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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May 25. 2022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

국내 최초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

알맹상점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구독하고 있는 뉴스레터 중 격주마다 신간을 소개해주는 '에그브렉(Egg Break)'이 있습니다. 언제 출간된지도 몰랐던 수많은 신간도서 중 알짜배기만 골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5월 2주에도 어김없이 4권의 책이 제 메일함에 도착했습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책은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스스로를 '쓰레기 덕후'라고 부르며 국내 최초로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을 만든 세 명의 대표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습니다.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 어떤 곳인지 궁금해진 저는 직접 알맹상점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알맹상점입니다


알맹상점 입구 ⓒ포레스트


5월 24일 오후,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망원동에 자리한 알맹상점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계단 슬로프. 3칸밖에 되지 않은 계단이었지만 다소 좁고 가파른 탓에 문턱을 낮추고자 알맹상점에서 설치한 것이었습니다. 교통약자나 유모차, 무거운 짐을 옮기는 택배 기사님들의 불편까지 배려한 계단 슬로프를 보니 알맹상점이 어떤 곳인지 더더욱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알맹상점. 입구에서부터 눈에 띈 것은 '당신의 용기를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포스터였습니다. 물건을 담는 그릇인 용기(容器)와, 씩씩하고 굳은 기운을 뜻하는 용기(勇氣) 모두를 뜻하는듯한 문구에 센스가 돋보였죠.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향긋한 비누향이 코를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색색깔의 비누들은 모두 플라스틱 포장재가 없는 상태였고, 각 비누마다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도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습니다.


알맹상점 내부 ⓒ포레스트


다음은 알맹상점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세제 리필 코너가 보였습니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대용량 세제들이 말통으로 늘어서 있고 상단엔 리필 방법이 상세하게 적혀있었습니다. 알맹상점은 세탁세제나 섬유유연제 등과 같은 세제를 리필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샴푸나 바디워시, 로션과 같은 화장품도 리필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친환경 인증을 받은 유기농 제품이었고, 그램(g) 단위로 판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맹상점 내부 ⓒ포레스트


알맹상점은 세제와 화장품 외에도 소스와 오일, 각종 향신료 등도 소분 판매하고 있습니다. 향신료의 경우는 가정에서 조금씩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에 먹을 만큼만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플라스틱이 아닌 스텐으로 만든 혀클리너, 몸통을 대나무로 만든 칫솔, 다회용 빨대, 소창 커피 필터 등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다양한 제품도 만날 수 있습니다.


상점에 들일 물건은 실제 우리가 애용하는 제품으로 뽑았다. 제로웨이스트 덕후인 세 명의 인간이 찜해둔 제품 후보군이 차고 넘쳤다. (중략) 우리는 각자 간택한 물건의 변호인단이 되어 왜 이 물건이 정녕 필요한지 서로를 설득하고 방어했다. (중략) 우리는 이렇게 물건 하나를 들일 때도 싸우고 지지고 볶으며 우리가 사랑하는 물건으로 상점을 채워갔다.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중에서 / P61~62


알맹상점 내부 ⓒ포레스트


알맹상점은 제로웨이스트 물품만 판매하는 곳이 아닙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플라스틱, 실리콘, 폐필터, 크레용 등 어찌 보면 그냥 버려질 수밖에 없는 쓰레기를 받는 자원회수센터의 역할도 합니다. 알맹상점의 찐팬인 알맹러들은 너도나도 양손 가득 쓰레기를 가지고 옵니다. 알맹상점은 알맹러들이 가지고 온 쓰레기를 소재별, 색깔별로 분류한 뒤 쓰레기 쿠폰에 도장을 찍어 줍니다. 12개의 도장을 모두 모으면 상점에서 업사이클한 굿즈 등을 주는데 그 반응이 꽤 좋습니다.


알맹상점의 커뮤니티 자원회수센터는 단순히 쓰레기를 받는 공간이 아니다. 쓰레기가 될 수 있는 것을 신경 써서 관리한다면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공간이다.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중에서 / P88


자원순환 커뮤니티 회수센터 @almang_market



알맹상점이 만들어지기까지


알맹상점은 처음부터 리필스테이션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곳은 아닙니다.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도 알맹상점의 초창기에는 '리필 스테이션'이라는 개념이 생소했기 때문입니다.  고금숙, 이주은, 양래교 세 명의 공동대표는 모두 기후위기와 쓰레기 문제 앞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물론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1. 쓰레기의 위험성을 알리다


알맹상점의 양래교 대표는 2018년도에 터진 *쓰레기 대란으로 쓰레기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재활용은 이미 실천 중에 있었지만 재활용을 하고 있는 것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관심이 생겼죠. 고금숙 대표 또한 10년 동안 여성환경연대에서 환경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주은 대표는 알맹상점의 모태가 되는 *알짜 모임에서 고금숙 대표를 알게 되어 합류하게 됩니다.


*쓰레기 대란|2018년 3월부터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몇 달간 진행된 폐비닐 및 혼합 플라스틱 재활용품 수거 중단 위기로 인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심리적 충격을 받은 사건

*알짜 모임알짜는 '알맹이만 찾는 자의 약자', 알짜 모임은 시민들이 직접 환경보호를 위한 대안을 실험해보는 모임을 말함


알맹상점의 모태가 되는 알맹모임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모임이었던 알짜 1기는 망원시장을 돌아다니며 사장님들에게 비닐봉지 대신 용기와 장바구니 사용을 권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10명 정도의 회원들이 모여서 활동을 했지만, 상인들과 안면을 트며 우리와 같은 '실천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에 그쳤죠. 알짜 2기는 망원시장에 좌판을 깔고 자기 용기를 사용한 '알맹러'들에게 무포장 채소를 선물로 주는 캠페인을 열었습니다. 덕분에 망원시장에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졌죠.


알짜 모집 포스터 @알맹상점 블로그


2. 망원시장에 세제 리필 가게가 생기다


시간이 갈수록 플라스틱의 문제를 아는 사람들은 늘었지만 플라스틱을 실제로 줄이는 사람은 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세 명의 대표들의 고민은 줄지 않았죠. 그러다 해외에서 실천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 운동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도와 케냐에선 비닐봉지 사용을 금하고 있었고, 태국 방콕에선 5층 건물을 통째로 제로웨이스트로 채운 곳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영감을 얻은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다섯 종류의 세제를 리필하는 팝업 숍을 열었고 알음알음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엔 대용량으로 파는 세제들은 저렴한 가격의 업소용 세제뿐이었고, 친환경을 찾는 소비자들에겐 맞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제품들은 업체 측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세 명의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프리미엄 빨래방 체인점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대용량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를 찾아내게 되었고, 가격까지 같은 제품보다 약 20% 저렴해서 계약을 맺게 됩니다.


2019년 4월에 연 세제리필 팝업 숍 @알맹상점 블로그


3. 화장품까지 판매하는 리필스테이션이 되기까지


알맹상점은 세제에 이어 화장품도 리필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화장품 종류를 소분 판매하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불법으로 금지했으며 만약 판매를 원한다면 구체적인 자격증을 갖추어야 했죠. 화장품 리필의 야심에 가득 찬 고금숙 대표는 즉시 평생교육원에 등록해 16종(현재는 26종)의 인체 알레르기 유발 성분을 외웠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탓에 제1회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 시험에 합격을 하고 맙니다. 이제 자격증은 땄으니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역시 오산이었습니다. 화장품을 대용량으로 파는 업체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평생교육원에서 만난 교수님의 인맥으로 20리터 말통에 화장품을 공급해주는 업체를 찾게 됩니다. 300킬로그램의 화장품을 유통기간 내에 팔아야 하는 부담스러운 환경이었지만 고금숙 대표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대용량 화장품을 구하지 못할 것 같았죠. 덕분에 점차 친환경 화장품 업체에서 연락을 받게 됩니다. 추후 두 업체에서 바디워시, 로션, 스킨, 크림 등의 화장품 기본 라인을 갖추게 되었고, 이후엔 대기업에서도 리필스테이션을 시작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합니다.


누군가 리필 가게를 먼저 열었다면 따라갔을 텐데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스스로 길을 내야 했다.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중에서 / P35



알맹상점, 리필하는 방법


직접 알맹상점에 가봤으니 리필까지 해봐야겠죠? 아래 순서에 따라 필요한 화장품을 리필해보세요! :)


리필하는 방법 ⓒ포레스트


1. 직접 용기를 가져오거나 가게에 비치된 재사용 용기를 사용합니다.

2. 용기가 깨끗한지 살핀 다음 필요한 화장품을 고릅니다.

3. 저울의 전원을 켠 다음, '0'이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4. 저울에 용기를 올린 후 '영점'을 눌러 무게를 '0'으로 맞춥니다. (용기 무게를 빼기 위함이에요!)

5. 용기에 내용물을 담은 후 저울에 놓고 무게를 잽니다.

6. 라벨에 무게를 적은 후 카운터에 가져가 계산합니다.


어때요, 어렵지 않죠? 저는 아로마티카 바디로션을 소분해왔고 가격은 약 3천 원이 들었습니다. 다 쓴 용기는 깨끗이 씻어 알맹상점으로 다시 가져오라는 직원의 안내멘트까지 완벽한 투어였습니다!





알맹상점을 알게 된 후 플라스틱을 재활용 수거함에 그냥 넣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어떤 회사가 친환경을 실천하는지도 자세하게 보게 되었죠. 이번 방문에서 바디워시뿐만 아니라 친환경비누와 대나무칫솔까지 구매했습니다. 친환경비누는 장애인들의 재활능력 및 경제 활동 능력을 향샹시키는 '소화아람'이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만든 제품이고, 대나무칫솔은 건강과 환경을 지키는 '닥터노아'라는 곳에서 만든 제품입니다. 알맹상점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곳입니다.


단순한 리필스테이션을 넘어 제로웨이스트 생태계를 만드는 알맹상점. 저는 이 작고도 단단한 곳에서 지속 가능한 환경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알맹상점과 같은 곳이 전국 곳곳에 생겨나길 바라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알맹상점을 연 지 약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무탈하게 화장품을 용기 없이 알맹이만 판매하고 있다. 리필스테이션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시민들, 쓰레기를 만든다는 죄책감 없이 쇼핑할 수 있는 가게들, 포장 없이 알맹이만 공급하는 생산자들이 함께 만든 변화다. 바야흐로 국내에도 제로웨이스트 생태계가 조그맣게 시작되고 있다.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중에서 / P38


알맹상점의 풍경들 ⓒ포레스트




*자료출처

유튜브 : 제로웨이스트샵 알맹상점 양래교 대표 인터뷰

도서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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