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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 kwangsu Apr 06. 2024

AI의 발전과 표절, 그리고 디자이너의 존재 가치

AI 시대의 브랜딩 그리고 표절 (2)


“Originality is undetected plagiarism”

   독창성이란 아직 발견되지 않은 표절이다.


   - William Ralph Inge




이전 연재글에서 이어집니다.


AI 시대의 표절과 브랜딩

AI의 발전과 표절이 브랜딩에 미치는 영향 (전편)






04.

디자이너의 전문성에는

브랜드 고유의 가치를 전하기 위한 노력이 포함된다.



AI의 잠재력은 가히 폭력적이다. 양질의 데이터를 학습한 AI 모델의 경우, 평범한 수준의 디자이너 전부를 대체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 역시 "AI는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힘 the most disruptive force in history"이며 인간의 직업을 모두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문제는 브랜딩에 활용될 생성 AI의 근원이 기존 창작물이라는 점이다. 간단한 명령어로 결과물을 생성하는 AI와 달리, 기존 브랜드 자산의 경우 개발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단 한 줄의 슬로건, 하나의 로고조차 몇 개월, 몇 백 시간의 고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고민에는 이미 시장에 존재하는 많은 브랜드 자산과의 유사성을 피해 브랜드 고유의 가치를 전하려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 전문가들의 노력이 값어치 있는 까닭은 그만큼 브랜드의 고유함을 만드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브랜드 가치는 사실 유별난 차별점을 지니기 어렵다. 그런 까닭에 브랜드의 디자인 컨셉이나 아이디어, 전개 방식, 표현 기법이 유사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브랜드의 정체성과 가치를 시각 언어로 표현하는 방식은 수천 가지가 넘고, 그 수천 가지 방식 중 선택된 결과물이 다른 브랜드와 비슷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없다.



T와 L로 만들어진 리에주 극장 심볼과 도쿄 올림픽 엠블럼 간의 유사성 논란이 있었다.


브랜딩을 기획하고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유사성을 감안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하지만 브랜딩 전문가가 끝끝내 해야 하는 일은 브랜드의 고유함을 위한 최선의 노력이다. 특정 브랜드가 연상되는 디자인을 자랑스레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이것이 최선인가 하는 의문을 지우기는 어렵다. 이미 발표된 유사 브랜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정말 순수한 창작의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만일 애플 로고를 몰랐다는 이유로 유사한 형태의 로고를 개발해도 괜찮은 것일까? 아마 그 브랜드는 발표와 동시에 시장에서 사장되고 말 것이다. 표절 브랜드라는 꼬리표와 함께 말이다.


경험이 부족한 인턴, 신입 디자이너라면 몰라도 시니어, 디렉터급의 전문가가 유사 사례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은 그 역량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브랜드 자산의 유사성을 분별할 능력이 없다면 일론 머스크의 예견처럼 브랜딩 전문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클라이언트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에는 이런 이슈를 해결하면서도 브랜드의 고유함을 반영해달라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다.



이미 발표된 로고 디자인과 유사하지만, 법적인 문제가 없으니 괜찮다는 디렉터의 주장은 씨알도 안 먹혔다.


유사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그만이라는 태도 또한 표절 논란의 해답이 될 수 없다. 2020 도쿄 올림픽 로고의 표절 논란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벨기에의 리에주 극장(Theatre de Liege)의 로고와 도쿄 올림픽 엠블럼이 매우 유사하다는 지적이 일었기 때문이다. 물론 엠블럼을 디자인한 아트 디렉터는 '로고 개발을 위해 전 세계의 상표를 조사했으며, 유사성에 있어서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디자인한 로고'라고 말하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의 당당함 뒤에는 벨기에 극장의 로고가 상표 등록이 되어 있지 않기에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2020 도쿄 올림픽 로고 디자인은 전격 변경되고 말았다.


표절 논란으로 인해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브랜드의 가치가 훼손되는 일을 방지하고자 하는 조치였다. 브랜드 가치에 무감한 경우 로고를 그저 하나의 그래픽 디자인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로고는 브랜드를 연상하면 떠오르는 얼굴이며, 브랜드 정체성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산인 것이다. 그런 상징이 표절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브랜드 평판과 이미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임에 분명하다. 브랜드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낙인인 셈이다.




표절 옹호자들은 음이 열두 개인데 어떻게 비슷한 음악이 안 나올 수 있느냐고 말하는데 그런 논리라면 물감이 열두 개인데 그 수많은 미술작품은 어떻게 할 것이며, 활자가 몇 개 안 되는데 그 수많은 문학 작품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건 다 변명이다.

유희열 표절 논란에 대해, 작곡가 김형석


물감이 열두 개 뿐이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결과물은 수천 가지가 넘는다. 표절에 불가피한 이유란 없다.


무엇이 좋은 브랜딩이냐라는 질문에 단순 비주얼 측면에서 답을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브랜드만의 고유함을 하나의 시각 언어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신규 브랜드에서 특정 브랜드가 연상된다면 그것을 좋은 브랜딩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카테고리 내에서의 차별적 경험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타브랜드와의 시각적 유사성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런 브랜드가 주장하는 새로움과 남다름이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05.

그럼에도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이유

변명은 끝이 없고, 표절의 끝은 도태



"한번 표절하게 되면 창작에 자신감이 사라지고 계속 표절하게 됩니다. 수렁에 빠지는 겁니다. 그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 작곡가 김형석



유희열의 표절은 그가 구축한 브랜드를 단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연합뉴스TV, https://www.youtube.com/watch?v=LNn86naOsw0



창작의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이 기를 쓰고 표현의 유사성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 또한 브랜드의 컨셉과 이미지를 만드는 전문가로서 하나의 훌륭한 브랜드 자산이 만들어지기까지 무수한 노고가 있었음을 잘 알기에, 누군가의 창작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그런 태도가 없다면 브랜드 기획자나 디자이너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저 고도화된 복제 전문가 혹은 AI가 필요할 뿐이다.


이미 무수한 브랜딩 사례가 있고, 양질의 자료 또한 많다. 윤리에서 벗어나 효율에만 집중한다면 창조의 과정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필요하다 싶은 것은 보고 베끼면 그만이다. 괜히 새로운 것 만들고 검증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저기서 브랜드 톤앤매너에 어울리는 요소들을 한두 개씩 가져다가 편집하면 그럴듯한 브랜드 자산을 금방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 전문가는 굳이 차별화를 위한 노력을 감내한다.


아무리 영화나 음악, 패션이나 디자인, 음식과 같은 문화 콘텐츠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다고 해도 타브랜드의 고유한 자산을 자신의 것처럼 활용하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말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유명 드라마에서 스토리라인을 베끼고 한복을 연상시키는 의상과 한국 전통문화를 마치 중국의 것처럼 연출한 중국 드라마를 접했을 때, 무언가 도둑맞은 것 같은 불쾌한 감정이 드는 것처럼 누군가의 고민으로 만들어진 브랜드 자산을 마치 제것처럼 활용하는 AI의 산출물이 달갑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브랜드 전문가에게 표절은 무능함의 고백이며, 존재가치의 상실로 연결된다



AI의 발전은 브랜딩 전문가의 존재가치와 연결된다. 어쩌면 당장의 열매는 달콤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몇 개월 동안 고민하고 문장 하나, 단어 하나, 몇 도의 기울기, 몇 포인트의 두께까지 조각하듯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결과물을 훔쳐 단 하루 만에 그럴듯한 모양을 만들 수도 있다. 앞으로는 명령어 입력으로 손쉽게 생성된 결과물을 두고 AI에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보편화된다면 더 이상 브랜딩 전문가가 존재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그릇된 욕망의 표현이건, 무지와 무능함의 소치이건 말이다.


표절에 대한 변명은 끝이 없다. 그러나 표절이란 일종의 낙인이다. 브랜드 기획자로서,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나는 무능하고, 무지하다는 낙인. 그리고 머지않아 AI에 대체될 자원이라는 슬픈 고백이기도 하다. 기존에 발표된 무수한 브랜딩 프로젝트 중 컨셉이 독특하고, 디자인 자산의 조형미, 전개 방식이 뛰어난 브랜드 디자인 사례들을 학습한 AI 모델을 활용하면, 불과 몇 시간이면 양질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시장을 리드하는 국내 정상급 CMO와 CD들은 AI를 적극 사용하고 있고, AI를 활용에 강점을 갖지 못한 프로덕션의 경우 심각한 위기감을 토로한다.


더 이상 디자인 결과물의 탁월함, 창의성만으로 AI를 상대할 수 없다.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창의성과 심미성 모두 디자이너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AI 디자인 모델들이 발표되고 있다. 브랜드 디자이너의 가치를 증명하기에도 부족한 이 시대에 표절에 대한 관용은 디자이너의 입지를 더욱 빠르게 좁힐 것이다.





이전 연재글에서 이어집니다.


AI 시대의 브랜딩 그리고 표절

AI의 발전과 표절이 브랜딩에 미치는 영향 (이전글)

AI의 발전과 표절, 그리고 디자이너의 존재 가치 (현재글)


브랜딩은 한 권의 소설을 쓰는 일이다

완성도 높은 브랜딩을 시작하는 법

매력적인 브랜드 서사를 위한 페르소나


브랜딩의 시대 시리즈

브랜딩의 시대, 디자인은 브랜딩이 될 수 있을까?(1) : 브랜딩에서 디자인은 중요하지 않다

브랜딩의 시대, 디자인은 브랜딩이 될 수 있을까?(2) : 좋은 브랜딩은 무엇이 다를까? (1) 
브랜딩의 시대, 디자인은 브랜딩이 될 수 있을까?(2) : 좋은 브랜딩은 무엇이 다를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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