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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deer Feb 20. 2019

우리가 고아였을 때

2018-10-22

그렇게 내 고향이었던 도시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명랑한 표정으로 대령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제 곧 바다가 나오겠지요, 선생님?" p.46.


오늘은 생일. 어제 아침에는 무려 강원도 정선에서 - 주말에 가족 가을 소풍을 갔더랬다 - 엄마가 잔뜩 싸온 반찬으로 거나한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요즘이라고 한다면 확실히 여러모로 기쁘고 행복한 날들은 아니지만, 징징대고 울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여행의 여파로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 엄마표 미역국에 밥 한 그릇 후다닥 말아먹고 출근했다.


많은 생각이 떠다닌다. 며칠 전에는 꽤 비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얼마나 꾹꾹 참고 있나, 얼마나 깜깜한가, 얼마나, 얼마나. 문득 동생이나 친구에게 하소연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 싶어 져서 고만 입을 다물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넌 맨날 우울하고 힘들고 피곤하고 슬프지. (완전 '이요르' 더하기 '새드니스' 모드.) 명랑하고 웃기는 사슴 씨는 어디로 갔을까.


생일날 밤에 이력서를 쓰는 기분이라니, 나이가 이렇게 많아졌다니, 경력에 넣은 숫자들을 자꾸만 줄이고 싶다니, 정말이지 어쩌면 좋을까! 나도 몰라, 몰라요. 아빠가 아침에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으면서 잘 준비나 해야겠다. 친구가 삐뚤빼뚤 써준 메모 같아서 웃음도 나고 한편으로 아프기도 하고. '지영아 생일 축하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야. 힘내세요 파이팅!' 아이고 아부지.


참, 셀프 생일 선물로 주문한 침대가 토요일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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