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취에 대한 애정도 선천적일까?
외부세계로부터 온 우표는 삶의 폐쇄성을 와해시킨다.
읍내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시골마을에서 우표수집을 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열려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날에도..
내가 어릴 때, 정확히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 집은 경북 어느 소도시의 읍내와 떨어진 작은 마을에 있었는데 신문배달부 아저씨 외엔 외부인을 못 보는 날도 많았다. 그러니 추운 겨울날 아침 신문이 오면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땐 배달 오토바이의 손잡이에 달린 두툼한 방한장갑 조차도 신기해서 다가가서 만지작 거리기도 했다.
신문배달이 반가웠던 또 다른 이유는 '우표'였다. 나에게 신문에 붙은 우표는 흑백의 신문과 대조적인 '살아있는 그림'이었고 그때 당시 무궁화나 태극기 우표는 내게 꽤나 매혹적이었다. 마치 매일 생을 마감하는 신문이 담고 있는 생명력이 이 작은 종이에 모여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집에 도착한 신문은 우리 아버지께서 읽기 전 내 손을 거치는 경우가 많았다.
서툴지만 강렬한 건 비단 첫사랑만이 아니다.
어느 겨울날이었다. 새로 사귄 친구에게 문득 '편지'란 것을 쓰고 싶었던 나는 매일신문에서 뗀 우표를 전부 꺼내서 작은 종이에 빼곡히 붙였고 친구 이름을 적어서 우체부에게 전했다. 예전 시골은 좁아서 이름만 대면 어디 사는 누군지 알 정도였다. 그래서 그 친구의 아버지 이름을 알리면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 집을 거쳐 친구가 사는 마을로 가는 길에 내 편지를 전할 수 있었다. 굳이 '우체국'이라는 곳을 거쳐 우편제도를 따르지 않아도 말이다. 부모님은 연신 우표를 그렇게 많이 붙이면 어떡하냐고 하시며 웃으셨고 난 정작 '00아, 안녕?'이란 편지 쓰기란 행위가 너무 막연했던 어린아이답게 싱거운 인사만 덩그러니 쓰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우표를 많이 붙였는지 모르겠다. 우표란 예쁜 물건이고 예쁜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직관적인 생각으로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했을 것이다.
후에 친구는 내 엉뚱한 편지를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어린 날의 첫 우표수집과 첫 편지 쓰기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지금도 가끔 신문을 싸는 띠지만 보면(물론 수취인 주소와 신문사가 인쇄된 하얀색 띠지이지만) 그때가 생각난다. 매일 아침 뛸 듯이 기뻐하며 우표를 모으던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