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나무와 참새 부부

육아 딜레마

by 무늬글

한 늙은 나무가 산들바람에 몸을 털고 있었다. 따뜻한 황혼이 노곤한 몸뚱이를 조금은 편하게 만들었다. 다만 어제보다 차가워진 바람은 몸을 으스스하게 만들기 충분했고, 외로움은 깊어만 갔다. 세상 어떤 풍파가 와도 굳건히 버텨왔건만, 이젠 비바람 맞고 쓸린 생채기에 쓰라린 가지들만 앙상했다. 쉬고만 싶었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지푸라기 옷을 입고,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물을 실컷 마시며 쉬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의 풍성한 나뭇잎으로 오랫동안 품었던 참새가 짝짓고 다시 날아와 앙상한 가지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나무는 오랜만에 찾아온 참새가 눈물이 날 만큼 반갑고 고마웠다. 참새는 열심히 둥지를 틀고 아기 참새를 낳았다. 나무는 아기 참새가 사랑스러웠다. 참새 부부는 먹이를 찾아 둥지를 비우는 시간이 많았다. 아기 참새는 앙상한 나무가 돌봤다. 나무는 온 힘을 다해 뚝뚝 끊기는 고통의 가지들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아기 참새를 보호했다. 고통이 온몸에 파고들어도 열심히 돌봤다.


이 시대의 할머니들이 앙상한 나무가 아닐까 싶다. 보통 195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 태어나 손주를 돌보고 있는 할머니들 말이다. 이들은 고난과 역경의 시대를 발전과 성공으로 이끌었던 베이비붐 세대다. 하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찬란한 영광을 누렸던 베이비부머는 베이비시터가 됐다. '아이돌보미'가 된 할머니들은 이미 숙련된 육아 전문가지만, 육아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잘 안다. 그런데 기력이 그때와 같지 않은 지금 다시 육아 전문가가 되라니 막막하다.


참새 부부는 이 시대 평범한 부부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한다. 하나, 아이들을 믿고 맡길 곳이 마땅치 않으니 이들의 어머니이자 80년대 육아전문가들을 다시 한번 불러와 희생시키고 있다. 이 희생의 본질은 영유아 아이를 가진 부부를 돕는 사회제도와 복지의 미흡 또는 부재일 것이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복지가 나아지고는 있다지만 늦은 준비 탓에 효과는 아직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이와 산책하는 할머니들이 평일 오후 거리를 채운다. 노년의 삶. 꽃가마는 못 탈 망정 유모차를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