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 | 하혜림(카페 프로방스)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Interview | 카페 프로방스 하혜림님과의 인터뷰
프랜차이즈와 동네의 작은 가게. 어떤 쪽을 선호하시나요? 서로 장단점이 있죠. 저는 고민 없이 빠르게 결정하고 싶을 때 프랜차이즈를 선택해요.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음식점, 빵집, 카페는 모두 작은 가게랍니다. 익숙하지 않은 지역을 방문했을 때도 작은 가게를 들어가곤 합니다. 그 동네만의 분위기와 문화에 깊게 빠져볼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의 주인공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3년 전, 우연히 들어섰던 작은 카페. 하혜림님은 강원도 철원에서 작은 카페이자 빵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철원에서 태어났고 철원에서 쭉 살고 있죠. 대학시절에만 철원 밖에 있었어요. 고향에 돌아오게 된 이유를 물으면 답하기가 참 어려워요. 딱히 돌아와야겠다는 강한 생각이나 의지가 있지 않았거든요. 정말 어쩌다, 자연스럽게 돌아왔죠.
이 공간이 원래는 부모님께서 운영하는 펜션과 래프팅 고객을 위한 휴게실이었어요. 말이 휴게실이지 사무실이었죠. 엄마가 먼저 이 공간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고, 카페를 말씀하시더라고요. 엄마가 구상한 카페는 기존 손님들을 대상으로 한 공간이었죠. 기존의 휴게실에 마실거리가 추가된 공간이랄까요? 하지만 펜션과 레저 손님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니 재고관리가 안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동네분들도 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당시만 하더라도 철원에 카페가 많이 없었거든요. 엄마보다는 젊은 제가 좀 더 카페의 문화에 익숙하니까 하나씩 의견을 내다가 한 두 개씩 직접 알아보고 준비하게 되었고, 어느새 제가 맡게 되었어요. 정말 어쩌다 카페 사장이 됐네요. 카페를 운영해야 하니 카페가 있는 철원에 살게 된 것이고요.(웃음)
고향에 살아서 좋은 점은 가족이에요. 가족이 있기 때문에 카페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엄마와 삼촌과 매일 같이 일하고 있어요. 아빠도 바쁘면 도와주시죠. 사실 아빠는 카페를 내켜하시지 않았어요. “이게 수익이 나겠냐.”라며 핀잔을 주시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제가 카페를 운영해가며 성장하는 것을 기특해하시는 것 같아요. 카페에 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어요. 제가 이런 공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고 의견을 드리면 아빠가 직접 시공을 해주시죠. 카페의 온실도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주셨죠. 계속 공간을 업드레이드 해주시는, 없으면 안 되는 존재랄까요?
카페에서 일을 해본 적도, 제빵을 배워본 적도 없어요. 카페를 오픈했을 때는 음료만 있었죠. 1년 정도 지나자 손님이 점점 늘어나면서 마실 것 말고 먹을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물론, 다른 곳에서 받아서 판매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 싫었던 것 같아요. 이왕 손님께 판매한다면 제가 직접 만들어 더 좋은 것을 드리고 싶었죠. 그때부터 제빵을 배웠어요. 가끔 저를 파티시에라고 부르시기도 하는데, 굉장히 부끄러워요.(웃음) 제가 생각하는 파티시에는 전문 교육을 받고 빵에 조예가 깊은 사람인데, 저는 정말 얕은 배움으로 빵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지금도 배우고 있어요. 정기적이진 않지만 배우고 싶은 제빵 기술이 있으면 유명하신 분들을 찾아가서 배우고 오죠. 보통 김포나 의정부, 경기도 외곽 쪽으로 많이 가는 것 같아요. 거기서 배워온 것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하면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왔어요. 쌀 스콘이나 쿠키, 고추냉이 페스토도 그렇게 탄생했어요. 제빵을 시작했던 것처럼, 이왕 빵을 만들어 판매한다면 지역 식재료를 활용하는 게 좋겠다 싶었죠. 또 그게 경쟁력이 될 것 같았죠.
쌀로 빵을 만든지는 오래되지 않았고 품목도 많지 않아요. 철원 오대쌀은 그 자체로 워낙 유명하잖아요. 밖에서 오신 분들은 신기해 하시죠. 동네분들은 아기가 있거나 밀가루 소화가 어려우신 분들이 많이 좋아하시고요.
고추냉이*가 어려웠어요. 고추냉이가 나름, 철원의 특산물이거든요. 쌀처럼 제빵에 활용해보고 싶었죠. 스콘 안에도 넣어보고 별의별 방법을 다 해봤는데 맛이 없는 거예요.(웃음) 아무리 특산물이라도 맛이 있어야 사 먹는 거잖아요. 진짜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했던 것이 고기에 고추냉이를 얹어 먹듯이, 감자랑 베이컨 베이스의 스콘 위에 고추냉이를 소스처럼 올리는 방법이었어요. 딱 먹고 나서 “아 이거 팔아도 되겠다.” 성공이었죠.
* 강원도 철원군은 1997년부터 국내에서 최초로 물 고추냉이를 생산하였다. DMZ 민간인통제구역 내에 샘통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되는데, 연중 15℃의 천연 샘물이 솟아난다.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는 한 달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보통 영업이 끝난 밤이나 손님들이 없는 시간을 활용하고 있어요. 다양하게 만들어보고 먹어보고 하는 과정이에요. 그 한 달 동안 가족들은 정말 여러 번 먹죠. 완성되지 않은, 맛없는 빵을 먹는 고달픈 과정이랄까요? 저는 어떻게 나왔든 먹어보게 하고 피드백을 받아서 수정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러다가 가끔 결과물이 너무 안 좋을 때도 있죠. 그럴 때면 굳이 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나, 보통의 빵을 팔면 되지 않나라는 현타가 오기도 해요.(웃음)
그래도 앞으로 계속 오대쌀과 같은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디저트를 확장해 나가고 싶어요. 지금은 카페에서 지역 식재료가 큰 부분은 아니지만, 지역만의 것을 활용해 보니 점점 더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혜림님은 제빵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네의 주요 식재료인 오대쌀과 고추냉이를 용기 있게 빵에 접목해보고 레시피를 개발합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배움을 위하여 타 지역에 적극적으로 방문합니다.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하여 저녁 9시까지 손님을 맞는 스케줄 속에서, 혜림님의 노력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실하게 가게를 일구면서,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내는 혜림님이야 말로 진정한 파티시에가 아닐까요.
요일별로, 시간별로 오시는 손님이 달라요. 주말에는 관광객들이 많죠. 요새 철원에 관광지가 많이 생겼거든요. 최근에 한탄강 잔도*가 생긴 다음에 확실히 관광객이 늘었어요. 카페 운영하면서 철원의 변화를 느끼고 있죠.
* 한탄강이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선정되면서, 철원군은 2021년 11월, 총 3.6km의 한탄강 주상절리 길 잔도를 오픈하였다. 협곡을 따라 걸으며 자연의 웅장함과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트래킹 코스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평일에는 아무래도 동네분들이 더 많이 오세요. 평일 점심때는 주로 회사원들. 철원에 회사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오시더라고요. 특히 공무원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오후가 되면 아이랑 같이 오시는 분들로 채워지죠.
철원에서 태어나 계속 살았지만 철원을 정말 몰랐다고 생각해요. 저조차도 철원에는 젊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카페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젊은 분들이 많은 거예요. 또, 막연히 카페 손님이라고 하면 젊은 분들만 생각했는데 연령대도 다양해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카페 단골이시죠. 처음에는 신기하더라고요. 일반적으로 어른들이 스콘 같은 디저트를 찾지 않으실 것 같지만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한 번 드셔 보시고 또 오시고요. 카페를 운영해 갈수록 철원 토박이인 저조차 철원에 대한 편견이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8년도 5월부터 카페를 시작했어요. 그때는 오픈일도 안 정해져 있었고 ‘오시려면 한 30분 전에 이야기해주세요’라고 적어놓고 장사를 했어요. 정말 너무하죠? (웃음) 그러던 중에 어떤 동네 분이 커피를 마시러 오셨다는 거예요. 씻지도 않고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말이죠. 부랴부랴 내려가서 커피 내드렸어요. 그래도 그 손님들이 이곳을 너무 좋게 봐주셨어요. 동네 장사는 입소문이라고 하잖아요.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때부터 동네 손님들이 늘기 시작했어요. 그 손님이 귀인이죠. 지금도 자주 오시고 저도 또 그냥 손님 이상으로 느껴지고요.
손님이 새로운 손님을 소개해 주는 것 같아요. 카페를 하면 할수록 철원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점점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몇 년 전부터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단어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 직역하면, 지역 창작자. 지역의 자원을 기반으로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죠. 누군가는 창업가로, 또 누군가는 문화기획자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오늘 혜림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탐방’은 생각했습니다. 지역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며 아주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지역 창작자, 로컬 크리에이터가 아닐까요.
당신은 창작자입니까?
나의 일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다면, 대답에 주저하지 마세요. 당신의 성실함과 꾸준함은 분명, 누군가의 순간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또, 우리 주변에 혜림님과 같은 창작자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까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동네에서 자주 가던 가게일 수도 있죠. 그들의 노력과 창작을 응원해주세요. 당신과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으니까요.
오늘 로컬에서의 삶, 혜림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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