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주는 해답
쓰면 진화하고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고등학교 때 생물시간에 배운 용불용설에 따르면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이 진화생물학이 생물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표는 진화를 위한 쓰임새가 얼마나 될까? 사실 우체국에서 우표 사용을 증진해서 우표 유통을 활성화시키고 우취문화에 좀 더 보탬이 되면 좋겠지만 의외로 쉽진 않다. 예를 들며 우편요금이 750원이라고 한다면 액면가가 각각 400원, 300원, 50원인 우표를 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업무효율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우체국 택배나 보험, 알뜰폰, 예금 등 다른 주된 업무와 병행해서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표 대신 스티커로 된 증지로 부착한다.
이렇게 되면 우표는 우표수집이란 형태로만 존재할지도... 우표 수집하는 아마추어 우취인이 왜 우표 사용 활성화에 마음을 쓰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표 사용이야말로 예전 전통을 살리고 아날로그 감성을 다음 세대에도 전할 수 있는 매체가 된다. 자꾸 쓰면 쓸수록 눈에 띄고 관심을 이끌고 우취 인구 확대 및 우취문화에도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계이니 관심이 갈 수밖에. 그래서 얼핏 '모으는 것'과 '쓰는 것'이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순환 속에 존재한다. 역설이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우표 사용을 어떻게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우표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뭘까? 바로 편지다. 편지도 진화를 할 수 있을까? 난 그렇다고 믿는다. 단순한 정보통신수단이었지만 이젠 문화활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표전시회나 우취에 관한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어린이들에게 편지 쓰기나 엽서를 쓰고 우표를 붙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강의를 한다. 이런 행사를 확대하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전국에서 이루어지는 '느린 우체통'제도도 현대인의 감수성을 채우고 우편문화에 대한 관심을 확대할 수 있다. 결국 우표를 쓰는 게 우표를 살리는 길이다.
다른 방법이나 시스템도 있긴 하다. 2001년에 나만의 우표가 등장한 이후 15년이 흘렀다. 나만의 우표를 제작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도입한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우표가 진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나만의 우표를 제작했지만 우표 사용에는 많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대부분의 우표가 쓰이지 못하고 서랍 속에 보관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벤트성의 제작은 가능하지만 쓰임이 활발하지 않으면 우표에 대한 관심이나 소비 열기가 식는다.
역시 우표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편지 쓰기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역으로도 성립한다. 우편제도와 우취문화라는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둘이 공생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이 난다. 그렇게 해서 편지 쓰기를 비롯해 우표나 우편에 관심을 가지면 평범한 봉투도 초일봉투(우표가 발행되는 날 일부인을 찍은 봉투)가 되기도 하고, 자신이 제작한 우표를 붙인 작품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우표의 존재 의미를 되새겨, 문화적 현상으로 편지 쓰기가 일부분 이나마 정착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우표가 아니라 하나의 소중한 문화가 멸종되어 화석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