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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즈 Dec 25. 2019

세상의 모든 사랑 찌질이는 여기 모여라

 우리가 잃어버린 낭만에 대하여 - 버즈, 더넛츠, 토이의 음악 리뷰

요즘은 정말 정 많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다. 하다 못해 정으로 시작해서 정으로 끝나는 사랑마저도 ‘쿨’하기 그지없다. 어렸을 땐, 세상에서 가장 사랑에 취한 감성(사실은 술에 취한 것이었겠지만)으로 사랑 노래를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여자친구에게 걸리니까 향수 뿌리지 말라는 쿨하다 못해 ‘못된’ 스타일의 사랑 노래나 ‘너의 아름다움이 최고야’ 싶은 느낌의 사랑 노래가 가득하다. 술로 친다면.... 소주보단 칵테일 느낌? (아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을 리뷰하려는 게 아니니 오해 스킵 금지)


목소리 외모 가창력 모두가 따라주던 쌈자 2003~2005년 시즌은 노래방 황태자


소주 한잔이나 이별 택시 같은 발라드는 여전히 명곡으로 이제 곧 클래식에 올라갈 지경이다. 그런데 90년대생을 열광하게 했던 노래들은 가사에서 주는 그 감동의 힘을 잃어버렸다. 특히나 버즈는 그 유명한 쌈자를 몰라 때문에 쌈자신으로만 등극되어버렸다. 요즘 세대는 그 당시 쌈자신이 남학생들을 어떤 마음으로 노래방으로 향하게 했는지 모른다.


수없이 어긋난대도 기다릴게, 아무리 가슴 아파도 웃어볼게
떠나선 안돼 서둘러 저버러지 마.
날 밀어내도. 깊어지는 이 사랑을 봐
 
버즈의 ‘남자를 몰라’ 중


여기서부터 조금씩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때 노래 가사가 이랬던가? 뭔가 이상한데????


날 사랑해줘요 날 울리지 마요
숨 쉬는 것보다 잦은 이 말 하나도
자신 있게 못하는 늘 숨어만 있는
나는 겁쟁이랍니다

버즈의 ‘겁쟁이’



요약하면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하긴 하는데 내가 너무 못났다
그럼 노력해서 잘나면 되잖아!! 아니 그리고 뭐 그렇게 부족하대!? 그렇게 쫄리면 좋아하질 말던가! 스토커도 아니고 늘 숨어만 있는 거지? 살짝 소름 돋는데?
이와 같은 말들이 단전에서 올라올 것이다. 정말 쌈자신 목소리니 명곡이 되었지, 사실 그 당시에도 노래방 가면 몇몇 출중한 이들이 아니면 솔직히 세상 찌질하게 술 먹고 부르기 좋은 음악이었다. (뭐 아직도 그렇지 뭐....)


이렇듯 버즈가 사랑 찌질이로서 이미 강력한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망각하고 있던, 세상 찌질한 음악의 정수를 담고 있는 곡이 있었으니 바로 더넛츠의 ‘사랑의 바보’이다.



원하는 좋은 사람 나타날 때까지
난 잠시 그녈 지켜줄 뿐야
.....
언제든 필요할 땐 편히 날 쓰도록
늘 닿는 곳에 있어 줄 거야
어느 날 말없이 떠나간대도
그 뒷모습까지도 사랑할래

더넛츠의 ‘사랑의 바보’ 중



호구도 세상 이런 호구가 없다. 자기가 마을 앞에 있는 장승도 아니고 뭘 그렇게 늘 닿는 곳에 있어 준다고 하는 것인가.  적어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주려면 줄 것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줄게 딱히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넉넉해 보이는 것도 아니다. (하필 더 넛츠가 그 당시에 신인이었어서...) 본인 먹고 살기도 바쁜 사람이 뭘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열심이란 소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저 뛰어넘는 원조는 따로 있었으니....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
널 볼 수만 있다면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
 
토이의 ‘좋은 사람’ 중



....CCTV냐? 다들 뭘 그렇게 보기만 하는 사랑에 설레어들 하는지... 사랑은 쟁취하는 것 아닌가? 좋으면 좋다고 어필을 해야 상대방이 좋다고 할지 어떨지 말하지... 그리고 가사를 보다 보면 상대방도 알면서 어장관리하는 것 같다는 느낌까지 주는 호구의 노래다. 이렇게 시대가 다르다. 분명하게 선을 지키지 않으면 어장관리에 호구까지..... 유희열이 가사를 쓰면서 생각도 못했을 해석일지도 모른다.


하필 사진도. CCTV 느낌인거냐...



내가 호구가 될 사랑임을 너무나 잘 알고, 득과 실을 따진다면 누가 봐도 잃을게 많은 사랑에 매달릴  있는 그들의 무모한 용기는 무한도전 같다. 소와 인간의 대결을 단순한 재미이고, 국제 조정대회에서 아마추어가(사실 그냥 초짜가) 프로들 사이에서 도전하는 것은 무모함의 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은 도전했고 성공을 이룰 때도, 아름다운 실패라는 말로 마무리될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걸 왜 해야 하냐고 떠들던 멤버들도 결국엔 그들의 열정과 최대의 노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세상 최고 사랑 찌질이들의 노래는 순수하다 못해 순진하다. 그 사람만을 바라보는 무조건적인 질주는 세상살이의 버거움에 찌든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낭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슴 아파 쓰러질 것처럼 노래도 불러보고, 호구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말없이 기다려주고, 다른 사람과 행복해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 요즘 세상엔 ‘그런 오가지도 못하는 사랑과 연애에 목메어서 무얼 하겠냐?’라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순수하게 감정만으로 사람을 바라볼  있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의 끝을 향해 달릴  있는 사람이라면 연애도 계산에 따르는 세상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멋진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의 가사는 말한다. 낭만은 돌아오지 못할,  가슴이 잃어버린 것. 낭만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젠 내가 즐길 수 없는, 그러나 때때로 떠오르는 무언가다.

오랜만에 리뷰를 위해 노래들을 들으며 옛날엔 못 느꼈던 해석을 하고 났더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웃음이 났다.

그러다 드는 생각.

누가 우리의 낭만을 가져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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