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우지망생을 그만둔 이유
열다섯 살 무렵이었다. 한참 사춘기였고, 예민한 감수성 탓인지 반 친구들과도 어울리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가 없어 할 게 공부뿐이었던 나는 학교와 학원을 제외하고는 내내 독서실에 진을 치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한 덕인지 처음으로 전교 2등을 했다. 주변인들이 나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그때가 아마도 첫 성취의 기쁨과 '내가 특별하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맛보았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세상에 특별한 사람은 정말 많았으니까. 당장 내 위의 전교 1등 친구도 그러했지만, 내 앞에는 바로 친오빠라는 넘지 못할 산이 존재했다. 오빠는 공부를 '잘한다'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냥 머리가 똑똑했다. 내가 책상 앞에 앉아 2시간에 걸쳐 외울 분량을 오빠는 침대에 엎드려 30분이면 외웠으니 말 다 한 셈이다.
맏이인 첫째가 공부를 잘하니 부모님의 기대는 자연스럽게 둘째인 나에게도 쏠렸다. '오빠만큼은 아니어도 너도 웬만큼은 하겠지'라는 기대. 그 기대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시점, 나는 너튜브에서 고교 성우 대회 영상을 보게 되었다. 대상을 탄 학생들은 1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말 연기를 잘했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는 그만 목소리 연기에 홀딱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알음알음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로는 인터넷에서 비슷한 또래의 아마추어 성우팀에 가입해 2차 더빙 영상을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말이 좋아 성우팀이지 그냥 학생들끼리 만든 취미 동아리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럼에도 재미있었다.
- 너 정말 잘한다.
- 그러게, 재능 있어.
그때는 그 말이 얼마나 듣기 좋았는지. 어쩌면 평소에 채우지 못했던 또래 집단에 대한 갈증 때문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재능 있다'라는 칭찬에 홀려 버렸다. 내가 듣기에도 내 연기는 또래보다 괜찮게 들렸고, 점점 마이크 앞에 선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되었다. 그렇게 내 꿈은 어느새 성우가 되어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는 1년 간 성우 공채를 목표로 성우 학원에 다녔다. 그 1년 동안은 성공 일기까지 쓰며 열심히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불안에 잠식되는 나 자신이 느껴졌다.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남들은 다 대학에 다니며 미래를 준비하는데. 그러니 나도 어서 빨리 성우가 되어야 하는데. 내 실력은 프로가 되기에는 한참 부족한 걸 알기에 점점 무서웠다.
과정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채 결과만을 바라보고 달리는 일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힘에 부쳤다. 그때쯤 나에겐 고질적인 발성 문제가 있었는데, 며칠간 돌아오는 똑같은 피드백에 나는 그만 맥이 풀려 버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나는 재능이 없구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나에게는 마라톤을 달리는 데 정말로 필요한 게 없었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정말로 귀한 재능은 그 과정까지도 충분히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아니었을까. 그때의 나에겐 여유가 없었다. 10대 때 방문을 잠그고 밤을 새워가며 연기했던 그 즐거움은 어디 가고, 그저 관성적으로 대본을 읽는 나 자신을 끝내 견딜 수 없어 '이제는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 같다.
'너는 특별해', '너는 진짜 재능 있다', '진짜 잘하네' 등의 가능성을 부추기는 말에 취해 두둥실 떠올라 있다가, 다시 현실로 곤두박질치는 건 꽤나 아픈 일이었다. 그 말을 진짜로 믿었던 나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오자 갑자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가능성 있는 성우지망생에서 아무것도 아닌 '김 00'으로 돌아오자 그제야 내 이름 석 자가 보이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다른 사람처럼 살아도 되는 거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거야. 그런 깨달음이 갑자기 내 머리를 둥둥 울렸다. 그제야 나는 '~를 하기엔 이미 늦은 게 아닐까?'에서 벗어나 결심할 수 있었다.
늦었든 말든, 지금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걸 하자.
기세 좋게 마음먹은 것도 잠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혼란스러웠다.
그럼 그걸 알기 위해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 봐야겠다.
그래서 일단 대학에 갔다.
대학생이 된 어느 날, SNS에서 이런 글을 보게 되었다.
너는 원래 아무것도 아니란다. 부족한 자신을 좀 용서해 주렴.
성우지망생의 길을 그만둔 후 꽤나 시간이 지난 후에 마주친 그 말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랬구나. 내가 그때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직시하는 일이었던 거야.
재능이 없는 나, 평범한 나, 보잘것없는 나로 돌아가기 싫어한, 한 마디로 '내가 뭐라도 된 줄 아는 자아 비대함'으로 괴로웠던 20대 초반이었다.
본연의 흥미가 선행되고 그다음이 재능일 텐데, 나는 모순적으로 재능에 앞서 나의 흥미를 등한시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 그 과정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고, 결국 내가 남들과 비교해 그렇게 재능이 있거나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절망을 버틸 힘이 부족해 그 길을 끝까지 가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부족한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셈이다.
사실 인생에 있어서 잘못된 선택은 없다. 그저 때마다 마음이 가는 쪽을 고를 뿐. 우리는 어느 쪽이든 선택할 것이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나아가는 수밖에.
하지만 책임을 질 때는, 적어도 끝까지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꼭 '나는 특별하다' 일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건 그야말로 가짜 재능이다.
긴 대장정을 시작할 때 정말로 내게 필요한 것은, 그 과정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내 본연의 흥미를 정직하게 좇는 일이 아닐까.
글을 끝맺기 전에, 지금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지에 대해 말해 보겠다.
나는 사실 기억나지 않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나만의 책'을 가지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든, 무슨 이야기든, 그냥 내가 내 손으로 쓴 책을 가지고 싶었다. 그게 내 꿈이라면 꿈인 셈이다.
그런데 소설을 쓰자니 쉽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상상해 쓴다는 게 어려웠다. 무언가를 쓰고 싶은데, 그게 남의 이야기나 상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단 하나뿐인 셈이다.
내 이야기.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쓸 수 있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연재 중인 [조난당한 외계인을 찾습니다]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어려서부터 내가 물에 뜬 기름처럼 어색했다.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니 세상 누구에게라도 내 이야기를 터놓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던 것 같다.
그래. 그렇다면 내 이야기를 하자.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내 이야기를. 그리고 누군가에게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를.
그렇게 해서 어느 날엔가 내 이야기로 된 책을 가질 수 있다면, 내 꿈 한 가지는 이루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결과를 위해 달리는 건 달리는 사람에게도, 그걸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어떠한 감흥도 줄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내 목표는 하나다. 정말 즐겁게 내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 과정을 있는 그대로 즐기면서 글을 쓰는 것.
그렇게 해야 읽는 여러분들도 내 글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