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남해 | 하성민(해변의 카카카)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Interview | 해변의 카카 하성민님과의 인터뷰
도시를 떠나 시골마을로 삶의 공간을 옮길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일자리, 교통, 다양할 텐데요. 청년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친구라고 합니다. 함께 대화하며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죠. 친구들과 함께 시골에서 살아가는 것. 꿈같은 이야기라고요? 여기 도시를 벗어나 조용한 남해 시골마을로 온 친구들이 있습니다. ‘해변의 카카카’라는 유쾌한 이름과 달리, 소멸하는 방법을 탐구하며 천천히 자신들의 삶의 방향을 규정해 나가고 있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진짜 말 그대로 특별한 계획 없이 친구 따라왔죠. 2018년에 친구인 박향진 다큐멘터리 감독을 따라서요. 그 친구의 촬영*에 참여하면서 남해를 처음 방문하게 됐어요. 만약 혼자였으면 못 내려왔을 것 같아요. 처음에 내려올 때 친구 12명 정도가 모였거든요.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자연스럽게 집을 구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 중에서도 제가 가장 먼저 남해에 집을 구했어요. 개인적으로 이동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성향이거든요. 제 삶의 궤적이 계속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했고, 지역에서 사는 것에도 관심이 있었죠. 사실, 귀촌이 방법적으로는 쉽거든요. 그냥 서울에서 다른 동네로 이사 가듯, 남해에서 집 구하고 짐 옮기면 되는 것이죠. 그 마음먹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함께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편하게 왔던 것 같아요.
* 박향진 감독의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된다>(2018년)는 ‘남해에서 뭔가 해볼 순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되어 남해로 귀촌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지금도 남해에서 계속 이동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월세로 지냈어요. 어촌 마을에서 지냈었거든요.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집에서 지냈고, 방 3개에 창고가 딸려 있는 집이었어요. 2년 이후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산촌 마을에 살고 있어요. 지금은 전세로 지내고 있고, 방 3개에 마당과 창고가 하나 있는 약 150평 정도 되는 부지예요.
이동하는 데에 두려움이 없는 그들은 남해에 정착했지만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삶을 택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카카카는 남해에서 여행이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데는 일, 경제활동이 필수적이죠. 4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카카카는 지금도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있습니다.
2018년 3월에 처음 이주를 하고, 3월부터 8월 여름까지. 한 반년 간 ‘매우 즐겁게 오랫동안’ 놀았어요. 친구들도 놀러 오고, 같이 밥해 먹고, 술 마시고, 해수욕하는, 그런 시기를 한 반년 정도 지낸 거죠. 그러다 돈이 떨어지니까 저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이 경제적인 고민을 하고, ‘일을 해야겠다’해서 ‘카카카’라는 카레집을 차렸어요. 근데 한 달 반 정도 하다가 식당을 결국 접었죠. (웃음)
저희가 문화기획, 디자인 등 창작 활동하는 친구들로 이루어져 있었거든요. 그러다 서울 창조경제 혁신센터에서 주관했던 <로컬 라이프 랩>이라는 문화 지원 사업을 처음 접했죠. 그렇게 남해를 기반으로 출판이나 문화 기획을 하는 ‘해변의 카카카’가 시작되었어요.
그 이후로도 주로 정부 지원사업을 많이 받아왔어요. 그러나 올해부터는 좀 줄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년 동안 지원받으면서 했던 일들이 저희 스스로 만들어내는 힘의 밑거름이 됐다고 느껴요. 이제 ‘이걸 바탕으로 다음 단계를 가야 하지 않을까.’라며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카카카’라는 기업의 지속력과 자생력이 생기도록요.
요즘은 카카카의 재정비, 발돋움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건물 매입을 위한 펀딩을 준비 중이라 매주 서울이랑 남해로 왔다 갔다 해요. 내부 회의를 하면서 5년 정도는 남해에 더 머물겠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렇다면 저희만의 물리적 공간이 하나 필요하겠다 싶었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남해는 경남·전남권에서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예요. 땅값이 계속 오르고 있죠. 저희는 굉장히 가난하거든요. 내부 예산으로는 불가능하다 보니까 ‘여기저기 사람들한테 모아보자. 빌려보자.’하면서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요. 건물을 매입한다면 앞으로의 5년 정도의 계획을 세우고, 어떤 수익 활동을 할지 그리고 어떻게 돈을 갚아나갈지에 대해 설계하고 있어요.
내부적으로는 업무 스타일과 방향, 사업 수익 모델 같은 방법들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설계하는 중이에요. 약 4년 동안 일을 했지만 체계가 있진 않아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왔다면 이제는 이 일들을 정리하면서 카카카의 방향성을 잡아나가고 있죠.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은 카레집이 망하고 난 뒤, 처음 따 낸 지원사업의 결과집입니다. 직설적인 제목의 잡지는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수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관찰자적 시각으로 덤덤히 써 내려간 소멸의 현장은 여러 물음과 걱정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소멸이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을 넘어 변화라고 말합니다. 생활을 통해서 겪는 변화들. 그것은 손에 잡히는 물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일 수도 있죠.
지역에 살면서 하고 싶은 말을 찾기 위해 책을 만드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단순히 ‘이런 책 만들면 재미있겠네.’ 정도였어요. 처음 해보는 프로젝트고 작업이다 보니까 어려움이 있어도 즐겁기만 했죠.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은 각 호마다 주제가 있죠. 1호는 빈집, 2호는 전동 휠체어였어요. 모두 저희가 남해에서 관찰한 장면? 사물이죠.
우선, 여기서 살기 위해서는 집을 구해야만 하죠. 지역에는 빈 집이 엄청 많거든요. 그러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집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당시 저희가 살았던 어촌마을에 한 이발소가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저희가 거기를 엄청 좋아했어요. 예뻐서 자주 갔고, 가면 언제나 그대로 있었죠. 빈 집을 계속 확인하게 되는 시간들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주제로 정했어요.
2호인 전동 휠체어는 문화 행사 관련해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가 얘기가 나왔어요. 남해는 물론이고 지역에는 전동 휠체어가 정말 많이 보여요. ‘전동 휠체어 달리기 대회를 하면 어르신들도 참여할 수 있고 재밌겠다.’라는 흘러가는 얘기가 나왔죠. 이때 제가 ‘2호 주제로 전동 휠체어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선택하게 됐어요.
아직 발행되지 않은 3호는 생소할 수도 있지만 인류세*를 주제로 하고 있어요. 인류세 관점에서 ‘인류세 대멸종’이라는 키워드가 나와요. 지금도 인류의 환경 파괴로 굉장히 많은 생물종이 멸종해 가고 있다는 거죠.
지방 도시 소멸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엄청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지방 도시 소멸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사람들이 사라지면 지역에서 생물종들은 오히려 보호되는 거 아닐까? 멸종되지 않고 자연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거 아닐까?’라는 뭔가 상상까지도 가게 됐죠. 이런 맥락에서 ‘멸종과 소멸이라는 키워드를 좀 부딪히게 해 보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3호의 주제로 선택하게 됐어요.
인류세 멸종이라는 키워드에 흥미가 생겨서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저도 계속 책에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하면서 작업 중이에요. 저의 고집으로 인류세로 정한 것도 있거든요. 5월 중에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잘 담아봐야죠.
* 인류세 :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이다. 지질시대를 연대로 구분할 때 기(紀)를 더 세분한 단위인 세(世)를 현대에 적용한 것으로, 지질시대 최후의 시대이자 현세인 충적세(沖積世)에 이은 전혀 새로운 시대이다. 인류세는 환경훼손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현재 인류 이후의 시대를 가리킨다.
살면서 남해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긴 해요. 젊은 사람들의 정착이 생겨나고 있죠. 저희 말고도 지역 자립 프로그램 같은 것을 했던 팀도 있어요. 거기 참여했던 분들이 귀촌을 직접 실행하시기도 하고요. 근데 ‘드라마틱하게 사람들이 유입됐다.’보단 ‘조금씩 재밌는 분들이 들어오네.’ 정도인 것 같아요.
재밌는 분들이 많이 생긴다는 건 저희에게 즐거운 일이거든요. 새로운 가게가 생겼다고 하면 엄청 가보고 싶고 그런 것처럼요. 누구는 이곳이 죽은 도시, 죽어가는 도시라고 하지만 이 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지고 생기고 하는 것들이, 변화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일상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희가 이번에 서울에 갔다가 내려오면서 읍내를 지났는데 왕만두 가게가 생겼더라고요! 왕만두 가게가 없었거든요. 여기는 김이 폴폴 나는 만둣집이 한 곳도 없어요. 제가 매일 ‘만두 먹고 싶다. 왕만두 먹고 싶다.’ 노래를 불렀는데 정말 생겼어요. 정말 반가워서 보자마자 만두를 구매했죠. 사실 방금도 하나 먹었어요.(웃음)
왕만두 가게 말고도 저희가 살고 있는 마을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아까 산촌마을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무지개마을이라고 불려요. 산지라 해도 12월까지도 따뜻함이 있죠. 가구 수도 굉장히 적고, 관광지도 아니기 때문에 아주 조용해요. 산책하기도 좋고, 마을 근처 산 중턱에 저수지가 넓게 있는데 거기도 뷰가 엄청 예쁘거든요. 바닷가도 보이고, 그런 편안함이 좀 있는 마을이죠. 남해는 조용하고 따뜻한 게 매력이에요.
귀촌을 꿈꾸시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내려오기 전에 ‘우리가 지향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델, 사람들과 비슷할까’를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말로 하면 정보 습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왜냐하면 너무 막막할 수 있어요. 저희도 선 모델을 계속 생각하면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지역의 정보가 너무 없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내려와서 정착했는지 참고하시는 게 더 현실성 있는 계획을 세우실 수 있을 거예요.
지역에 내려가서 사는 모델이 엄청 다양해요. 저희처럼 친구들끼리 내려온다거나 가족, 신혼부부, 혼자서 내려오는 경우 등이 있죠. 저희는 단순히 즐거워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내려온 모델이잖아요. 쉽지 않죠. 이렇게 도시에서 마음 맞는 사람이 만나서 함께 이주한다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던 것 같아요. <무럭무럭>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유이기도 해요. 저에게는 좋은 경험과 기회였고, 앞으로도 이런 경험들을 공유하고 싶어요.
* 해변의 카카카가 2020년에 기획한 창작자의 지역 살이 프로그램이다. 창작 활동을 하거나 문화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1기는 6주 살이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2기는 일주일 살이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남해에 정착하고 카카카의 멤버가 된 경우도 있다.
해변의 카카카에게 재미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없습니다. 그들에게 지역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재미있는 활동들을 했던 곳이 남해였던 것뿐이죠. 어쩌면 지방 소멸의 해결책은 카카카의 활동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귀촌이라는 개념을 너무 좁게 바라봤던 것은 아닐까요. 이들의 말처럼 지역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 다양한데 말이죠.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셨다면, 먼저 다양한 삶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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