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도 없는 미혼이 '금쪽이'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

얘, 너는 왜 인사를 안 하니?

by 지구별 외계인




내 필명은 '지구별 외계인'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자 필명을 고민할 때, 1분여 만에 결정할 만큼 처음부터 큰 고민 없이 지은 이름이다. 이 직관적인 작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나의 사회생활은 처음부터 그리 순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첫 집단생활은 영어유치원과 미술학원에서 시작되었는데, 나는 미술학원 통학 차량에 타는 것부터가 난제였다.


아이들을 인솔하는 미술학원 선생님은 구불구불한 긴 머리칼이 인상적인 분이셨는데, 매번 인사를 안 하고 차량에 타는 나를 붙잡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 너는 왜 인사를 안 하니?

- 인사 왜 안 해?

- 내일도 차에 탈 때 '안녕하세요' 인사 안 하면, 선생님한테 혼나.



선생님은 나름대로 의아하셨을 것이다. 등하원할 때마다 선생님께 인사 한 마디 없는 아이. 누가 봐도 '쟤는 참 버릇이 없네' 싶을 만한 아이.


하지만 그때의 그 아이에게도 사정이 없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이 다섯 글자 소리 내어 말하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차에 탈 때마다 입이 굳었기 때문이다.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이었는데.. 여섯 살 아이가 그걸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밖에도, 유치원에서 모두가 나와서 하는 발표 순서를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를 하지 않나-이 기억은 너무나도 수치스러워서 그 뒤로도 잊을 만하면 생각이 났다-그뿐인가? 학교에 입학해서는 1학년의 절반이 지날 때까지 친구 한 명 제대로 못 사귀었다. 말하는 게 너무 어려웠던 탓이다.


밖에 나가면 누군가 나에게 말을 시킬까 봐 내내 불안하고, 그러다가 누군가 진짜로 말을 건네기라도 하면 심장이 터질 듯 뛰고. 그런 와중에 입은 굳어서 말은 안 나오고. 침묵이 길어지면 상대의 표정은 점점 변해가고. 그럼 나는 그게 또 불안해 미치겠고.


다행히 이 증상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차 좋아졌고, 많지는 않았지만 나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를 여럿 사귀게 되면서- 다행히 특정 상황에서 말이 안 나오는 일은 없어졌다.






그때의 기억들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아, 나도 그랬었는데' 하면서 줄줄이 사탕처럼 소환되었다. 어느 날 모 육아 정보 프로그램을 보다가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병명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증상이 그 시절의 나의 것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 말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못 하는 겁니다!



그때의 미술 선생님과 비슷한 헤어 스타일-구불구불한 긴 머리칼-을 하신 육아 전문가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걸 보고 있자니 어쩐지 묘한 쾌감마저 느껴지는 것이, 과장 좀 보태자면 그때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던 나를- 타임머신 타고 가서 이해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느낌이었다.


그랬구나. 와, 이제야 내가 왜 그랬는지를 알겠네.


그런데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SNS나 인터넷 포털에 '나도 금쪽이 본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해된다'는 평이 자주 눈에 띄는 걸 보면.


그렇다면 그 '금쪽이' 프로그램은 어른이들 안에 숨어 있던 내 안의 어린아이까지 키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지금에야 육아 정보 프로그램도 속속들이 생기면서 아동 발달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지만- 그때는 여러 모로 그런 정보가 부족한 시대였으니, 나처럼 사회적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있어도 '그냥 낯 좀 많이 가리는 편인가 보네' 수준으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만약 그때의 나와 같은 어려움을 가진 아이가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혼자서 불안과 싸우는 것보다는 더 편안하게 자라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몰랐던 나를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이것이 미혼인 내가 가끔 TV 채널을 돌리다가 '금쪽이' 프로그램이 나오면 채널을 고정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