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생각이 이야기가 되는 순간

우표는 내 작은 책의 표지가 된다

by Alienwitch
질베르트가 보유한 편지지 시리즈가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드디어 몇 주가 지나자 나는 그녀가 처음 보내왔던 편지지와 같은 편지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각각의 편지지가 어떤 의식에 따라 선택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편지를 받는 사람에게 가능한 시간차를 많이 벌려 같은 편지지를 두 번 다시 사용하지 않으려고 이미 사용했던 편지지를 애써 기억해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표를 붙이는 순간, 그 크기는 표지로 확장된다


위 글은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편지를 쓸 때는 자신도 그렇고 받는 사람도 그렇고 가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우표를 매번 다른 것으로 붙인 다든지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 (그 지역의 소인이 찍히도록)그 지역 우체국을 거쳐 보낸다든지, 위의 글처럼 편지지를 여러 종류로 바꿔가면서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시각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한다든지 말이다. 이처럼 편지라는 것은 자유롭다.

서간 문학, 즉 편지 형식의 글은 쓰는 사람이 원할 때 마음대로 창조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 글을 읽는 독자는 이 세상 단 한 명이 된다. 그래서 난 이 편지 쓰기라는 글쓰기와 독립적 발행 기능을 자유자재로 영위하는데 일종의 묘한 쾌감을 느낀다.



일단 편지 쓰기를 하려면 연습장에 초안을 써야 한다. 초안을 쓰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본격적으로 편지지에 옮기기 전에 틀린 것을 고치거나, 쓸데없는 부분은 빼거나 순서를 바꾸기 위한 목적이다.

둘째, 본인이 쓴 편지 내용을 기록하는 목적이다. 이미 편지에 쓴 내용을 다음번 편지에 중복해서 쓰지 않기 위해 참고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연습장에 쓰는 행위는 일종의 탈고인 셈이다. 원고를 꼼꼼히 검토해야 실제로 인쇄할 때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그다음은 인쇄 단계, 편지지에 옮겨 적는 일이다. 편지란 단 한 명의 독자(대체로)를 위한 일회성 인쇄물이라서 편지를 쓰고 있다 보면 내가 작가 겸 편자겸 인쇄소가 된 기분이 든다. 그리고 표지를 꾸며야 한다. 표지는 우표로 꾸미는데 보내는 사람 주소는 가끔 생략하는 편이다. 일단 풀이나 테이프, 드물게는 왁스 씰로 봉하고 나면 내 역할은 끝난다. 내 이야기를 읽을 내가 정한 독자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하면서...

독자를 작가가 정할 수 있다는 점은 아마 책을 쓰는 작가들과는 거꾸로 된 입장이다. 이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매력 때문에 편지 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


예전 외국에 간 친구에게 마치 어렵게 고백하듯 손편지를 쓰겠다고 했을 때 기대감과 진지함을 담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아마도 그 친구에게 나를 작가로 받아달라는 마음으로 다가섰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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