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의 우체국은 체온이 다르다
낯선 곳에서는 작은 발걸음도 모험이 된다
난 이번 여름휴가를 외할머니(이하 할머니) 댁에 다녀왔다. 약 5일간 경북 봉화군 소재 할머니 댁에 머무르며 읍내에 나간 적이 두어 번 있었는데 이 역시 지역 우체국 탐방이 목적이었다. 40분 또는 1시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면이나 군에 있는 우체국을 들른다는 건 생각만 해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친구에게 쓴 편지를 붙이려고 경북 명호 우체국에 가게 되었다. 갈 때는 다행히도 할머니를 돌봐주시는 도우미 아주머니 차를 타고 갔다. 길 건너 드디어 우체국에 들어섰을 때 너무도 아담한 실내가 마치 작은 우편취급소 같았다. 당시 일하던 직원은 3명 정도였는데 (우체국장까지 포함)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리는 바람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럴 법도 하다. 손님은 나 혼자였으니까.
봉투에 주소를 쓰고 접수를 했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35도를 웃도는 뙤약볕에 나가 있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우체국에서 기다려야 했다. 하필 정기 간행물 '우표'라든지 우체국에서 발행되는 책자도 없다. 이대로라면 1시간 40분을 휴대폰이나 만지작 거리며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멍하니 로비라고 하기엔 작은 현관 소파에 앉아 있자니까 직원 한 분이 물었다.
"누구 기다리세요?"
"아, 아니요, 버스를 기다려야 해서요."
"어... 다음 버스가 몇 시지?.. 오래 기다리셔야겠네요..."
"네... 그러네요."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여께 거리요, 풍호리요."
"아, 그래요? 가깝네요! 제가 태워드리면 되겠네요."
"앗! 업무 중이신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풍호리면 금방인데요 뭐."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차키를 들고일어나시는 거였다. 난 뜻밖의 호의에 감사해서 어안이 벙벙해졌고 따뜻한 인심에 당황하는 외지 사람일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우체국 밖에서 잠시 기다리다 옹송그리며 차를 탔는데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까지만 바래다 달라고 했다. 그 이상은 차에 무리가 갈 거 같아서 아무래도 죄송했다. 내릴 때 감사함을 기억하려고 성함을 여쭤봤다. 그리고 이분 이름을 그 후에 쓴 편지에도 썼는데 내 느낌과 즐거운 경험을 친구와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뜻밖의 즐거움과 작은 모험들은 친구가 먼 나라에서 보내 준 선물 같다. 이런 일들이 모여 다음번 편지의 줄거리가 될 때니까 말이다.
돌아오는 날은 뜻밖의 행운이 있었다. 봉화터미널 근처의 우체국에 들러 엽서를 사고 우표를 붙이려는데 혹시나 해서 직원분께 우표가 어떤 게 있냐고 여쭤봤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이미 거의 소진된 기념우표가 있는 게 아닌가! 한국-볼리비아 수교 50주년 우표가 바로 그것이다. 역시 여기도 들르길 잘 했다.
서울로 가면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기념우표 발행일에 맞춰 우체국을 방문하고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겠지. 하지만 이곳에서의 경험만큼 특별하면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은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