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욕과 본질의 이해
우표수집과 편지 쓰기의 양날의 검
우표의 본질이란 뭘까?
서양철학에는 'telos'라는 용어가 나온다. 어떤 대상의 목적, 목표..'존재 이유'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강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플루트의 존재 이유인 '텔로스(telos)'는 악기로써 훌륭히 연주되고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함으로써 인간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주는 것이다.
우표의 본질은 뭘까... 거창하게 서양철학까지 동원했지만 단순하다. 서신을 주고받기 위해 송신인이 지불한 요금의 증서 역할이다.
'이 우편물이 목적지까지 가는데 드는 요금이 얼마인데 이미 지불되었다'라고 말하는 서류인 것이다.
사실 수집은 우표의 본질을 어느 정도는 제약하고 비활동적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표수집의 빈틈없는 공간에 편지 쓰기라는 숨구멍도 뚫어야 했다. 우표의 천공처럼 말이다.
참여형 글쓰기 - 편지
책을 쓰고 출판을 해도 단 한 명도 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편지는 그것을 읽을 누군가에게 주소대로 정확히 보낸다면 적어도 이 세상 단 한 명의 독자는 존재한다.
편지 쓰기를 언제 해봤더라.. 아마도 7~8년 전일 것이다. 대학교 때는 고등학교 은사님께 편지를 자주 썼었다. 언제인지 몰라도 그런 편지 쓰기가 뜸해졌지만...
다시 펜을 잡기 시작한 건 5월쯤이었다. 나에겐 사귄 지 1년이 채 안 되는 친구가 있다. 모임에서 만난 친구인데 처음에는 그다지 말을 할 기회도 없었고 그 친구를 포함해서 여행도 다녀왔지만 많이 다가갈 시간이 없었다. 사람을 사귀는데 워낙 긴 시간이 필요한 나는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독일로 유학을 간다는 것이다. 거기서 학교도 다니고 당분간 정착할 거라고.
그렇게 독일로 떠났고 처음엔 카톡으로 몇 번 대화하고 시차 때문에 제한적인 시간에 안부만 주고받는 수준으로 연락했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편지를 쓰면 어떨까? 손수 편지를 써서 외국에 있는 친구에게 보낼 기회가 일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소통할 기회를 뺏긴 게 아니라 얻은 것
어느 일요일 햇살이 눈부신 이른 오후였다. 시험 때문에 꺼두었던 휴대폰을 켜서 카톡을 주고받다가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편지 쓸 테니 대신 카톡은 줄이겠다고. 이 얼마나 엉뚱하고 불편한 발상일까!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연락을 줄이기 위한 핑계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반대다. '연락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때부터 독일로 항공우편봉투에 우표를 붙인 손편지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매번 편지를 부칠 때마다 내가 수집한 우표들은 충실히 역할을 수행했고 소인의 날인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손수 모으고 거두었던 우표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것은 어쩐지 만감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우표들은 친구 손에 쥐어져서 다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왜냐하면 매번 다른 도안이 그려진 우표를 붙이기 때문이다. 이젠 친구가 의도치 않은 수집을 하게 되었다. 우표로 인해 새삼 한쪽이 비면 또 다른 한쪽은 채워진다는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