순간에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옷을 입는 순간, 이제는 정말 환자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한의원에는 이미 간호사 두 명과 간호조무사 한 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다들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원장님 세 분도 차분한 분위기로 이끌어 주셨다. 환자들은 주로 목이나 허리가 불편해 찾아왔다. 초진 환자가 오면 혈압을 재고 병력을 확인한 뒤, 아픈 부위를 묻는 초진 설문지를 작성했다. 나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전산 프로그램에 입력했다.


진료실에서 원장님은 환자의 상태를 살핀 뒤 영상의뢰서를 작성해 근처 영상의학과로 보냈다. CT나 MRI를 촬영한 CD와 판독지를 들고 환자가 다시 돌아오면, 그제야 치료 방향이 결정되었다. 일반 침치료, 봉침, 약침 주사, 추나치료, 물리치료, 한약까지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진료를 마친 환자를 치료실로 안내하는 일도 내 몫이었다. 환복을 돕고, 침을 맞기 편한 자세를 잡아드린 뒤 원장님을 불렀다. 원장님이 침을 놓으면, 나는 옆에서 15분 타이머를 맞췄다. 시간이 되면 발침을 하고, 이어서 물리치료를 도와드렸다.


한 번은 발침이 하나 덜 되어 있는 걸 물리치료 중에 발견한 적이 있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바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때의 아찔함은 지금도 또렷하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발침을 할 때마다 반드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습관을 들였다. 작은 실수 하나가 환자에게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뼈저리게 배웠던 것이다.


봉침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봉침테스트'를 진행해야 했다. 나는 환자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확인서를 받은 뒤 직접 스킨테스트를 했다. 얇은 바늘로 환자의 피부에 소량을 주입하는 단순한 과정이었지만, 그 순간 내 손끝은 부들부들 떨렸다. 혹여나 잘못될까, 작은 실수라도 환자에게 큰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쿵쿵 울려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떤 시술이든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


처음엔 주사가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한의원에 지원한 것도 없지는 않았다. 침과 물리치료가 주를 이루는 한의원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간호조무사가 맡는 일은 환자 안내, 전산입력, 발침, 물리치료, 치료실 정리 같은 잡무에 가까운 일이 더 많았다.


그곳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대학을 나왔다'는 것이 월급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간호조무사라는 같은 이름으로 일하면서도 학력이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 사실이 약간 씁쓸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래도 지난 시간들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싶은 묘한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그 당시에는 한의원에서 일하게 된 걸 후회하지 않았다. 좋은 동료들이 있었고, 환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매일 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외과나 수술방 같은 곳에서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한의원에서만 5년을 넘게 일했지만, 다른 과로 옮겨가려 할 때는 여전히 경력 없는 초보로 다시 시작해야 했으니까.


그때의 선택이 잘못은 아니었다. 다만 그 시절을 돌아보면, 처음의 선택이 얼마나 오랫동안 무게를 가지는지 실감한다. 조마조마했던 불안, 환자 곁에서 배운 서툰 나날들, 그 모든 순간이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처음의 선택은 우연 같고, 미숙하기도 하지만

결국 삶의 결을 바꾼다.


삶을 지탱하는 건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끝내 견뎌낸 선택들이다.

그 무게가 아프게 남을수록, 오히려 단단한 힘이 된다.


어쩌면 인생이란,

옳고 그름의 결과가 아니라

그 무게를 어떻게 짊어지고 살아내느냐에

달린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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