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머문 마음이 현재를 붙잡을 때
매일 조금씩 이별하는 기분을 느낀다.
누군가와 헤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나의 시간과 마음이 하루하루 다른 곳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뿐이다. 남아 있는 시간, 이전에 좋아했던 일, 한때는 전부였던 사람들과 조용히 거리를 두게 되는 순간들.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떠나지는 않지만, 매일 아주 소량씩 빠져나간다. 그래서 이별은 늘 소란스럽지 않다.
문득 깨닫는다.
곁에 있는 사람이,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 사람과는 꽤 멀어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더 당황스러운 건, 나 역시 그때의 내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가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해 왔다는 걸 어느 날 갑자기 알아차린다. 그 사실이 관계를 무너뜨리는 건 아니지만, 관계를 다르게 만든다.
나는 일을 하며 노인들을 자주 만난다.
상담하면서 만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아주 오래된 감정 안에 머물러 있다. 30년 전의 후회, 한 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질투,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들. 이미 많은 시간을 함께 살아왔고, 남은 시간은 분명 많지 않은데도 그들은 여전히 과거 속에 서 있다. 마치 시간이 그 지점에서 멈춘 것처럼.
그 감정들은 놀랍도록 생생하다.
이미 끝난 사건임에도, 그때의 분노와 억울함은 현재형이다. 그래서 종종 남아 있는 시간마저 지옥처럼 만들어 버린다. 지금 곁에 있는 배우자는, 사실상 과거의 상대에게 벌을 받고 있는 셈이 된다. 그 사람도, 나 자신도 더 이상 그때의 인물이 아닌데 말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주 생각한다.
우리는 이별을 연습하지 않은 채 늙어가는 건 아닐까.
사람은 변하고, 관계는 변하고,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자주 방향을 바꾸는데, 우리는 한 번 정한 감정에 끝까지 책임지려 한다. 그 책임감이 때로는 성실함이 아니라 집착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차리는 건 아닐까.
이별은 꼭 떠나는 일이 아니다.
이전의 나와 작별하는 일이고,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기대를 내려놓는 일이며, 과거의 감정을 현재로 끌고 오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이다. 그 결정은 배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선택에 가깝다.
요즘 나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무엇과 이별했을까.”
더 이상 설레지 않는 것, 억지로 붙잡고 있던 감정, 이미 나를 떠난 기준들. 그 질문을 던지면 조금 서늘해지지만, 이상하게도 숨은 쉬어진다. 이별을 인정하는 순간, 현재가 비로소 손에 잡히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는 평생 이별을 반복할 것이다.
시간과, 사람과, 나 자신과. 그 모든 이별이 슬프기만 하다면 삶은 너무 무거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어보려 한다. 잘 이별하는 능력이야말로, 끝까지 살아가기 위한 기술일지도 모른다고.
오늘도 나는 조용히 하나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내일의 나에게, 조금 더 가벼운 자리를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