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분산하기
오랜만에 블로그를 뒤지다가 재작년 이맘때 즈음의 일기를 발견했다.
요즘은 아침에 5km, 저녁에 5km 뛰고 들어와서 정신없이 누워 자기 바쁘다. 그 사이사이에 공부를 끼워 넣어보려고 하는 중이지만 힘이 들어서 영 쉽지는 않다. 그래도 벌써 아침저녁으로 조깅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몸 쓰는 일을 워낙에 싫어했고 싫어하는 나인지라 이런 시도가 쭉 이어지고 습관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고무적이다.
산다는 게 참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잦았다. 숨을 쉬고는 있지만, 내가 살아있다는 걸 도무지 실감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전에 일기에도 몇 번 썼듯, 그것을 음식으로 채워 넣어 보려고 했었다. 맛이라는 게 느껴질 때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실감이 났으니까. 공허한 속을 음식으로 채워 넣으면 일순 달래지는 것도 같았기에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아침저녁에 찬 공기를 맞으며 달릴 때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게 너무도 잘 느껴진다. 찢어지는 장딴지 근육통도, 가쁜 숨도 내가 지금 이 공간을 뛰고 있음을, 이 지면에 발을 내딛고 있음을 시시각각 알리고 있다. 후- 하- 를 반복하는 사이에 이미 나는 저 멀리까지 도달해 있다. 처음 3일 정도는 도착점이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바닥만 보고 뛰었다. 뛰어야 하는 거리가 한참 남았다는 것을 목도하는 일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그저 내달린다. 시선은 저 너머 허공 어딘가를 부유한다. 머리에 쓴 헤드폰 너머로 아무거나 틀어둔 노랫말이 웅웅 울려댄다. 머릿속은 텅 비어 있다. 이 순간 나는 달리는 기계다. 그냥 오로지 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 다리는 저절로 내달린다. 지면과 발바닥이 부딪힌다. 비로소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보자마자 놀라 입을 떡 벌렸다. 내가 이런 기특한 일을 했었단 말이야? 그런데 왜 지금은 안 하지? 이 2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생각해 보니 지금껏 모든 일을 이런 식으로 해왔던 것 같다.
1단계. 열정에 불타올라 최우선순위로 둔다.
2단계.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기력을 소진하고 지쳐 버린다.
3단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어느 순간 정신 차려 보면 안 하고 있다.
4단계. 잊는다.
짐작컨대 슬로 조깅도 이런 식으로 하다가 습관이 될락 말락 할 즈음에 그만두지 않았을까.
실행력은 좋지만 항상 뒷심이 약한 나. 그런 내가 요즘 새롭게 빠진 취미는 다름 아닌 글쓰기이다.
셈해보니 브런치 시작일부터 지금까지 하루에 한 편씩 글을 발행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지금이 딱 지칠 타이밍이다. 그러다가 결국 끝까지 꾸준히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거지.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안다. 열정도 충분히 분배해야 지치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는 법이니까.
내 열정의 총량을 물에 비유한다면, 이번에는 부디 적당한 온도로 오래 끓고 싶다. 초반부터 팔팔 끓이다가 다 졸아서 없어지면 어떡하나. 그 온도 조절을 하는 건 주인인 나의 몫이겠지.
생각해 보니 적당한 온도의 법칙은 대인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고,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크면 오히려 관계가 오래가지 않았더랬다. 오히려 서로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식으로 잔잔하게 이어지는 만남이 예상치 못하게 오래가기도 한다.
이번에야말로 슬로 조깅도, 글쓰기도- 적당한 열정으로, 잔잔한 온도로 끝까지 오래 같이 가고 싶다. 적당히 관심 줄 테니까, 우리 오래오래 친하게 지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