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주 | 최고야&도해밀(해밀당)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Interview | 해밀당 최고야&도해밀님과의 인터뷰
3년 전, 베를린에 갔을 때였습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멋들어진 식사를 주문했죠. 그런데 자꾸 윙~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벌들이 달려들었습니다. 화들짝 놀라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죠. 그때 베를린에 살고 있는 일행이 말하더군요. “관광객과 주민을 구분하는 방법이야. 벌을 무서워하는 것 말이야.”
베를린에서는 시 정부 주도로 2010년부터 ‘베를린 붕붕’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베를린의 주요 건물들에 벌집을 설치하였고 이제 베를린에서 벌은 또 다른 시민이 된 것이죠. 우리가 먹는 농작물의 75%가 벌과 같은 수분 곤충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해요. 벌이 있어야 우리도 생존한다는 것이죠.
벌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있습니다. 베를린은 아니고요. 충청북도 청주의 문의면에요. 가족은 처음부터 벌과 살아갔던 것은 아닙니다. 4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 생활자였죠. 그러나, 바쁜 일상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점점 부족해졌습니다. 가족은 그렇게 귀농, 양봉 농부의 삶을 택했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은 타의에 의해 짜인 일상이었다면 여기서는 스스로 일상을 만들어 나가요. 그래서 도시 생활보다 더 치열한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은 평온해요. 간단히 말하자면, 도시에서의 삶보다 삶의 만족도가 더 높아요. 도시에서는 점심시간의 짧은 커피 타임이 행복이었지만, 지금은 믹스커피를 일터에서 먹는데도 자연 속에서 먹기 때문에 항상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온전히 나의 삶에 집중할 수도 있고요. 도시에서는 외적으로 보이는 것들에 신경을 많이 쓰고 집착하는 삶이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것을 신경 쓸 필요가 없죠.
이렇게 말하면, 처음부터 귀농 예찬론자였을 것 같지만 아니에요. 4년 전 귀농은 남편의 권유였죠. 저는 반대였습니다. 청천벽력 같달까요? 많이 울기도 했고요. 그래서 남편이 먼저 내려와서 양봉을 시작했어요. 이후에 저도 딱 1년만 살아보고 다시 도시로 가자라는 생각으로 왔죠. 하지만 살아보니 다르더군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이 동네에서 자라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랑 같지만, 인프라도 잘 조성되어 있어요. 초등학교가 산 아래 위치해 있답니다. 아이들 정서에 너무 좋고 시설도 쾌적해요. 아무래도 도시에 계속 살았다 보니 너무 오지면 적응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이곳(문의면)은 그렇지 않아서 적응을 더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귀농하기 전에도 주말마다 양봉을 했어요. 시아버지가 취미로 양봉을 시작하셨거든요. 그런데 계속 벌의 개체 수가 늘어나는 거예요(웃음). 주말마다 저희 부부가 내려와 꿀 뜨는 일을 도와드렸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남편이 이곳에 내려오고 싶다, 양봉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던 것 같아요. 결국, 꿀벌 때문에 내려왔다고 해도 되겠네요(웃음).
양봉의 매력은 정말 끝도 없어요. 사실 지금까지도 매력을 발견하고 있답니다. 먼저, 양봉은 접근 가능성이 좋아요. 그런 의미에서 귀농자에게 적합한 농사일 수도 있어요. 과수 같은 경우에는 열매를 맺기까지 3~4년을 꼬박 기다려야 되거든요. 하지만 양봉은 바로 수익이 나요. 도시가 아닌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채밀하는, 꿀이 생산되는 기쁨도 크고요.
또, 꿀벌이란 생물이 정말 매력적이죠. 이 생태계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꿀벌이 정말 중요한 아이거든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지만 ‘우리는 이 생태계를 지키고 있어!’라는 사명감을 가지면서 양봉을 하고 있죠. 다양한 원인으로 꿀벌의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어요. 꿀벌의 감소는 생태계 전체를 위협할 만큼 영향력이 엄청나죠.
양봉을 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졌어요. 제가 귀농한 지 이제 4년 차인데 기후 변화 때문에 꿀 채밀이 너무 안됐어요. 너무 추워져 냉해를 입고, 벌들이 질병에 걸려 실패를 맛봤어요. 그러면서 꿀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을 남편과 많이 했죠. “환경오염이 악화되면서 기후 변화가 더 심해질 텐데, 그렇다면 우리가 꿀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양봉을 포기할 순 없었죠. 그러면 ‘우리가 환경 운동가는 아니지만 벌에 대한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자! 인간이 노력할 수 있는 부분들을 조금 나누자!’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작게나마 환경 교육, 생태 체험 프로그램 등을 시작하게 되었죠.
실제로 미국에서는 꿀벌 개체수의 감소로 아몬드와 블루베리 수확량이 줄어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이후 이는 전 세계 아이스크림 가격 상승을 만들어냈죠. 아인슈타인이 “꿀벌이 멸종된 뒤 4년 후 지구는 멸망할 것이다”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꿀의 활용도가 굉장히 높다는 점이에요. 꿀의 종류마다 맛과 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꿀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죠. 꿀은 일 년에 세 종류의 꿀을 채취해요. 먼저 5월 초-중순에 아카시아 꿀을 채밀해요. 그다음 아카시아 꿀을 뜨고 밤꽃이 피기 전까지 야생화 꿀을 떠요. 일명 잡꿀이라고도 하죠. 마지막으로 6월 초-중순에 밤꿀을 채밀해요. 성격이 모두 다르죠.
향의 세기를 나열하면 밤나무 꿀, 야생화 꿀, 아카시아 꿀 순이예요. 음식 맛을 해치지 않고 싶으면 아카시아 꿀을 넣는 게 좋고, 꿀의 풍미가 좀 났으면 좋겠다 하시면 야생화 꿀을 넣죠. 참고로 허니 뱅쇼에는 꿀의 풍미를 살리고자 야생화 꿀을 넣었답니다. 최근에는 제빵에도 꿀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았죠. 빵에 꿀을 넣으니까 빵이 굉장히 촉촉하고, 풍미가 다르더라고요.
저는 대부분의 음식에 다 넣어 먹는 것 같아요. 음료, 샐러드는 물론, 반찬을 만들 때도 꿀을 넣어 만들어요. 단골 고객 중에는 청국장에 꿀을 넣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심지어 향이 가장 센 밤꿀을요. 저도 해 먹어 본 적도 없고 상상이 잘 안 되지만 그만큼 꿀은 어느 음식에나 잘 어울린답니다(웃음).
혹시 서울에서 출근길이 아름다웠던 적 있으세요? 전 매일 출근하면서 축복받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문의면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에요. 축사도 없고, 공장도 없죠. 어디에서나 산자 수려한 경관을 볼 수 있답니다. 문의면에 과거 대통령들이 휴가 기간에 머무시던 청남대가 있어요. 대통령이 오시던 곳이니 얼마나 잘 조성했겠어요. 대청호를 끼고 청남대를 가는 길도 장관이에요. 사계절 내내 아름다워요.
이렇게 아름다운, 청정지역에서 꿀을 채밀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보통 좋은 꿀은 꾸덕꾸덕하죠. 저렴한 꿀은 일명 '물꿀'이라 해서 수분함량이 많고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요한 것은 양봉의 방식이에요. 한 지역에 정착하여 벌을 기르는 고정식 양봉*을 해야만 꾸덕한 꿀이 생산되죠. 저희도 수분함량이 19~20%인 꾸덕한 꿀을 생산하려 항상 노력해요.
*고정식 양봉 : 한정된 꿀을 얻을 수밖에 없고, 기상조건의 악화로 채밀양이 적으면 피해가 크다. 그러나 벌들의 날갯짓으로 자연 숙성되어 영양분이 많은 꿀을 얻게 된다. 반면, 이동식 양봉은 개화시기에 따라 봉군을 이동하면서 꿀을 채밀하는 방법이다. 생산성이 좋으나 채밀하자마자 이동하기 때문에 수분함량이 많은 꿀을 얻게 된다. 추후에 기계로 가열하여 수분을 날리지만 이 과정에서 영양분이 파괴된다.
좋은 환경은 좋은 작물을 선물해주죠. 저희 꿀 말고도 문의면에는 포도가 굉장히 유명해요. 하지만 작년 여름에 비가 많이 오다가 갑자기 더워지는 바람에 포도가 열과 피해를 입었어요. 판매할 수 없지만 버리기엔 소중한 농산물이잖아요. 이웃 농민분께서 저희에게 이 포도로 잼을 만들면 어떻냐고 하시더라고요. 마침 무알콜 뱅쇼를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죠. 포도를 바로 수확해 즙을 내렸어요. 그렇게 무알콜 허니 뱅쇼가 탄생했죠. 문의면 꿀과 포도의 만남이랄까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였고 반응이 꽤 좋았어요. 포도 농민분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최고야가 우리의 희망이야~!’라고 해주셨죠. 뿌듯했어요. 그때 저희의 방향성을 보게 됐어요. 해밀당의 꿀과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여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기후변화로 꿀의 수확량이 계속 적어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판매 기간도 짧아지고 있거든요. 고부가가치의 상품의 생산, 또 다른 지역 생산물과의 연계는 저희에게도 꼭 필요한 일인 것이죠.
주말마다 취미로 했던 양봉이 귀농으로 이어질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 어찌 보면 타의에 의해 시작한 탈도시 살이에 이렇게 빠져들 줄은요. 부부는 모두 자연스럽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들과의 대화에서 느꼈습니다. 꿀벌 지킴이, 문의면의 희망으로 불리게 된 것은 한번 해보자는 ‘시도’가 모인 결과라는 것을요. 최고야님은 1년만 살아보고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하였죠. 취미로 가볍게 시작한 양봉에서 성취감과 매력을 느끼기도 했고요. 기후변화로 채밀이 잘 안 되는 어려움에서는 포기하기보다 벌의 소중함, 환경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고요. 이제는 주변의 작물과 자신의 꿀을 함께 콜라보하기도 하고요.
혹시, 오늘도 생각만 하고 있지는 않나요? 처음부터 대단할 필요는 없어요. 작은 시도가 우리의 일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거예요. 오늘 로컬에서의 삶, 최고야 가족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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