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 4일차-3일 간의 동행을 떠나보내다
올해는 외로움의 해였다. 동기 두 명과 함께 살긴 했지만 휴학을 하고 오전부터 밤까지 수업을 하러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집은 사실 잠자는 공간에 불과했다. 원체 혼밥, 혼술을 즐기는 성격이긴 했어도 올해는 혼밥, 혼술이 더욱 편해졌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근처 라멘집에서 라멘 한 그릇,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후 수업을 하고 백반집에서 제육 백반 한 끼, 그리고 밤 수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역 주변 수제버거집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유럽에 와서 고독은 더욱더 심해져 까미노를 걷기 전 며칠간 인생 중 최고로 홀로였던 시기를 경험했다. 홀로 고고한 에베레스트와 같은 고독은 아니었다. 언제나 옆에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오히려 빽빽이 들어서 있지만 서로 만날 수 없는 리아스식 해안의 섬들과 같은 군중 속의 고독이었다. 몽파르나스 역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를 연어처럼 역주행하기도 했고 여유로운 프랑스인들 옆에서 그들처럼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바욘의 아침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방인일 뿐 낯선 언어를 말하는 그들과 섞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호젓하게 보냈던 5박 6일은 꽤 신선한 경험이었고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즐거웠던 기간이었다.
까미노를 시작하기 전날 실로 오랜만에 한국 분들을 만나고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어제까지의 동행이 된 S와 첫날 뵙고 아직까지 소식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한 분이었다. 반가웠지만 동시에 오랜만에 즐기던 혼자의 시간이 끝났다는 사실에 한편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섭섭함도 잠시, 오랜만에 느껴보는 인간관계의 매력을 찾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까미노라지만 함께 걷는 이들은 모두 따뜻한 이들이었다. 공동의 목표라기에는 각자 걷는 길이지만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첫날부터 동행이었던 한국인 S와의 매일 아침 첫출발, 대만인 친구 C과 함께 도란도란 걸은 둘째 날의 세 시간, 저녁이면 따스한 웃음을 지으며 우아한 억양으로 인사하시던 프랑스 아주머니 M, 보헤미안 티를 팍팍 풍기던 자유인 B까지. 모두들 끝까지라도 같이 걷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첫날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살짝 삐끗한 다리가 결국 문제가 생겼다. 안 그래도 중고등학교 시절 농구하다 심심하면 삐곤 했던 오른쪽 발목이었다. 걸을 때 덜렁대는 것이 꽤나 거슬렸다. 그리고 코골이도 문제였다. 평소 코골이가 심한 나인데 매일 아침마다 초췌한 일행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괜스레 미안해졌다. 마침 입대 전 학교로 교환학생을 왔던 친구 하나가 팜플로나에 있다 하여 친구 얼굴도 볼 겸 팜플로나에서 하루를 추가로 묵어가기로 했다.
고독을 즐겼지만 이별은 여전히 아쉬웠다. 마지막 저녁을 함께 하고 번화가를 함께 한 바퀴 둘러본 후 와인과 함께 이베리코를 구웠다. 만찬이 끝난 후에도 코골이가 심한 나 때문에 좋았던 일행들이 마지막 밤까지 편히 못 쉴까 봐 일부러 식당에서 글을 쓰다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내려왔다. 알베르게는 고요했고 일행들은 자고 있었다. 잠든 후의 코골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일단 편히 잠에 들었다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오늘 새벽, 마지막으로 S와 함께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다시 못 볼 C와 S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떠날 사람은 떠나는 법이다. 이제 막 3일이 지났고 대부분이 앞으로 한 달은 더 이 길을 걸어야 한다. 한 달간 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겠지만 이번 만남과 이별은 첫 만남 첫 이별이라 꽤 강하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하지만 모두 같은 길을 걷기에 만일 며칠 지나지 않아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오늘의 이 감성을 떠올리며 부끄러움에 혼자 배시시 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새벽 그 순간만큼은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까미노를 걸으며 사람들이 마주치면 반갑게 부엔 까미노! 하고 인사하곤 한다. 늘 반가웠던 인사였지만 오늘 새벽엔 왠지 쓸쓸하게 들렸다. 내일부터는 다시 혼자 걸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고 다시 인사를 하겠지.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