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모으는 사람들
우리 집엔 종종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곤 했다. 나는 어제 분명히 엄마가 버렸던 낡은 서랍장이 마치 제 발로 집을 찾아 들어온 것처럼 태연하게 제 원래 자리에 돌아와 있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언젠가 내가 아이스크림을 물고 색연필로 그려놓았던 낙서와 눈이 마주쳤다. 분명히 우리 집 물건이었'었'다. 어제 오전까지는.
하지만 나는 마법의 존재를 믿기에는 이미 머리가 클 만큼 큰 뒤였다. 이제는 부엉이가 물고 오는 마법 학교의 입학 통지서를 기다리지도 않고, 산타가 오는 것을 직접 보겠다고 늦게까지 깨어 있지도 않으니까.
마법은 없다.
누가 버린 것을 다시 주워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나는 예상했던 일이 한 치도 어긋남 없이 벌어진 것에 약간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일종의 고무감과 함께 뒷맛이 찝찝한 걸 보니 영 좋은 일은 아니었다.
우리 집에는 부모님과 형제 말고도 이모와 외할머니가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청각 장애인이셨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탓에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집에 있다 보면 불시에 화들짝 놀라는 일이 잦았다. 가령 이런 경우였다.
"아이가!! (아이고!!)"
할머니가 냅다 소리를 내지를 땐, 당신 마음에 차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건 대개 아빠를 향한 외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의 손에는 쓰레기가 한가득 들려있었다. 하나씩 차곡차곡 접힌 비니루봉지(비닐봉지) 묶음, 낡디 낡은 쇼핑백 묶음, 이제는 쓰지 않는 오래된 노트, 짝을 잃어버린 양말... 내 눈에는 하등 쓰레기 그 이상도 이하로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물건들이 할머니의 눈에는 달리 보이는 듯했다. 할머니는 심한 팔자걸음으로 걸어와 아빠의 손에 들린 것들을 거칠게 빼앗았다.
이런 경우 아빠가 보이는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가끔은 이런 걸 왜 모아두냐며 맞서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몰래 버리려다 들킨 것을 아쉬워하다가 끝내는 힘없이 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아빠도 아닌데 명치 위에 무거운 돌이 하나 올려져 있는 듯 답답함을 느꼈다. 가끔은 언뜻 숨이 막혔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모으는 비닐봉지 같은 것은 하도 어릴 때부터 책장 사이사이에 있던 것이라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놀랍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냥 집에 친구를 데려오는 일만이 좀 부끄러웠다. 우리 집에는 그런 것들이 아주 많았으니까. 내 눈에는 쓰레기고 남들 눈에도 쓰레기지만 단 한 사람, 내 할머니에게만큼은 언젠가 쓰임이 있을 보물들이. 그래서 우리 집에는 친구들을 데려온 적이 손에 꼽는다. 어린 마음에도 우리 집이 부끄러웠다.
할머니가 집을 비운 어느 휴일에 큰맘 먹고 대청소를 했다가도 그 다음날 원상 복구되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자,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그 모든 행위를 그만둔 듯했다. 이제 더 이상 집을 치우지도, 청소하지도 않았다. 나갔다 오면 옷은 아무렇게나 벗어 턱턱 놓았고, 물건들은 제 위치를 잃고 아무렇게나 집안을 뒹굴었다. 할머니와 이모는 자신의 보물들 이외에는 딱히 타인의 생활 습관까지 간섭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집은 점점 손님을 초대하기 꺼려지는 공간으로 변해갔고, 성인이 된 어느 날까지 그게 당연한 삶의 배경이 되었다.
스물네 살 봄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입관 전까지는 실감이 하나도 안 나다가, 할머니의 눈 감은 얼굴을 보자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우리 할머니는 친구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 다 가는 노인정도 못 갔다. 병세가 심해지실 즈음에는 집 현관 비밀번호도 누르지 못하셨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가 천국까지 어떻게 찾아가지? 잘 갈 수 있을까? 길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나중에 내가 죽어서 저승에 갔는데 할머니가 없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장례지도사가 펜을 주었고, 나는 관에 적었다. 어디 가지 말고 꼭 천국에 가 있으라고.
나는 할머니를 많이 사랑했다. 할머니는 책장 사이 당신이 접어 넣는 비닐봉지처럼, 사랑도 차곡차곡 접어 여기저기 숨겨 놓는 분이셨다. 그걸 찾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나는, 그런대로 그 사랑을 잘 찾아냈던 것 같다.
발인 후 집에 돌아왔는데 하나도 실감이 안 났다. 이제는 할머니가 우리 집에 없다는 게. 할머니의 보물을 한가득 버려도 어디선가 고함이 날아올 일이 없다는 게. 그 모든 게 하나도 실감이 안 나면서 갑자기 엄청난 피로감을 느꼈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할머니의 장례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안을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창고방에 나뒹굴던 물건들을 전부 싸서 버렸다. 할머니가 차마 못 입고 옷장에 고이고이 모셔만 두던 옷들도 결국 제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버려졌다. 그렇게 한참을 내다 버리던 엄마가 어느 날 나지막이 말했다.
- 할머니 짐들 속에서 돈이 많이 나왔어.
'진짜? 얼마나?'
- 다 하면 몇백 될 것 같은데.
'헐.'
할마씨도 참. 엄마는 그렇게 한탄처럼 속삭이면서도, 그게 할머니가 자신에게 남겨준 선물인 것 같다고 했다.
엄마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집안 군데군데 접어 넣은 사랑을.
이듬해 가을, 전세 만기가 되어 이사를 했다. 이사 가는 집은 어느 정도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집이었고, 이전 집에 비하면 관리가 된 집이었다. 엄마는 일주일 휴직계를 냈다.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도 주중엔 열심히 엄마를 도왔다. 오래된 접시들-한 번도 쓰지 않고 찬장에 처박혔던 접시들-을 정리해 버리고, 20년이 넘은 이불 뭉치들도 버리고... 그러면서 나는 깨달았다.
'우리 엄마, 정리 잘하는 사람이었네?'
한바탕 정리 후에 잠시 좀 쉬자며 커피 한 잔씩 타서 부엌에 마주 앉았다. 내가 느낀 감상을 엄마에게 들려주자 엄마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 예전에는 할머니 때문에...
버려도 다시 돌아오고, 돌아오고 그랬으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참았노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이사한 집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예전과 달리 널찍해진 집이 기꺼웠다.
이사가 마무리될 무렵, 나도 나대로 정리 작업에 착수했다. 내 방에 있던 오래된 책장을 버리기 위해 온갖 잡동사니를 끌어내렸다. 오래도록 청소하지 않아 쌓인 먼지가 호흡기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묵묵히 필요 없는 것들을 분류해 종량제 봉투에 그대로 처박았다. 정말 말 그대로 '처박았다'. 물건들이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냈고,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좋아 계속 그 행위를 반복했다.
언제부터 있었을지 모를 신문지 묶음, 오래된 양말 묶음, 스타킹 묶음, 종이백에 비닐봉지 묶음까지 다 처박고 나니 더 이상 치울 것이 없었다.
나는 가득 찬 종량제 봉투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어쩐지 울컥해 고개를 돌렸다.
겨우 이 정도였다.
내가 원했던 자유가 겨우 이 정도의 자유였다.
내 방을 내가 원하는 만큼 치우고 꾸밀 수 있는, 겨우 그만큼의 권리.
그 사실이 나를 허무하게 했다.
방의 상태는 곧 마음의 상태다.
직장인인 엄마는 주말에 늦잠을 잤다. 내 기억 속 엄마는 잠이 정말 많았고, 지금도 많다. 그런데 어쩐지 그때가 더 많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이젠 엄마가 나와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에 토라지지 않기 때문이겠지. 지금은 엄마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때는 부모에 대한 이해보다 내 서운함이 먼저였으니 말이다.
엄마는 평일엔 아침에 출근해 저녁 늦게 들어왔고, 주말엔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로서는 엄마가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 넘어서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기에 충분한 유년기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그냥 무기력했던 거다. 바깥세상에 지치고, 쉼이 되어야 할 집조차 진정한 쉼이 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시간이 흘러 엄마와 대화라는 것을 하게 되니, 엄마라는 역할 대신 그 너머에 있는 한 여성의 삶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그 세월 속의 엄마를 가만히 마주 보았다. 그제야 나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무게의 짐이, 고작 한 사람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었다는 게 보였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행복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방의 상태는 곧 마음의 상태니까.
할머니 안에는 얼마나 많은- 버릴 수 없는 마음들이 꽉꽉 들어차 있던 걸까?
무엇이 할머니를 비닐봉지 하나에 그리도 애태우게 만든 것일까?
이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꽤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나는 삶이 내 주도권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면 두 소매를 걷어붙이고 청소를 한다.
그럴 때면 다시 삶이 내 손안에 가득 들어찬 것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