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있는 삶을 제안하는 브랜드들
정원이 있는 삶
요즘 저에겐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바로 정원이 딸린 집에서 살아보는 것인데요. 주변에 이 꿈을 나눴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정원? 손 많이 가지 않아?", "우선 땅부터 있어야지.", "정원 있는 집은 방범에 취약해~ 차라리 아파트가 낫지." 현실적으로 정원이 있는 집에 사는 건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근처 공원에 나가서 자연을 즐기는 편이 훨씬 낫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원은 프라이빗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즐길 수 있으면서도 조금 더 개인적인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요?
빼곡한 건물들로 가득 찬 도시 명동. 이곳에 1000㎡ 규모의 *공유 정원이 생겼습니다. 바로 '녹녹 타임워크명동'. 건물 밑에서 보면 까마득한 회색빛 세상이지만 이곳에 올라오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나무와 풀잎, 색색깔의 꽃들과 그 사이에서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 이곳에 올라오면 좀 전까지 보았던 복잡한 명동 거리가 한순간 머릿속에서 지워집니다.
*공유 정원 : 옥상, 오피스 공실 등 도심 유휴공간에 정원을 조성한 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형태로 정원을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공유경제 모델
녹녹 타임워크 명동은 조경·정원 플랫폼 스타트업 앤로지즈의 조영민 대표가 만들었습니다. 조 대표는 도시공학을 전공한 후 오랜 시간 공간 비즈니스를 고민해왔습니다. 도시 내에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건축물이 사람들의 삶을 더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으로 안타까워했죠. 조 대표는 또한 정원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연구했습니다. 삭막한 도시 공간 때문에 생긴 빈 곳을 정원이라는 자연이 메꿔준다면 어떨까? 이러한 생각으로 조 대표는 '녹녹'의 공유 정원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원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와 욕구를 공원에서 온전히 충족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도시 안에는 공원 외에 유휴공간이 꽤 많다. 이런 공간을 활용해 제대로 된 정원을 조성하고 사람들이 즐길만한 콘텐츠를 운영해 본다면, 사람들의 정원 니즈를 도시 안에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공유 정원’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됐다. 내 집 정원과 공원 사이 어딘가의 틈새를 찾았다.”
- 환경과조경 인터뷰 중
이 정원은 '젊은 조경가상'을 받은 최영준 조경설계사사무소 랩디에이치 소장이 설계했습니다. 여러해살이 풀 위주로 꾸며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자아내도록 했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자연만을 감상하는 곳은 아닙니다. 가드닝 클럽, 요가 교실, 피크닉 패키지 등 각종 체험을 통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죠. 조 대표는 감상만 하는 정원이 아닌 즐기는 정원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내 정원이 생기면 거기서 무엇을 하고 싶을까'를 생각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했습니다. 때문에 녹녹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정원이지만 프라이빗한 느낌을 줍니다. 공원과 개인 정원의 중간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조 대표는 건물이 상할까 봐 옥상 정원 조성을 걱정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옥상에 정원이 있으면 오히려 건물의 노화를 줄일 수 있습니다. 옥상이 자외선이나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식물들이 막아주기 때문이죠. 이뿐만 아니라 에너지 냉난방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경량토를 사용하고 나무보다는 수경 요소가 없는 식물 위주로 식재하면 하중의 부담도 없습니다."
공유 정원은 중장기적으로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도 합니다. 잘 가꿔진 공간을 즐기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도 건물 자체가 핫한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녹녹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생긴 수익을 건물주와 배분하며 건물주 입장에서 공유 정원 덕분에 오히려 이득을 봤다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합니다.
2018년, 자신의 작업실을 오픈하여 옥상 정원을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가드닝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이가영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이 대표는 당시 주거하고 있던 빌라 옥탑 공간에 개인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실내 10평, 실외 15평의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공간이었죠.
이 대표는 자랑스러운 이 공간을 SNS에 올렸습니다. '퇴근 후 나는 가드너가 된다'라는 카피까지 걸어서요. 이 모집공고는 예상외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참가 요청이 쇄도했고, 그렇게 해서 모인 15명의 회원들은 각자 원하는 식물로 박스 정원을 꾸며 가드닝 활동에 동참했습니다. 이 모임은 추후 옥상 정원을 중심으로 한 유료 회원제 커뮤니티가 되었고, 현재 이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가드닝클럽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인스타그램을 개설해서 가드닝 멤버 모집 공지를 올렸는데, 누구인지도 모르는 저를 만나러 음침한 빌라 옥탑까지 찾아오시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어요. 꽤 트렌디한 일을 하는 분들이었거든요. 가드닝이 '도시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가 있겠구나'라고 느꼈어요."
- 서울문화재단 공식 블로그 인터뷰 중
서울가드닝클럽은 식물·정원을 기반으로 한 공간 설계와 시공을 하고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곳입니다. 서울역7017 초속정원 설계·시공, 폭스바겐@남산피크닉 조경디자인·시공,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 허브가든 가드닝콘텐츠 기획·플랜트디자인 및 시공,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무대연출, 제주도 WeSa 선흘 조경디자인 및 시공 등의 작업을 해왔죠.
슬로건은 'LABOR! WORK! ACTION!'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서 따온 말입니다. 그녀에 의하면 인간이 살면서 하는 활동은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대표는 정원 만들기야말로 이 세 가지 조건을 조화롭게 충족시키는 활동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서울가드닝클럽의 슬로건을 다음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LABOR! 자연과 연결되는 참된 노동
WORK! 자신의 정체성을 도시와 공간에 표현하는 작업
ACTION! 도시의 환경과 공동체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
서울가드닝클럽은 노들섬 안에 있는 '식물도'라는 공간을 기획하고 입주했습니다. 이곳엔 식물 관련 작업을 하는 크리에이터 네 팀이 입주해 각자 작업도 하고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합니다. 이 대표는 이곳에 직접 정원을 꾸몄습니다. 작은 공간이라도 충분이 화단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서울가드닝클럽은 정원과 텃밭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생산성이 있는 '도시형 정원'을 추구합니다. 식물별 역할이나 기능에 따라 함께 심으면 좋은 매칭법을 알려주기도 하죠.
"도시에서는 무료로 앉아서 즐길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부족하죠. 커피값이나 입장료 등의 비용을 내면 멋진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공공의 공간들은 편히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잖아요. 식물도를 비롯한 노들섬 야외 공간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충분히 비치되어 있어요. 꼭 노들섬의 매력을 경험해 보시면 좋겠어요."
- 서울문화재단 공식 블로그 인터뷰 중
어릴 적 제가 살던 동네는 조용한 시골이었습니다. 정원이 있는 마당은 아니었지만 산과 가까운 곳이라 다양한 식물을 많이 접할 수 있었죠. 집 앞에는 매화나무가 있었습니다. 화려한 꽃을 피우고 난 뒤에는 초록색 매실이 자랍니다. 할머니께서는 그 매실로 매실청을 담가주셨고, 그 매실청은 저희 가정의 일 년 동안의 소화제를 담당했습니다.
자연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사람에게 유익을 줍니다. 내 하루의 삶은 지루하고 힘겨워도 매 순간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자연을 보자면 마음이 절로 시원해졌습니다. 이처럼 자연이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는 이유는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인 존재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장 정원이 딸린 집이 없어도 비좁은 우리 집 거실에 작은 식물을 놓는 것으로 나만의 작은 정원을 가꾸고 싶습니다. 혹시 또 모르죠. 언젠가는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될 지도요.
*자료출처
옥상과 골목이 정원으로…마당이 있는 삶, '공유정원'이라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