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표로 만드는 추억의 지도

우표 한 장으로 나의 세상은 확장된다

by Alienwitch
우표로 되찾는 잃어버린 시간


난 초등학교 이후에도 우표수집을 해왔다. 이 시기에도 난 아마추어 티를 면치 못했는데 그 이유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이기도 했고 종종 시험이라는 난관이 내 취미의 성장을 억제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우체국에서 발행하는 모든 우표를 산다기보다 마음에 들거나 희소성이 있다고 판단되면(인기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 때 찾아가서 샀던 것이다. 낱장 단위로 말이다. 그에 걸맞게 작은 우표수집책도 샀는데 점점 손이 커져 갈수록 좀 더 큰 수집책을 하나 더 샀다. 우체국을 가면 늘 설렌다. 마치 맛있는 뷔페에 가서 먹을 건 한정되어 있는데 가장 맛있어 보이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요리를 먹으려고 잔뜩 기대에 부푸는 것과 같다. 이런 마음은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고르는 심정과도 비슷하다. 들뜨고 신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우체국 근처에 우표나 화폐를 판매하는 전문 거래소를 알게 되었다. 물론 낯설고 이런 곳은 처음 가는 것이기에 오다가다 간판을 몇 번 봤지만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어느 날 겨우 용기를 내서 가게 되었는데 가게에 들어서기 전에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살짝 걱정했던 거 같다.


잃어버린 시간의 집합소 - 우표 판매점


들어서는 순간, 난 마치 미지의 보물이 가득한 동굴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작은 캐비닛 여러 개가 벽에 쭉 붙어 있었고 유리 진열장에 못 보던 우표도 꽤 많았다. 우표상 아저씨는 우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다. 난 그전까지 주먹구구 식으로 앨범에 끼우기만 했다. 마운트(우표 낱장 또는 여러 개를 보관하는 비닐)의 존재도 그때 알았다. 그리고 전지나 크리스마스실도 완전한 형태로 보관해야 한다는 것도. 처음으로 전지를 가까이서 봤을 때 정말 투박하기 짝이 없다. 우표의 질서 정연한 집합체인 전지를 보니 왠지 우표를 하나하나 떼어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다. 보관하기에도 참 버거워 보이는 크기이지만 그때부터 조금씩 나 자신을 새로운 지식에 길들였다.



"학생이 얼마나 오래 우표수집을 할지 모르지만... 다른 취미에 비해 이만한 것도 없어. 학생이 언젠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나중에 자기 얘한테 엄마가 어릴 때 우표 수집한 거 보여 줄 수 도 있고.."

난 조금 부끄러운 생각도 들어 멋쩍게 웃었던 거 같다. 한편으로는 파도처럼 밀려올 켜켜이 쌓인 까마득한 미래가 너무 멀어 보였다. 그때까지 내가 우표수집을 하면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하며 얼마나 우체국에 자주 가야 하고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수집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아득한 시간 앞에 주눅도 들었다.


그때만 해도 2~3천 원(참고서 살 돈도 따로 챙겨가며 열심히 모았던 자투리 돈) 정도 투자해서 어렵사리 발행된 지 몇 년된 우표를 살 수 있었다. 그땐 우표수집에 열성인 어떤 학생이 기특했는지 사용제 우표나 몇 가지 남는 우표도 덤으로 주셨다. 이런 곳은 놓친 시간도 되돌린다. 발행일을 맞추지 못해 제대 사지 못하고 놓친 우표는 우표 판매소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환산은 액면가보다 조금 높게 책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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