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 | 허성범(라또래요)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Interview | 라또래요 허성범님과의 인터뷰
뜨거운 태양 아래 맛보는 아이스크림 한 입. 상상만 해도 시원하지 않나요? 탐방이 여름을 제대로 느끼는 방법이에요. <여름방학>을 맞아 탐방은 더위를 잊게 해 줄 만큼 맛있다는 아이스크림을 찾았습니다. 작은 가게 앞, 사람들이 북적이네요. 감자, 쑥? 무슨 맛일지 상상이 안 되는 메뉴가 적혀있어요. 용기를 갖고 주문했습니다.
“젤라또 나왔습니다!” 파란 앞치마를 입고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는 오늘의 탐방러, 성범님입니다.
여기, 속초에서 태어났어요. 학창 시절도 속초에서 보냈고, 이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서 살게 되었죠. 남들과 똑같이 도시 생활을 꿈꾸며 상경했지만,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케이스랄까요.(웃음) 서울에서 달리기 관련된 회사를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해외의 달리기 대회에 참관하러 해외로 나갈 일이 많아졌죠. 일반 달리기 대회도 있지만, ‘트레일 러닝’이라는 자연 속을 달리는 대회가 참 많아요. 몽블랑 산맥이나 스웨덴 같이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가게 되었죠. 참 좋고 멋지다고만 여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어? 우리 동네에도 있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다, 호수, 산. 모두 내 고향 속초에 있는 것이고 또 해외 어느 곳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죠. 사실, 속초에 살 때는 산이나 바다에 대한 감흥이 없었거든요. 오히려 해외에 가서 보니까 확 깨닫게 된 거죠. 서울에서 일상을 살아가는데, “왜 나는 서울에서 이렇게 전쟁을 치르고 살고 있지?” 싶더라고요. 속초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엄청난 뜻을 가지고 돌아왔다기보단, 서울 생활에 지쳤다는 게 맞을 거예요. 달리기도 정말 하고 싶고 꿈꾸던 일이었어요. 그런데 좋아하는 것과 일은 별개더라고요. 쉽게 말해,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이지, 이걸 제공하는 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달까요? 그러던 와중에 친한 친구가 고향 속초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건 두려운 일이죠. 하지만 저한테 이곳은 고향이고, 친구와 가족이 있는 곳이니까요. 도전이지만 어떻게 보면 또 엄청난 도전은 아니었죠.
다만, 속초에는 제가 들어갈 회사가 많지 않잖아요. 일을 해야 되는데 어떤 게 좋을까 고민했고 내가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가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가게는 제가 해외에서 느꼈던 속초의 가치를 드러내는 곳이었으면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요식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제과제빵을 배우고 빵집에서 일하면서 가게 아이템을 찾았어요. 아이스크림, 젤라또죠. 통상적으로 젤라또를 만드는 기술은 이탈리아에서 정식으로 배워온다고 알고 있어요. 근데, 저는 레시피를 유튜브와 인터넷으로 찾아보면서 계속 테스트를 했어요.(웃음) 주먹구구식으로 레시피를 따라 하고 변형해보고, 맛을 보고. 그렇게 저만의 젤라또. ‘라또래요’ 레시피가 만들어진 거죠.
그렇게 성범님은 2018년 어린이날, 라또래요를 열었어요. 라또래요. 젤라또의 ‘라또’와 강원도 사투리 ‘~드래요’의 ‘래요’를 합친 이름이죠. 이름에서부터 로컬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나요? 해외에서 느낀 고향, 속초의 가치를 표현하겠다는 성범님의 의지가 담겼죠. 이름만이 아니에요. 라또래요의 독특한 메뉴에서도 느낄 수 있어요. 강원도 하면 감자 아니겠어요? 라또래요의 시그니처는 감자입니다. 감자 젤라또라니.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싶지만, 수많은 피드백과 수정을 통해서 만든 가장 대중적인 맛이라고 합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맛있고 인기 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범님은 가장 먼저 원재료를 꼽았어요. 라또래요의 주재료는 강원도에서 공수해요.(일부 타 지역 재료도 있습니다) 사실, 성범님. 아이스크림보다 속초와 강원도에서 나는 작물을 활용하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고 하네요.
빵집에서 제빵을 하면서 재료에 대한 아쉬움이 컸어요. 예를 들어 딸기 빵이라고 하면, 제빵사가 빵은 정말 열심히 만드는데 딸기는 그냥 퓨레나 냉동제품을 사용하더라고요. 그때 또 해외의 기억이 떠올랐죠. 관광을 하러 가면 전 그 지역에서 난 재료로 만든 디저트에 더 관심이 갔거든요. 실제로 그런 제품이 더 유명했고요. “왜 여기서는 그게 안되지? 왜 안 하는 거지?” 고민이 시작되었고 주변을 수소문하기 시작했어요.
운도 좋았던 것 같아요. 실제 농사를 짓는 농부님들이 연결되었죠. 물론, 처음에 그분들이 뭘 믿고 제게 납품을 해주시겠어요. 납품 이야기보다 우선 유대관계를 쌓았죠. 제 고향이 속초라는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여기 사람이고 어떤 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관심을 가져주시는 거죠.
당시만 해도 제가 어떤 구상을 하고 농부님들을 찾아뵌 건 아니었거든요. 디저트는 과일이라는 재료가 중요한데, 강원도에 재료가 있다니까 찾아간 거죠. 자주 만나서 얘기하니 농부님과 친해질 뿐만 아니라, 재료에 대한 이해도 더 높아졌던 것 같아요. 제가 재배한 건 아니지만 재료에 대한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강릉의 블루베리 농장도 한참 갔는데, 당시 농부님이 블루베리를 키우신 지 얼마 안 되셨을 때였어요. 그러다 보니 같이 나눌 대화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 속에서 저도 함께 블루베리가 자라는 걸 배우게 되고, 농부님도 본인이 키운 블루베리로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는 것을 재밌어하셨고요.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고 유지해 가는 것이 참 재미있어요.
재료를 찾아다니다 보니, 토박이인 저조차 생산되는지 몰랐던 재료들도 많았죠.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강원도 과일이 유명하진 않았거든요. 근데, 기후가 많이 변해서 주변에서 과일을 많이 재배하시더라고요. 대표적으로 딸기. 속초에 딸기가 생산된다고 하면 잘 안 믿으세요.(웃음)
또, 정말 아예 몰랐던 과일을 알아가기도 해요. 원주에서 미숫가루를 납품해주는 대표님이 소개를 해주신 ‘토종 다래’라는 과일이에요. 저희가 잘 알고 있는 참다래가 키위잖아요. 근데 알고 보니 참다래가 토종 다래라는 과일을 개량한 거더라고요. 그래서 생긴 것도 맛도, 비슷하지만 좀 달라요. 키위는 신맛이 있는데, 토종 다래는 산미가 적고 독특한 향이 있어요.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정말 인상적이었죠. 결국, 라또래요의 메뉴로 자리 잡았죠. 토종 다래가 8월 말에서 9월 초에 재배되어서 그때 재료를 가져와 후숙을 하고, 보통 10월부터 판매를 하죠.
라또래요의 메뉴는 고정되어있지 않아요. 아이스크림의 원재료. 과일에는 제철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손님들이 불만을 가지시는 경우도 있죠. ‘이 메뉴 보고 왔는데 왜 없냐’고 하시기도 하고 겨울에 자두를 찾으시는 분도 있죠. 하지만 계절에 따라,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제맛이 있다고 생각해요.
감자는 저장이 용이한 재료라서 항상 있는 시그니처 메뉴죠. 하지만 시기별로 그 맛이 달라요. 레시피는 일정하지만 재료의 맛이 다르니까요. 지금은 햇감자를 쓰지만, 연초에는 감자를 재배하는 씨감자가 나오거든요. 그때는 씨감자로 만드는데, 사실 저는 그 감자 젤라또가 가장 맛있어요.
곧 강릉의 블루베리가 나올 텐데요. 생블루베리로 만든 젤라또는 꼭 드셔야 할 메뉴예요. 수확기간이 한 달 정도 되는데, 이후엔 저희도 냉동해서 사용을 하거든요. 아무래도 생블루베리와 맛이 좀 달라요. 그냥 드셨을 때는 모르지만, 생블루베리로 만든 젤라또를 드신 분은 그 차이를 아시죠.
앞으로도 속초와 강원도의 신선한 재료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젤라또를 만들 거예요.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제가 여행객으로 다른 나라와 지역을 갔을 때를 기억하면서요. 그게 속초만의 가치를 더 제대로 알고, 표현하는 길인 것 같거든요.
우리는 익숙한 공간, 사람, 물건의 가치를 놓쳐버리곤 해요.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순간 불쑥,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주변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해외에서 고향, 속초의 가치를 발견한 성범님처럼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떠나는 여행지도, 누군가에겐 일상의 공간이잖아요.
오늘 하루, 여행자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익숙함에 가려졌던 놀라움을 발견할 거예요.
<여름방학> 특집, 성범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과 리뷰로 나누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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