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 함은 너무 거창한 단어처럼 들리지만 사실 40대가 되고 나서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을 하든지 그다지 큰 재미와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사람마다 가진 에너지가 다르고 특히나 외향형이냐 내향형이냐, 자극 추구형이냐 아니냐에 따라 그 크기는 다를 수 있지만 들려오는 대부분의 질문들 '요즘 뭐 재미있는 거 없냐?' 같은 질문들을 받다 보면 '뭐 없지.' 혹은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이런 무미건조한 대답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이런 무미건조함의 이유는 단지 내가 철저하게 '무소속'인체 어떤 커뮤니티에도 속하지 않는 미혼의 1인가구자로서 시간적 여유가 남들보다 많아서 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느끼는 어떠한 권태와 허무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한때 열정적인 '사랑꾼'으로서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고 외치던 내가 진짜 나였는지 '철딱서니 없던 시절이었군.' 하면서도 그 나이, 그 시절에 겪어야 했던 것들을 모두 겪어서 뒤늦게 덜커덩 죽자 사자 안달복달하는 '늦바람'은 나지 않겠군 하고 안도한다. (다만 여기서 무엇도 단정할 수 없는 건 70대인 엄마의 친구들도 할아버지들과의 로맨스 때문에 사흘을 곡기를 끊기도 하고 정신적인 사랑만 할 줄 알았는데 육체적 사랑까지 하더라는, 뭐 이야기하자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점.) 어쨌든 이성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귀찮음과 피곤함이 더 우선순위가 되어 버려 슬프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부지런을 떨며 자신의 욕망을 찾아 "실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경스럽기까지 하다.
뿐만 아니라 성공을 위해 달려온 커리어는 또 어떠한가? 실력이 모든 성공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점, 열정과 야망을 가지고 24시간 일만 생각하며 열심을 다한다 한들 그것이 성과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더 불합리하고 복잡 미묘한 관계들로 이 바닥이 돌아가는구나.라고 깨달아버린 자의 자조 섞인 웃음과 거기에 대처하는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 눈치껏 '적당주의자'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시간만 나만 어디로든 떠났다. 지금은 집에서부터 공항까지 가는 그 길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만으로도 지쳐버린다. 옷에 몸을 맞추기 위해 항상 긴장하면서 사는 것도, 해마다 넘쳐나는 옷들을 사고 버리는 것도, 맛집을 찾아 줄을 서는 것도, 다시 다이어트한다고 몇 시간씩 뛰면서도 이게 모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시들해졌다. 억지로 사람들을 만나 의미 없는 대화와 침묵을 오가며 시간을 때우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이 큰 일이다.
누군가는 매일 미래의 성공한 모습을 상상하며 아침마다 세 번씩 자기 암시를 하라고 한다. 인생을 바꿔줄 만한 책들을 읽으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팔이로 폄훼하고 어떤 사람들은 우상으로 추대하는 '인생 선생님'들이 매년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만큼 각자의 삶에 대한 '막연함'과 '삶이 주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뭘 해도 심드렁한 어느 날 친구가 이런저런 제안을 해왔다. 곧이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라고 대답하는 나에게 "너는 모든 일에 그렇게 꼭 다 의미가 있어야 하니?"라고 반문했다.
'모든 일에 꼭 그렇게 다 의미가 있어야 하는 가...'
그러네. 없어도 되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나? 있지... 뭘 하든 의미가 있길 바랐기 때문에 인생에 답을 못 찾는 것 같고 뭘 해도 재미가 없었나?
그 후로는 그냥 순간을 살기로 했다. 무얼 추구하지 말고 행복 같은 거창한 건 넣어두고. 재미를 찾지 않고, 대신 마음이 가는 쪽으로 하고 싶은 걸 하자면서... 그러한 행동들이 주는 의미는 잠시 접어 두었다. 손익을 따지지 말자고. 선뜻 내키지 않은 일들도 그냥 단순한 호기심으로 가볍게 시작하였다.
동네 새로운 카페가 생겼나 둘러보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나간다. 거추장스러운 준비시간은 던져 버린다. 커피와 디저트를 마신다. 맛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을 기웃하다가 재미있는 책 제목을 발견한다.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 내용이 뭐 그냥저냥이다.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을 던져버린다. 회사에서는 매일 새로운 문제들이 터진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군. 해버린다. 잠들기 전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가면서 이불이 참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중요해요 과정이 중요해요? 한때는 '둘 다 중요하죠'라고 말했으나 결국 인생은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이 아닌가? 결과는 말하자면 마지막날 '땡땡땡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는 한 번밖에 없는 게 아닐까?
오늘도 피드에 뭘 해야 '안 심심한가요?'라는 물음에 많은 이들의 댓글이 보인다. "운동하세요. 취미생활 가지세요. 모임을 가지세요."
막상 읽어보면 다 아는 조언들이다. 당장 지금부터 지루한데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럴 땐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샤워를 한다. 몸을 말리고 머리를 말리면서 오늘 할 수 있는 의미 없는 일을 한다. 죄책감과 부담감을 내려놓고 의미 있는 것들이 모여서 만든 시간보다 의미 없는 것들이 만든 시간들이 인생일 수도 있다 생각한다. 현재 할 수 있는 욕망에 최대한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