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은둔자>
20년 전, 작가가 마흔 두살의 나이로 남겨둔 고민들, 그리고 그 문제로부터 도망쳐나온 발자취가 남아있다. 명랑한 문장으로 표현된 그 분투가 오늘의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명랑한 은둔자>가 소개하는 캐럴라인 냅의 글을 읽을 땐 생경한 쾌감이 느껴진다. 내가 모르던, 혹은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고민이 유쾌하고도 명료한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다.
'음식이 적이 될 때'라는 소제목에서 작가는 섭식장애를 겪던 시절의 자신을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자긍심이 바닥이지만 그마저도 남들을 만족시키는 데서 얻는 사람"
"내가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결코 충분히 갖지 못할까봐 겁먹었다는 사실"
"어떤 중독이든, 어느 시점이 되면 당신이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행동이 당신을 통제하게 된다."
나는 섭식장애를 겪어보지 않았지만 중독, 통제 강박에 관한 문장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내 마음과 머릿속에 헝클어져 있던 생각, 아직 생각의 형태도 갖추지 못한 모호한 이미지나 느낌이 경쾌한 문장으로 해소되었다. 작가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주로 결핍, 중동, 상실 등)를 깊게 해체하고 분석해내어 우리에게 들려준다. 작가 개인의 경험이 주는 강렬함과 통찰이 가득한 문장 덕분에, 우리는 순식간의 그의 글에 사로잡힌다.
작가는 담담하게 그 수렁에서 빠져나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용기와 응원을 전한다.
"당신은 경직성을 포기한다고 해서 반드시 통제력을 잃는 건 아님을 배운다."
"굶을 힘이 있는 사람에게는 바뀔 힘도 있다."
작가의 응원엔 진정성이 담겨있다. 먼저 고민을 겪어낸 작가가 건네는 묵직한 한 마디는 때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하고, 가만히 안겨서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오래 옆에 두고 싶은 책이다. 책을 반 정도 읽은 지금, 너무 빨리 읽어버린 것을 후회하고 있다. 책의 맨 처음, 옮긴이의 말에서 엿본 이 책의 진가를 알아버렸을 땐, 나도 옮긴이처럼 깊은 아쉬움을 안고 책을 바라보게 됐다.
"나는 그 글들이 필요하다.
냅이 3, 40대에 쓴 글에서 내가 내 3, 40대의 주제들을 발견하고
변화의 단초와 공감의 위안을 얻었던 것처럼, 냅이 5, 60대에 쓴 글이 있었다면 나는 그 글에 내 5, 60대의 삶을 포개어 또 무언가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없다.
나는 이미 여러 번 읽었던 이 글들을 하릴없이 다시 뒤적일 뿐이다.
그러면서 늘 새삼스럽게 다시 웃는다."
<명랑한 은둔자>는 내게 너무 빨리 읽어버린 책이다.
만약 외로움과 중독, 집착, 그리움, 고독, 고립으로부터 당신이 자유롭지 않다면 너무 늦기 전에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