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옥천 | 이상윤(고래실)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Interview | 고래실 이상윤님과의 인터뷰
옥천에 가보셨나요? 충청북도 옥천은 대전 옆에 있는 도시죠.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옥천이 지역 문화의 대표 도시라는 소문이 들리고 있어요. 바로, <월간 옥이네>라는 지역 잡지로 유명한 사회적 기업 ‘고래실’ 덕분이라던데요. 오늘 만난 상윤님도 바로, 그 회사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또 지난 탐방 인터뷰의 주인공인 생강, 경미님과 함께 팟캐스트, <공존공생>을 만드는 귤PD이기도 하죠. 고향을 위해 지역을 알리는 젊은이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상윤님, 옥천 출신이 아니라고 합니다. 상윤님은 어쩌다가 옥천으로 온 것일까요?
고고학과를 졸업했어요. 지금 하는 일과는 많이 다른가요?(웃음) 대학을 졸업하고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일했죠. 큐레이터라고 하면 굉장히 멋진 이미지가 있잖아요. 문화적으로도 선두에 있을 것 같고 세련미가 넘치는 사람일 것 같은 느낌이요. 그런데 그 속내를 살펴보면 그렇지만은 않아요. 저는 유물 관리팀에 속해있었어요. 유물관리팀은 하루 종일 수장고 안에 들어가 있어요. 새로 들어온 유물을 기록하고 사진을 찍고, 다시 꺼냈다가 확인하고 넣고, 이런 작업을 반복하죠. 수장고는 유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보물창고다 보니, 모든 것이 유물 중심이에요. 보안뿐만 아니라 모든 환경이요. 휴대폰도 안 터져요. 그곳에 들어가면 세상과 단절이죠. 저녁 6시가 되면 문이 스르륵, 자동으로 닫히거든요. 갇힐 수도 있어요.(웃음) 물론 갇히면 전화를 해서, 문을 열어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 절차도 정말 복잡해요. 그런 것은 어떻게 보면 재미인데, 저한테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업무가 힘들었어요. 또, 정식 학예사가 되기 위해서는 업무를 하면서 학업을 지속해야 하는데, 결심이 서지 않더라고요. ‘과연 학예사가 맞는 길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죠.
박물관에서 도슨트를 해보기도 했고 가끔은 주말에 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문화재 탐방 교사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도 했어요. 근데, 그때 ‘내가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퇴사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죠. 제가 대중과 어울리면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퇴사를 한 뒤, 헬로파머라는 귀농귀촌 온라인 매거진을 창업했어요. 2년 반 정도 운영하다가 접었죠. 경영은 어렵더라고요.(웃음) 헬로파머와 지금 몸담고 있는 고래실이 비슷한 시기에 창업을 하기도 했고 꾸준히 교류했었거든요. 고래실 대표님이 ‘놀지 말고 일해라.’하면서 거둬주셨죠. 그렇게 옥천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주식회사 고래실이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고래실은 ‘월간 옥이네’라는 지역 잡지를 발행하면서 옥천의 다양한 문화 기획을 맡고 있는 로컬 콘텐츠 회사예요. 잡지를 통해서 지역의 자원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발굴된 문화 자원을 축제나 행사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로 녹여내면서 지역사회에 문화적으로 긍정적 임팩트를 줄 수 있는 회사예요. 그 안에서 저는 기획협력국장으로 있습니다. 월간 옥이네라는 잡지가 잘 나오기 위한 서포트 역할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파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옥천의 자원을 활용한 문화 프로젝트로, 귀농귀촌 캠프라던가, 청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토크 콘서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원두막 짓기 워크숍 등을 기획하고 운영했어요.
카페 둠벙은 고래실의 지역 문화 프로젝트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에요. 둠벙이 있는 이 길은 어두침침한 공간이었어요. 기차역 뒤 길, 불량 청소년들이 담배를 태우는 그런 곳이요. 고래실 창업과 함께 1층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만들면서 이 길을 밝은 거리로 변화시키는 일을 해왔죠. 가로등도 하나밖에 없어서 저녁 7시 넘어가면 정말 깜깜한 거리였거든요. 조명 작업을 하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벽화도 그렸고요. 이후에 점차 카페도 들어서고, 로컬 밥집도 생기고 조금씩 변화되더라고요. 저도 초기 우범지대의 모습은 사진으로만 봤지만,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요.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하나 남은 시설이 성인오락실이에요. 성인오락실은 겉에 빛이 안통하게 시트지를 쫙 붙여두잖아요. 그런데 며칠 전에 시트지가 다 떼져 있더라고요. 물어보니 업종 변경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아직 무슨 업종으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더 건전한 업종으로 변화하길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둠벙의 지금 모습은 2019년에 지원을 받아 리모델링했어요. 원래는 문화공간이라고 좀 더 어른들 취향의 공간이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옥천의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둠벙은 청소년이 언제든지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생각에, ‘만화 카페’로 바뀌었죠. 현재도 토요일에는 청소년이 직접 카페를 운영해요. ‘자립 카페’라고 해서, 아이들이 실제로 카페를 하루 운영하는 거예요. 직접 커피를 내리고 계산도 하고 스스로 돈을 벌어가죠. 임대료는 받지 않지만 재료비는 받아요. 자립 카페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면, 경쟁이 아주 치열해요. 학생들이 노동의 가치와 경제를 몸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 과정을 놀이로 즐기는 겁니다. 제 사수였던 이전 국장님이 고래실에서 기획하고 운영하던 프로그램인데, ‘꿈꾸는 배낭’이라는 협동조합으로 독립을 하셨어요. 사무실도 바로 이 근처죠. 고래실에서 공간을 제공하고 실제 운영은 꿈꾸는 배낭이 담당해요. 고래실이 인큐베이팅을 한 것이죠. 저희 회사는 이런 독립과 확장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고래실이 모든 것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 분야, 주체가 생겨나는 것이 옥천 문화의 힘을 키우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고래실과 둠벙이 있는 이 길, 금거북이길에는 옥천신문, 옥천FM, 꿈꾸는 배낭, 옥이네 밥상 등 옥천만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기업이 밀집해있어요. 그리고 모두 한 공동체처럼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죠. 옥천 저널리즘 스쿨이 운영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네트워크 때문이에요. 옥천신문이 운영하기는 하나, 금거북이길 일대에서 인턴 생활을 하죠. 특별한 커리큘럼이 없는 대신, 필드를 제공해 줘요. 지역 주민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어떤 식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해야 되는지에 관한 실습 혹은 체험을 하는 거죠. 지금 여기, 둠벙에 있는 친구들이 모두 저널리즘 스쿨 참여자예요.(웃음)
실제로, 인터뷰가 진행된 둠벙에는 어느새 청년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옥천 저널리즘 스쿨은 커리큘럼이 없는 실습 중심인 만큼, 날이 따듯해질 때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날이 차가워지는 11월 즈음이 되면 조금씩 줄어든다고 합니다. 인터뷰가 진행된 4월 말, 10명의 인턴(참여자)이 있었으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 상상이 됩니다. 내륙의 작은 도시에 꾸준히 10명 정도의 외지 청년들이 활동을 한다니. 참 신기하면서도 반갑네요.
‘옥뮤다 삼각지대’, 들어보셨어요? 택배가 옥천HUB에서 나오지 않는다라고 붙여진 이름이에요.(웃음) 옥천에 대한통운의 택배 분류 센터가 있거든요. 옥천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모습은 사실상 그게 전부인 것이죠. 이러한 옥천의 이미지를 바꾸고도 싶고, 위트 있게 이용해서 풀어내고 싶기도 해요. 진짜 옥천을 알리고 싶은 게 핵심인 것 같아요.
외지인인 제가 경험한 옥천은 텃세가 없는 곳이에요. 옥뮤다 삼각지대 외에는 인지도가 없는 소도시지만, 언제나 외부에서 오는 손님을 반기는 문화가 있어요. 소위 시골의 텃세가 없는 거죠. 탄탄한 시민사회 인프라나 네트워크도 큰 이유라고 생각돼요.
예전에 일본 농촌 탐방을 떠난 적이 있어요. 로컬 지향의 시대라는 책에 나온 가미야마 마을을 보고 싶어서 갔죠. 가서 보니, 가미야마 마을이 시코쿠의 오헨로 순례길*에 포함되어 있는 마을이더군요. 원체 순례길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시코쿠는 외지인을 환대하는 문화가 있다고 해요. 이러한 환대 문화가 가미야마 마을에 청년들을 불러 모은 것이죠. 옥천을 왔을 때 똑같은 느낌이었어요. 외지인인 저를 따뜻하게 반겨주는 느낌이요.
*오헨로 순례길은 시코쿠 섬의 88개 사찰을 순례하는 코스이다. 시코쿠의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은 1,200km에 달한다.
14명의 고래실 직원 중에 옥천 태생은 단 3명에 불과해요. 편집장님도 구미 출신이고, 다른 취재기자도 대전, 평택, 양산, 전주. 디자이너도 청주, 대전. 이렇게 세어보니 참 재밌네요. 14명 중 3명이면 약 20% 정도잖아요. 지역 기업 중 이런 비율을 갖고 있는 기업은 흔치 않을걸요?(웃음)
옥천에서는 가능한 거죠. 옥천 저널리즘 스쿨을 말씀드렸는데, 커리큘럼이 없이 바로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것도 바로 텃세가 없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고래실이나 옥천FM, 옥천신문 등 저희 공동체의 인턴 기자 명함만으로 주민들이 친근하게 대해주시죠. 저희를 매개로 쉽게 장벽이 무너지는 거예요. 이것이 옥천의 힘이자 매력인 것 같아요.
올해 초에는 옥천의 미디어 공동체가 MOU를 맺기도 했어요. 그동안도 협업과 소통을 꾸준히 진행해왔지만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해서 다양한 일을 해나가려고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 ‘서울에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가 있다면, 옥천에는 로컬 미디어 시티가 있다!’(웃음) 방송 콘텐츠를 배우고 싶고 꿈꾸는 사람들이 DMC로 몰리는 것처럼, 로컬 미디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옥천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정작, 대전에서 살고 있어요. 전세가 너무 없어서 이사를 못 오고 있거든요.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죠.(웃음) 2020년부터 옥천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직도 못 구했어요. 월세는 계속 있지만, 전세에서 월세로 바꾸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저희 직원 중 반은 대전에서 출퇴근을 해요. 그래서 전세가 한 번 떴다 그러면 눈치싸움이죠. 매번 졌습니다.(웃음) 이제는 전세가가 더 오를 것 같아 걱정이에요. 옥천과 대전을 잇는 광역철도가 확정되었거든요. 저희 회사에서도 셰어하우스를 준비 중이거든요. 원래는 옥천역에서 가까운 주택을 매입하려고 했는데, 옥천-대전 간 광역철도가 확정 나자마자 계약이 파기됐어요. 기대 가격이 높아진 거죠.
이미 옥천은 베드타운화(bed town)가 진행되고 있어요. 잠은 옥천에서 자고 일은 대전에서 하는 경우죠. 저처럼 그 반대도 많지만요. 그러면서 대전 옥천 통합론이 힘을 받고 있는 거죠. 통합론은 매 선거 때마다 나오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메가시티(mega city)*라고 해서 더 들썩이는 것 같고요.
*메가시티는 수도권 편중과 지역 불균형의 해결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월 19일, 메가시티 발전을 위한 국내 최초의 특별지방자치단체인 부울경 특별 연합이 출범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옥천의 문화기획자로서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어요. 옥천만의 문화가 있는데, 대전이라는 큰 도시와 통합되면 그 매력을 잃어버릴 수 있거든요. 옥천 주민분들은 지가 상승 등의 금전적 이익을 기대하시는 것 같긴 하지만 전 그 부분도 회의적이에요. 옥천의 대청댐은 충청권의 식수로 활용하는 인프라예요. 이 때문에 옥천은 많은 지역이 상수원 보호구역이죠. 개발 제한으로 산업이 생길 수는 없으니, 옥천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기는 어려워요. 만약, 도시 통합이 진행된다면, 이런 사례가 옥천 전체로 퍼지게 될 수도 있어요. 옥천의 면적은 대전과 거의 비슷하지만 대전은 150만 명이 사는 반면 옥천은 5만밖에 살지 않아요. ‘땅은 넓은데, 인구수가 적다.’ 그만큼 표 수가 적으니 대전이라는 큰 도시에서 기피되는 시설이 옥천으로 집중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어요. 물론, 이것은 단편적인 사례이고 그 외에도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하겠죠. 행정적인 생각 말고 거주하는 사람, 또 향후에 거주하고 싶은 사람의 시선으로 지역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어요. 저처럼 여기서 일하고 살아가고 싶은데, 정작 살지 못하는 지금이 참 아이러니하잖아요.
상윤님은 자신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고 일할 때 즐거운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고 해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택하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인데, 놓치고 있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도 그러하다면 사라지고 있는 소도시도 그러한 것 아닐까요. 그 지역 다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지역을 위한 길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상윤님이 던져준 의문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요. 도시통합, 메가시티가 지방을 살리기 위한 정답이 맞을까? 로컬지향자, 탐방러와 함께 고민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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