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내 글을 읽고 울었다

'저장 강박 환자와 함께 산다는 것' 속편

by 지구별 외계인



나는 원래 부모님과 비밀이 거의 없는 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도 하고, 그를 계기로 가족상담까지 받았었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지나온 우리 가족은 이전보다 서로를 더욱 잘 알게 되었다. 물론 굳이 숨기는 일이 없다는 것이지 부모님의 간섭을 좋아하는 편은 또 아니어서,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을 먼저 나서서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브런치 심사에 통과했을 때도 그냥 조용히 있자, 싶었다. 하지만 역시 입이 근질근질한 촉새 딸은 엄마와 토요일 오후 산책을 나갔다가 또 조잘조잘 다 말해 버리고 만 것이다.


*


며칠 전 목요일에 일 보러 간 동생을 기다리면서 카페에 앉아 저장 강박 환자와 함께 산다는 것 을 썼다. 이 주제로 글을 쓴 게 처음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해에 모 수필 공모전에 같은 주제로 글을 써냈다가 낙방했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흐른 터라 그때와는 다른 분위기의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유년기의 기억부터 되짚어가며 아예 처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몰입이 되어 나중에는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아직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쓴 글을 발행했을 때는 밖에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카페 3층에서 우산 쓰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한참 멍을 때렸다.


브런치 심사에 통과해 글을 쓴 지 오래되지도 않았고-이제 일주일 됐다-애초에 자기만족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큰 반응은 기대하지 않는다는 마음속 생각과는 다르게, 그날은 하루 종일 브런치 어플을 켰다 껐다 했던 것 같다. 어라, 한 분이 라이킷 눌러주셨네. 나도 저분 글 읽어봐야지. 오오, 라이킷 하나 더 늘었어! 그런 소소한 재미로 시간을 때우던 목요일 저녁이었다. 브런치 앱 UI를 아예 외우기라도 할 듯이 들여다보다가 앱 하단에 올라온 익숙한 제목을 발견했다.





응?


순간 보자마자 눈을 의심했다. 내 글이 브런치 메인에 올라와 있다니?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실감이 안 나는데 그 와중에 너무 기쁜 나머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와, 신기해!


진심을 담아 글을 쓰면 누군가는 그 여백 사이 진심을 기어코 읽어 주기도 하는구나. 그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덕분에 당분간은 계속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고마워요 브런치!





쾌청한 주말이다. 늘어지게 늦잠을 잔 다음 외출복을 주섬주섬 갖춰 입고 엄마랑 아파트 단지 내를 돌기로 했다. 1층에 내리자마자 엄마가 내 손을 잡아 왔다. 나도 적당한 힘으로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엄마와 손 잡고 산책이라니. 예전 같았으면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다. 근 몇 년 사이에 엄마와 부쩍 사이가 좋아졌다. 주말이면 가끔 이렇게 부모님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거나,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며 수다를 떨기도 한다.


*


나는 원래도 아빠와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 엄마와는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엄마도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다소 어색해하는 듯 보였다. 그때는 엄마와는 영영 이렇게 평행선을 걷겠지, 생각했다. 나는 상처 가득한 유년기를 끌어안은 채 엄마가 나를 방치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엄마는 엄마대로 어느새 다 커버린 자식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던- 일종의 과도기였다.


우리는 결국 서로를 위해 가족상담을 받기로 했다. 나로서는 마지막 동아줄이었고, 엄마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상담 초반, 나에게 돌아왔던 질문이 생각이 난다. '엄마에게 바라는 점이 있나요?'


나는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말은 가슴 깊숙한 곳에 뜨겁게 숨어 있다가, 정말 필요한 때에 튀어나오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건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 엄마한테 1순위가 되고 싶어요. 엄마한테 할머니보다도, 직장보다도 더 앞선 존재이고 싶어요.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그야말로 '펑펑' 우셨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정말 미안하다고, 너는 언제나 내 1순위였다고 사과하셨다. 나는 그날부터 엄마와 평행선을 걷겠다는 다짐을 지워 버렸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엄마를 향해 걷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우리는 결국 교차해 만났다.


지금 손을 잡고 걷는 우리 모녀의 모습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서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결과인 셈이다.


*


나는 대체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입을 쉴 새 없이 놀렸다. 오빠 이야기도 했다가, 동생 이야기도 했다가. 그때는 그랬어, 이 때는 이랬지. 아빠는 그랬다? 엄마 알고 있었어?


엄마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고 내 말에 대답해 주었다. 신기하다. 이제는 엄마랑 단둘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게. 그 사실이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공기에 봄 냄새가 섞여 있는 게 좋아서였을까. 우리는 상기된 기분으로 봄 단지를 걸었다. 단지 곳곳에 목련과 벚꽃이 피어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수시로 꽃비가 내렸다. 달큼한 꽃냄새가 났다.


그렇게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단지에서 사랑방으로 통하는 정자가 보였다.


"우리 좀 앉았다 갈까?"

"좋아!"


사실 정말로 걷는 게 목적은 아니었기에 냅다 쉬어 가기로 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면서 모처럼의 해바라기를 즐기다, 엄마가 문득 입을 열었다.


- 엄마가 너튜브에서 봤는데, 에픽테토스라는 학자가 있대...


사실 말의 절반 정도는 한쪽 귀로 들어왔다가 한쪽 귀로 나갔지만, 나는 그냥 그 순간이 좋았다. 그저 평화로웠다.


-... 그래서 죽음은 뱃사공의 부름과도 같은 거야.


'그러네, 진짜.'


사실 나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있지, 엄마. 브런치라는 플랫폼 알아?'


- 브런치? 뭐, 먹는 거?


'아니. 글 쓰는 플랫폼인데, 엄마 은퇴하고 하면 진짜 좋을 것 같아서. 엄마한테는 이야기가 엄청 많을 것 같아. 방금 뱃사공 이야기처럼.'


- 근데 갑자기 왜?


'사실은 나도 브런치에 글 쓰는데, 이번에 할머니 얘기를 적었거든.'


그렇게 엄마한테 저장 강박 환자와 함께 산다는 것 을 보여주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짐을 정리하는 부분에서 눈물을 훔치더니, 끝까지 읽고는 잘 썼다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고마워, 엄마. 사실 엄마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이건 내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엄마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집에 돌아오는데, 엄마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꺼냈다.


- 엄마가 너희들 어릴 때 잠만 자서 미안해..


'응?'


나는 당황해 물었다. 물론 글에 엄마가 잠이 많았다는 이야기는 했지만, 뒤이어 '이제는 엄마가 이해된다'는 골자로 썼기 때문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엄마가 이해된다고, 엄마 정말 고생 많았다는 말을 그 글을 보여줌으로써 간접적으로라도 전하고 싶어서 보여준 거였는데. 엄마가 죄책감을 느낄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 했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말했다.


'아냐, 엄마. 이제는 엄마가 이해된다고도 썼잖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 미안해..

그때 나는 깨달았다. 그렇구나. 부모 마음이라는 게 이렇구나. 자신이 가진 열 개 중에 아홉을 내어줘 놓고도 남은 하나까지 더 얹어주지 못해 미안한 게 부모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간과했던 거다. 왜냐하면 내가 부모가 되어본 적 없으니까. 그냥 들어서 알 뿐이니까.


내가 이렇게나 컸는데도, 이제 어린아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징그러운 어른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어린 시절에 못해준 것을 미안해하는 엄마를 바라보다가, 나는 충동적으로 말했다.


'엄마.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는 것 같아.'


- 응?


'내가 엄마여도 엄마보다 잘할 자신 없어. 엄마는 충분히 최선을 다했어.'


그래. 내가 엄마가 된다 해도, 지금의 엄마보다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는 조금 바빴어도, 그래서 신경을 못 써줬어도, 다른 사람들이 늘 더 내놓으라고 성화여도 늘 언제나 우리가 1순위였으니까. 그 사실을 성인이 된 후에야 깨닫는다. 우리 엄마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저장 강박 환자와 함께 살았어도 내가 이만큼 잘 자란 것은- 엄마의 사랑 덕분이라는 것을.


엄마는 잠시 말이 없다가, 아니라고 속삭였다. 너는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그 말에는 부러 답하지 않았다. 끝없는 공방이 될 것 같았으므로.



봄볕이 따뜻했다. 우리는 손에 땀이 나는데도 쥔 손을 기어코 놓지 않고 걸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