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이 끝나고 이승윤이 인터뷰에서 '이적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라고 거듭 말하길래 적군이 뭔가 언급을 해주지 않을까 하고 인스타에 들어가봤는데 아무런 피드가 없어서 아직 모르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엔 승윤이가 너무 구애(!)를 해서 중간에서 누가 다리 좀 놔줬으면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승윤의 인스타에 이 사진이 떡! 올라왔다.
최근 나온 '앳스타일' 인터뷰를 보면, 싱어게인 마지막 무대 '물'을 좋게 본 이적이 먼저 연락을 해주었고, 승윤은 무릎 꿇고 전화를 받았다고. 그리고 이적에게 초밥을 얻어 먹었다고 밝혔다.
생각해 보니 둘에게는 꽤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서 두 사람 모두의 팬으로서 덕심을 발휘하여 이 글을 쓴다. 둘의 만남을 축하하며, 성공한 덕후 승윤이를 응원하며, 적군의 오랜 팬인 것을 뿌듯해하면서, 초밥으로 맺어진 둘의 인연이 세세 무궁토록 이어지길 염원하며.
1. 유명한 가족이 있다.
이적의 어머니는 저명한 여성학자인 '박혜란' 님이시고, 승윤의 아버지는 목회자 '이재철' 님이다. 둘 다 주목받기 시작할 즈음, 그러니까 이적은 데뷔 초, 승윤은 <싱어게인> 방영 중에 유명한 가족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서 유명세를 치뤘다. 신인 가수에게 유명한 가족은 양날의 검이어서 자신만의 실력과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연예계 생활 내내 그 꼬리표를 떼기가 어렵다. 패닉이 갓 데뷔하고 인터뷰를 할 때면 기자들이 '네가 정말 박혜란님의 아들이 맞느냐'라는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 '어머니는 도대체 왜 이렇게 유명하신 거에요?'라는 볼멘소리를 했다고.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누구도 이적을 '누구의 아들'로 인식하지 않을 뿐더러 그의 이름 앞에는 '레전드'를 비롯한 수 많은 수식어가 따라 붙으니 부디 승윤도 적군처럼 오랫동안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쳐 나가길 바라본다.
2. 둘의 어린 시절이 담긴 육아서적이 있다.
앞서 언급한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 님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1) 등의 서적을 썼고, 승윤의 아버지 이재철 님은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2)를 썼다. 위 책을 읽어보면 두 가수의 어린 시절을 훔쳐 보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 팬들 입장에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가장 유명한 일화는 적군이 중3때 어머니 생신 날 선물로 드렸다는 시 <엄마의 하루>일 것이다. 이 시는 방송에도 몇 번 나오고 해서 이제는 적군의 노래만큼이나 유명해졌지만(ㅎㅎㅎ) 이 곳에도 한 번 옮겨본다.
습한 얼굴로
AM 6:00이면
시계같이 일어나
쌀을 씻고
밥을 지어
호돌이 보온 도시락통에 정성껏 싸
장대한 아들과 남편을 보내놓고
조용히 허무하다.
따르릉 전화 소리에
제2의 아침이 시작되고
줄곧 바삐
책상머리에 앉아
고요의 시간을
읽고 쓰는 데
또 읽고 또 쓰는 데 바쳐
오른쪽 눈이 빠져라
세라믹펜이 무거워라
지친 듯 무서운 얼굴이
돌아온 아들의 짜증과 함께
다시
싱크대 앞에 선다.
밥을 짓다
설거지를 하다
방바닥을 닦다
두부 사오라 거절하는
아들의 말에
이게 뭐냐고 무심히 말하는
남편의 말에
주저앉아 흘리는 고통의 눈물에
언 동태가 녹고
아들의 찬 손이 녹고
정작 하루가 지나면
정작 당신은
또 엄마를 잘못 만나서를 되뇌이며
슬퍼하는
슬며시 실리는
당신의 글을 부끄러워하며
따끈히 끓이는
된장찌개의 맛을 부끄러워하며
오늘 또
엄마를 잘못 만나서를
무심한 아들들에게
되뇌이는
'강철 여인'이 아닌
'사랑 여인'에게
다시 하루가 간다.
이 시는 박혜란 님의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 실렸는데 발췌해 보면 아래와 같다.
"둘째가 중학교 3학년 때 내 생일에 전해 준 편지에는 바깥일과 집안일의 틈바구니에서 허우적대는 엄마를 <엄마의 하루>라는 시에 담아 그렸는데, 엄마의 괴로움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서 시를 읽는 친구들마다 "하, 고놈"하며 혀를 찼다. 이 시는 내가 쓴 <삶의 여성학>뒷부분에 실렸는데, 그걸 읽으신 작가 박완서 선생은 어떻게 중3짜리 남학생이 엄마의 삶을 그리도 정확하게 포착했느냐며 감탄을 거듭하셨다."
박완서 선생의 감탄을 거듭 자아낸 중3짜리 남학생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족적을 남기는 저명한 뮤지션이 되었으니 떡잎부터 남달랐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는데 그 이유는 첫째, 엄마의 고단한 삶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바라 본 아들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져서이고, 둘째, 애 셋을 키우며 학업과 일을 해나간 여성 '박혜란'의 치열한 삶이 처연한 그 무언가를 느끼게하기 때문이다.
승윤의 글솜씨도 엿볼 수 있는데 아래는 그가 어린시절 어버이날을 맞아 아빠께 드린 편지 내용이다.
"부모님께
아빠 엄마, 어버이날을 축하드립니다. 저를 잘 키워주시느라 힘드시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 예쁜 옷도 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빠 엄마, 건강하세요.
사랑하는 아들 이승윤 올림."
몇 살 때인지는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쓴 듯하다- 어린 아이의 순진무구함이 느껴져서 참 귀엽다. 승윤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꽤 많이 기술되어 있는데 호기심이 생긴다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길.
3. 형제가 많다.
이적은 삼 형제 중에 둘째, 승윤은 사 형제 중에 셋째이다3). 둘 다 전쟁터(!)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고 볼 수 있다. 재미난 점은 두 집안의 형제들이 얼추 비슷한 삶의 궤적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적의 큰 형인 동훈은 현재 대학교수, 승윤의 큰 형인 승훈은 변호사이다. 이적은 최근 출연한 '집사부일체'에서 '자신이 가장 하찮게 여기던 형이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들어갈 수 있겠는데?'생각했다고 말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적 집안의 삼 형제는 모두 서울대를 나왔는데(그러나 부모님 역시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온 격) 큰 형은 맏이로서 모범(?)을 보인 듯 하다. 승윤의 큰 형인 승훈 역시 책에서 보면 '의젓하고 바른 생활 사나이'의 모습이다. 맏이들은 엄친아 캐릭터이고 중간에 낀 이적과 승윤은 '삐딱하고 할 말 다하는' 딱 둘째의 모습 그것이다. 막내들은 '제 할 일은 제가 알아서 하는 독립적이면서 주체적인' 캐릭터다. 이적의 동생 동윤은 MBC PD고, 고3때 중국으로 교수직을 하러 간 엄마 대신 자신의 도시락은 물론, 형들의 아침밥까지 챙겼다고 한다.(전설 같은 이야기) 승윤의 동생 승주 역시 고등학교 졸업 후 몇 달간의 연습 끝에 독일로 미술 공부하러 홀연히 떠났다고.
4. 가사로 주목받는 싱어송라이터
이적은 패닉시절부터 긱스, 카니발, 솔로앨범까지 자신만의 세계관과 필체가 있는 가수이고, 승윤 역시 음악을 만들 때 가사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쓴다고 밝혔다. 둘 모두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 고유의 철학이 있는 뮤지션들이다.
5. 잘 생겼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치명적인 척
시크한 척
아무 생각 없는 척
같잖은 척
우리 신랑 닮았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ㅋㅋㅋㅋㅋ
각주
1) '나무를 심는 사람들'에서 출간되었다. 박혜란님의 책은 워낙 유명해서(많이 팔려서) 육아서적의 스테디셀러로 불린다. 개인적으로 나는 막달에, 그리고 조리원에서 갓 나왔을 때 박혜란님의 책을 모두 읽었다. 공감가는 내용이 많아 깔깔 웃으면서 행복하게 읽은 기억이 있다. 할머니가 일러주는 육아의 지혜를 듣는 기분이랄까. 일상 속에서 다분히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내용이니 안 읽어보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길.
2) '홍성사'에서 최근 재출간되었다. 출판사에 출간 요청이 쇄도해 다시 찍어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육아서적이라기 보다는 육아하면서 느낀 신앙적 깨달음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역시 추천해 본다.
3) 이적 형제의 이름은 동훈, 동준(이적의 본명), 동윤이고, 승윤 형제의 이름은 승훈, 승국, 승윤, 승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