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Die Tomorrow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의 고민을 해본다. 무엇보다 하루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에 할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찾아야 하겠다. 그러니 삶이라는 것을 쭉 돌아볼 필요가 생긴다. 나는 인생 자체를 너무 주관적 관념으로 살아왔다.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말이기도 하겠다. 자신 인생이니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하니까. 그보다 극단적으로 주관적이라면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스무 살부터였던 것 같다. 이 시기는 어느 정도 내 생각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던 때다. 누구와 비교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그저 책도 많이 읽었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많았고, 자기반성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역시 주관적이었다. 어쨌든 이제 내 판단이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난 스스로 모든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때부터 내가 무엇을 결정할 때, 누구의 말을 듣기보다는 우선 결정을 하고 통보하는 순서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주관적 관념을 가지게 될 때까지 내 학창 시절은 평범하지 않았다. 국민학교를 입학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시를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고, 성적은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었다. 게으르고 공부가 싫어서 방황을 했던 중학교 시절, 다른 학생들은 나를 두려운 존재로 인식했던 것 같다. 최대한 내가 옳다는 도덕성과, 사회가 정한 최소한의 윤리성은 지키려 애썼던 기억은 뚜렷하다. 다만 일부 중학 동창생들이 지금 나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꺼내 놓을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입학해서는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공부의 시작은 단순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공부를 안 했다는 이유로 피지배층이 되기는 싫었다. 지금 보면 과장된 표현이지만 이는 그때 생각한 그대로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는 네 곳을 다녔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다, 그만두고 영문과를 다녔다. 그 뒤 다시 자퇴하고 경제학을 공부하다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졸업했다.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도 않다. 다만, 이 모든 것이 내 주관적 결정과 통보의 과정을 거쳐 결정됐다.
첫 직장은 마지막 다녔던 학교에서 했던 언론 활동에서 이어졌다. 이벤트를 기획하고 섭외하는 업무를 여러 지역 사회단체와 진행했다. 그 뒤 언론사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그만뒀다. 역시 상의 따위는 없었다. 특히나 부모님이 서운해하셨다. 그리고는 또 덜컥 새 직장을 가졌다.
그렇게 난 '내 일'을 자고 일어나면 오로지 나에게만 주어지는 '내일'로만 여겼다. 그런데 내 것인 줄만 알았던 내일이 없다고 한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또 주관적 생각일지 모르지만, 누구도 거창한 답을 내놓을 것 같지 않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 이유는 조금 다르겠다. 지금까지 내 결정과 통보의 순서를 이해해 줬던 데에 대한 참회는 해야 한다. 24시간 전부 내 소중한 사람들이 하자고 하는 대로 따라가며 마무리해야 하겠다. 이젠 그들이 무얼 할지 결정하고 통보하길 바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