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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어바웃 Jul 14. 2022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고 있어요.

인천광역시 | 이종범(스펙타클워크)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tambang.kr / @tambang.kr



Interview | 스펙타클워크 이종범님과의 인터뷰


오늘 출근길, 얼마나 걸리셨어요? 서울의 출근 시간은 평균 53분이라고 합니다(서울 생활이동 데이터, 2021). 하루에 약 2시간 정도를 길에서 보내는 것이죠. 여기에는 경기도, 인천광역시 등 일명 ‘수도권’에서 출퇴근자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는 72.1분, 인천에서는 82.1분이 걸리죠. 놀랍게도 왕복이 아닌, 아침 출근 시간만을 측정한 결과랍니다.


오늘의 주인공, 종범님도 서울로 가는 지하철에서 억울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왜 서울로 가야만 할까? 우리 동네에서 일을 할 순 없는 것일까?



왜 서울로 가야만 할까?


대학교도, 첫 직장생활도 서울에서 시작했죠. 학교는 동대문구였고 직장은 강남이었어요. 매일 서울과 인천을 오갔죠. 집이 아예 지방이면 깔끔하게 자취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자취를 하기에는 가깝고 통학과 통근을 하기에는 애매하게 멀었어요. 학교는 왕복 3시간 반이었고 직장은 조금 가까운 3시간이었죠. 이동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무엇인가를 할 수 없는 컨디션이 돼버리는 것이 문제였죠. 또 길에 있는 3-4시간이 하루하루 쌓이면 엄청 긴 시간이잖아요. 너무 아깝고 억울했어요.


아마 인천만 그런 것은 아닐 거예요. 서울 근교, 수도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하겠죠. 일할 때도 서울로, 놀 때도 서울로 가죠. 예를 들어, 인천 사람이랑 서울 사람이랑 만나면 항상 서울에서 약속을 잡잖아요. 저희는 강남은 당연하게 가고, 약속 장소가 홍대면 심지어 가깝다고 좋아해요. 근데 홍대에 있는 사람한테 인천으로 와달라고 하면 그렇게 먼 곳을 어떻게 가냐고 해요. 이때, 인천 사람들은 억울한 거죠.(웃음)


내가 사는 곳에 직장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불과했죠. 직장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꿈을 꾼 것도 아니었죠. 요즘 유행하는 사이드 프로젝트처럼, 인스타그램에 내가 사는 곳인 인천의 풍경을 담아보는 일을 시작했어요. 그게 스펙타클워크의 시작이에요. 당시가 회사와의 계약이 만료되었던 시점이었거든요. 무엇인가를 시도해볼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이죠.


인스타그램 피드를 맨 아래까지 내려면 지금과 좀 달라요. 그때는 인천의 자연스러운 일상의 풍경들을 소개하는 개인 계정이었죠. 스펙타클이라는 이름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2016년쯤, 서울 포토, 제주 포토 같은 이름으로 동네 풍경을 보여주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유행했었어요. 저도 우리 동네, 인천 풍경을 업로드하는 계정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았던 것이죠.(웃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스펙타클은 인천과 참 잘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차이나타운 쪽의 인천을 가본 사람에게 인천은 뭔가 옛날 동네 같은 곳이고, 송도에 간 사람에게 인천은 미래 신도시의 느낌이고, 산업단지 쪽에 간 사람에게 인천은 공장단지죠. 인천에 대한 인상은 정말 다양해요. 매번 다른 모습, 그것이 인천의 정체성이자 매력인 것이죠.

스펙타클워크를 통해, 인천을 발견하고 있는 이종범님 Ⓒ탐방



동네에서 일을 하다.


언제부터 일을 시작하였냐는 질문에, 회사의 입사나 창립 시점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종범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던 시기,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을 때를 꼽죠. 동네에서 직장을 다니고 싶지만 동네에 원하는 직장이 없자 종범님은 스스로 일을 했어요. 인스타그램에 동네를 기록했고,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면서 스스로를 계속 탐색했던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에 대해서요. 아직 젊고 한 번 시도했다가 말아먹어도 상관없으니 그냥 지역, 우리 동네를 기반으로 재미있는 것들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인천의 카페들을 소개하는 책을 쓰게 되었어요. 그때만 해도 인천에 독립서점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인천이란 동네를 대변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 뭐가 있을까’가 저의 고민이었죠. 인천에 대한 책은 월미도나 차이나타운, 공항에 대한 뻔한 내용이었고 종류도 관광책자 아니면 너무 학술적인 책이었어요. 저도 월미도나 차이나 타운은 진짜 가끔 한번, 서울 사람들이 가는 것만큼 가거든요. 공항도 외국 갈 때만 가는 건 똑같고요.(웃음)


우리 동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컸었어요. 그게 진짜 인천, 내가 사는 곳이라고 했죠. 그리고 카페를 떠올렸죠. 맛집이 아닌, 가장 대표적이면서 작은 단위의 문화공간으로요. 인천의 카페 30곳을 인터뷰했죠. 안 가본 동네를 많이 다니게 되었어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인천을 더 알아갔달까요?


인터뷰 컨택은 생각보다 수월했어요. 기억으로 한두 군데만 거절을 당했던 것 같아요. 그중 한 곳도 곧 폐업 예정이라 거절하셨어요. 당시 제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우가 딱 천명 정도였거든요. 그럼에도 인천에 대한 계정이다 보니 카페 사장님들께서 한 번쯤은 제 계정을 보셨더라고요. 인스타그램이 꽤 힘이 됐답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통해서 2017년 초에 책이 나왔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결과가 좋았어요. 280분 가까이 펀딩을 해주셨거든요. 그런데 또 이게 사람들이 많이 사준다고 마냥 기쁘기만 한 건 아니더라고요. 아직 책이 완성된 것이 아니잖아요. 가볍게 시작했는데 많은 분들이 돈을 주고 사겠다고 하니, 부담이 되는 거죠.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하고 든 생각은, ‘나만 원했던 것이 아니었구나’였어요. 본격적으로 일을 해야겠다 싶었죠.


2017년에 나온 <서울보다는 멀고 제주보다는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은 종범님이 업으로써 로컬, 인천을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인터뷰로 인연이 닿아 코스모40*의 창립 멤버가 되었죠. 코스모40이 자리가 잡히자 종범님은 더 다양한 기획에 목말라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펙타클워크는 현재까지 정말 다채로운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 코스모40은 인천 서구의 폐공장을 개조한 복합 문화공간이다. 산업유산을 활용한 사례이자 분위기 좋은 카페와 다양한 문화 전시행사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인천의 풍경을 담은 인스타그램에서 책으로, 회사로, 인천의 커뮤니티로 성장하였다 Ⓒ탐방


느슨한 협업, 커뮤니티로 만들다.


스펙타클워크의 정식 직원은 아직 종범님뿐입니다. 그러나 종범님은 항상 여러 사람들 속에서, 함께 일 합니다. 느슨한 협업을 통해서요. 말이 쉽지, 느슨하게 어떻게 일할 수 있냐고요? 스펙타클워크는 현재까지 총 3권의 책을 발행하였고 곧 4번째 책이 나옵니다. 느슨한 모임인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는 2기까지 51명의 멤버가 함께했고 이번 달, 3기가 시작됐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인천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도대체 이런 협업을 어떻게 실현한 것일까요.


매거진 창간호는 4명이 함께 만들었어요. 2호를 만들고 있는 지금 편집부는 6명이고요. 모두 본업이 있죠. 서울에서 마케팅을 하고 계시는 분, 디자인 회사를 다니시는 분, 심지어 지자체의 공무원도 계세요. 그분은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보니 너무 재밌어 보여서 같이 하고 싶다면서요.(웃음)


이러한 협업은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죠. 직원이 한 명 생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10명에서 11명이 되는 것보다 1명에서 2명 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가끔 주변에서 제가 하는 일이 재밌어 보인다 나중에 협업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기는 해요. 하지만 그런 분들 모두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떻게 해야 좋은 분들과 협업할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그리고 코로나가 왔죠. 코로나 직전에 야심차게 선보였던 기획이 오프라인 문화행사였거든요. 좋은 반응을 얻었죠. 하지만 코로나로 이어갈 수 없었어요. 아예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당황스러웠어요.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연결하는 것이 저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만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던 차에 작년 이맘때쯤, 반짝 클럽하우스*가 유행했죠. 하도 유행이라고 하니, 저도 해봤죠. 인스타그램 팔로워 분들과 함께 대화를 했어요. 제 고민들을 나누다 보니 ‘나도 같이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제안을 못했다. 함께하고 싶다'는 말씀을 정말 많이 해주시는 거예요. 클럽하우스 대화 중에 느슨한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일주일 만에 공고를 냈어요. 일단 저지르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웃음)


심지어 모여서 무엇을 할지도 같이 정해보자라는 생각이었죠. 30분 정도가 지원하셨고 그중 11명이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1기로 함께했어요. 보통 공공 영역에서 이런 창작 모임을 만들면 창작이 업인 분들을 많이 모집하잖아요. 하지만 전, 그건 오해라고 생각해요. 각자가 자기의 영역에서는 멋있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고, 자신의 동네에서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니즈는 창작이 직업인 사람에게만 있는 건 아니죠. 실제로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안에서 각자가 ‘어떠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주세요. 그럼 제가 그분들을 서로 연결해 드리거나 스스로 팀을 꾸리 시기도 하죠. 스펙타클 매거진도 그렇게 만들어지게 된 것이고요. 3기까지 이어진 지금도 다양한 협업이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는 대학이라는 이름답게 3개의 반과 16주간의 커리큘럼이 있습니다. 각 반은 작은 모임으로 매주 함께 모여 정해진 주제의 활동을 합니다. 주제는 단지 가이드일 뿐입니다. 영화를 보기도 하고, 맛집에 가기도 하고, 무엇을 할지는 멤버들이 정하는 것이죠. 마치 대학교에서 조별 과제를 하듯이요. 물론, 등록금도 있습니다. 매 기수 경쟁률은 2대 1에서 3대 1 정도가 될 정도로 높아지고 있죠. 그러다 보니 지원 시 작성해야 하는 내용이 꽤 많습니다. 참여자가 노력하여 들어간 만큼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는 느슨하지만 끈끈한 모임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느슨하지만 그 누구보다 활발한 커뮤니티,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스펙타클워크


저도 각 잡고, 전통적인 방법론에 따라서 일을 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정말 체계적으로 열심히 준비했지만 생각처럼 일이 되진 않더라고요.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더 했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셋업을 해놔 봤자 변수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 스펙타클은 큰 조직도 아니고 계속 린(lean)*하게 해야겠구나. 지금은 빠르게 뭔가를 시도하고 안되면 빠르게 다른 것을 해야 하는 시대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부적 상황은 많으니까요.


*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은 만들기-측정-학습을 꾸준하게 반복하면서 혁신을 해나가는 도요타의 린 제조(lean manufacturing)에서 유래한 경영 방법론이다. 에릭 리스의 ‘린 스타트업’이라는 책이 실리콘밸리에서 인기를 끌고 이후 전세계의 기업에서 도입하고 있다.


곧 오프라인 공간인 <스펙타클타운>이 생길 배다리 마을 Ⓒ탐방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종범님은 ‘내가 사는 도시를 살고 싶게 만들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를 찾아가는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혹자들은 부동산, 학군들을 꼽지만, 종범님에게 가장 필요한 세 가지는 취향에 맞는 공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나 이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취향에 맞는 공간을 찾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카페를 찾고 소개했습니다. 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터가 없으니 스스로 일을 기획하게 되었죠. 그것은 지역에서 창작자들이 일을 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일터가 생길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나와 취향이 같은 동료와 이웃을 알기 위해,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라는 모임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난 제주에 살고 싶어. 난 무조건 서울. 우리는 항상 어느 도시에 살고 싶은지 말합니다. 그러나 살고 싶은 이유, 그 도시의 요소를 깊게 생각해보진 않죠.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 있다면, 그곳이 서울이든 제주이든 혹은 뉴욕이라도 상관이 없을 텐데 말입니다. 오늘은 한 번, 내가 살고 싶은 곳과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나를 잘 알아가는 시간이 될 거예요. 또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내가 원하는 도시로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일 수도 있죠. 종범님이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것처럼요.


오늘 로컬에서의 삶, 종범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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