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 | 김나훔(오어즈)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Interview | 오어즈 김나훔님과의 인터뷰
탐방이 속초, 강릉으로 떠난다는 소식에 많은 분들이 장소를 추천해 주셨어요. 그런데 유독 한 곳이 겹치네요. 강릉의 오어즈. 소품샵, 갤러리, 화실, 내추럴 와인샵… 같은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각자 다르게 소개하더군요. 하지만 한목소리로 외친 것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아주 예쁘고 섬세한 곳. 기대와 궁금증을 가지고 강릉으로 향했습니다.
주소를 찍고 찾아간 곳은 관광지와 거리가 먼 길이었어요. 나지막한 상가들이 자리 잡고 있고, 길가엔 어린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이런 분위기인데다가 2층에 위치한 가게를 찾아온다니?! 궁금증과 의아함이 더 커져갈 무렵, 오어즈의 주인장이자 오늘의 탐방러, 나훔님이 인사를 건네네요.
탐방) 원래 강릉 분이세요?
나훔) 아니에요.
탐방) 부부가 함께 내려오신 거구나. 멋져요!
나훔) 그것도 아니에요.
탐방) …
함께 내려왔으면 더 멋있었겠지만 아니에요.(웃음) 결혼을 하기 전, 저부터 내려왔죠. 저희는 서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스타일이에요. 억지로 서로에게 강요하지 말자는 생각을 가졌죠. 오롯이 혼자만의 판단으로 강릉에 오게 되었어요. 사실 처음도 아니었어요. 강릉에 오기 전, 베를린에서 1년간 홀로 살기도 했거든요. 그때도 와이프는 저를 기다린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즐겁게 살아갔을 뿐이래요. 어떤 커플인지 아시겠죠?(웃음)
처음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동물처럼 햇빛에 옷 통을 벗고 벌판에 누워 있는 게 큰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도 점점 변하고 있더라고요. ‘사람도 동물이지’ 이런 생각도 들고요. 똑같은 동물인데 왜 우리는 그렇게 사는 걸 원시적인 걸로만 생각하고 거부했을까 싶더라고요. 제가 서울에 살 때 반지하에서 살았고 주로 지하철만 탔거든요. 어둠 속에서만 살았죠.(웃음) 그러니까 하늘을 보며 살고 싶은 거예요.
가족들을 만나러, 잠깐 한국에 들어온 적이 있어요. 그때 어머니가 강릉으로 이사를 오신 상태였죠. 어머니가 여기 계시니까 강릉을 둘러보게 되었어요. 경포 호수를 천천히 도는데 갑자기 이 모든 풍경이 유럽에 전혀 뒤처지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반짝이는 호수가 천천히, 슬로모션처럼 보였죠. 여기가 내가 진짜 있어야 할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그 순간 딱 든 거예요. “바로, 짐을 싸서 와야겠다, 여기로.” 이렇게 된 거죠.(웃음) 그리고 한 반년 후 한국에 돌아왔죠.
하루는 아침 잠결에 파도 소리가 들리기도 했어요. 베를린이 대륙의 중간이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어리둥절해하며 일어났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행기 소리라는 걸 깨달았죠. 갑자기 바다가 사무치게 그립더라고요. 바다에 가고 싶었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속초에서 자랐거든요. 알게 모르게 향수가 있었나 봐요. 그 후로는 ‘무조건 한국에 돌아가면 바다 앞에서 며칠이건 자볼래. 일어났을 때 파도 소리가 들리는 그 느낌을 꼭 한번 느끼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간절하게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강원도 고성, 바다 코앞에 있는 펜션에서 한 달 살이를 시작했어요. 근데 한 달 살아보니까 확실히 바다 코앞에 사는 건 아니더군요. 하루 24시간 파도 소리가 들리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에요.(웃음) 습해서 빨래도 잘 마르지 않고, 밤에는 불꽃놀이를 하는 사람들로 시끄럽고. ‘바다 코앞은 안 되겠구나’를 깨닫고 강릉 도심으로 집을 알아봤어요. 그렇게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아파트를 구해 살면서 조금조금씩 강릉에 스며들었죠.
제가 19년도에 강릉으로 왔고 20년도쯤에는 서울과 강릉을 왔다 갔다 했어요.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가 서울에 살고 있으니까 저도 자주 왔다 갔다 했던 거죠. 그러다가 결혼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둘이 외국에서 살아볼 생각이었거든요. 베를린에 있어보니까 인생이 정착이라는 것도 없고 크게 보면 다 여행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내와도 같이 그런 걸 느껴보고 싶었달까요? 그런데 그때 코로나가 딱 터졌죠. 자연스럽게 해외로는 못 나가게 된 거죠.
이렇게 된 김에, ‘강릉에 와서 살면 어떨까?’ 아내에게 제안을 했어요. 아내는 서울도 충분히 좋다고 답했죠. 하지만 조금씩 강릉을 오가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아내도 천천히 스며들었어요. 결국 아내도 강릉으로 이사를 왔고 오어즈도 꾸리게 되었죠. 아내가 평소 좋아하던 디자이너나 기획자 같은 분들이 강릉에 놀러 오고 또, 오어즈에 방문하면서 새로운 인연도 많이 생겼어요. 그 인연이 일로도 연결되고요. 서울에 있을 때보다 사람들과의 교류가 더 다양하고 많아졌죠. 아내의 개인 커리어도 쌓여가고. 이제, 아내가 더 만족하는 것 같아요.(웃음)
원래는 그림을 보관할 창고가 필요했어요. 그림들이 많은데, 집이 좁아서 그림을 둘 곳이 없었거든요. 와이프와 산책을 하다가 이곳이 싸게 임대가 난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림 보관할 창고를 찾았던 것인데, 막상 오니 너무 넓더라고요. 더워서 냉난방기를 들여놓고, 나름 큰 금액의 물건을 들이고 나니 작은 부수익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오게 된 것 같아요.(웃음)
사실 예전부터 갤러리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베를린이나 도쿄, 여행을 하면서 그런 장소를 꽤 자주 접했거든요. 아주 작은 갤러리인데, 백발의 할머니가 운영을 한다거나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편하게 방문을 하는 그런 공간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편하게 들렀으면 좋겠다는 소소한 생각으로 오어즈의 문을 열었죠.
기대가 없기는 했지만 실제로 반응이 없으니까 좀 힘들기도 했어요. 하루 동안 손님 한 분, 심지어 아무것도 팔리지 않는 날도 있었고요.(웃음) 그래도 저희는 둘이서만 하는 거고, 월세도 싸고 직원을 고용한 것도 아니니까 괜찮았어요. 지역에 와서 하는 게 그런 부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투자를 과하게 해서 그만큼 거둬들여야 한다는 압박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니까요. 이름도 오어즈(oars)잖아요. 조정 경기나 노를 저을 때 “오어즈”라고 말을 하면 노를 올려라, 그만 저어라. 다시 말해, 노의 수평을 유지하라는 거예요. 물결에 몸을 맡기듯, 너무 급하게 노만 젓지 말자는 뜻인 거죠.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삶을 천천히라도 가자.’라는 생각이죠.
그래도 이제는 오어즈를 알고 오시는 분들이 늘어난 것 같아요. 강릉에서 부부가 직접 생산한 것을 보여주고 판매하는 걸 흥미로워하는 것 같아요. 아내는 그래픽 디자이너이고 저는 그림 그리는 작가죠. 오어즈의 그림, 사진, 아트웍은 모두 제가 작업한 거예요. 아내는 오어즈의 인테리어, 패키지, 브랜딩을 전체적으로 잡아주고요. 그 안에서 제가 재밌게 놀고 있죠.
오어즈에 제가 원하는 만큼, 그림을 다 꺼내놓지는 못해요. 어느 정도는 오어즈와 결이 맞아야 되니까요. 사실 저는 꽤 그로테스크(grotesque)하고 사회적인 그림도 많이 그리거든요. 아내한테 물어보죠. “이건 안 되겠지?” 그럼, 아내가 “안 되지. 다른 데 가서 해.”(웃음) 그렇게 오어즈는 우리 부부의, 서로의 교집합을 모아놓은 느낌이에요. 저희한테도 의미가 있고 대중들도 그걸 보면서 뭔가 반응하는 게 신기하고. 그런 부분에서 용기를 많이 얻고 있어요.
오어즈에 오는 분들은 자연이나 강릉다움에 대한 기대를 갖고 계세요. 저도 영향을 받죠. 자연스럽게 그림의 주제가 자연을 다루는 것이 많아졌어요. 서울에 살 때는 날이 서 있고, 의문을 던지는 그림이 많았었는데, 여기 와서는 좀 더 부드러워졌어요. 그런데 그게 강릉이라는 지역 탓인지는 모르겠어요. 나이 탓인지, 헷갈리기도 해요. 그래서 그림의 주제나 방향에 대한 고민을 아내와 나누고 있죠. 우리가 진정성을 갖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어즈라는 공간을 운영하는 것도, 제 작업에서도요.
강릉에서 무조건 뿌리내려야 된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흘러가듯이 살아갈 거라는 얘기도 하죠. 물론, 지금은 강릉에 대만족을 하고 있어서 이동에 대한 큰 생각은 없지만요. 아내와 늘 이야기해요. “어떤 모험이 있다면, 과감하게 쏘자.” 강릉에서 살아가며 경험하고 느낀 것 같아요.
아내는 좀 더 현실적인 사람이거든요. 저는 원래 저지르고 수습을 하는 데 애먹는 스타일이고요. 아내도 강릉에 와서 느낀 것 같아요. ‘저질러도 되는구나. 두려움이라 해봤자 우리가 생각하는 범주 이상은 일어나지 않는구나.’ 오어즈의 주체는 ‘배’잖아요. ‘쉽게 뒤집어지지 않는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라는 메시지도 있는 거죠.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지금 강릉이 저희한테 적합한 장소고 더 해보고 싶은, 항해가 많은 곳이에요. 설렘이 많이 있는 도시죠.
아내와 저는 상상을 많이 해요.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한 상상이랄까요. 아직 강릉에는 저희가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는 곳들이 많아요. 노후된 곳이나 아직 주목받지 못한 장소, 강릉에 없는 것들이요. 우리 둘이 무언가를 시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현실은 한참 멀었지만, 상상 속에서는 건물주라니까요.(웃음) 서울에 있었을 때는 이런 상상을 못 했던 것 같아요. 당장 해결해야 할 일상의 문제와 고민들이 가득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상상할 여지가 있다.’ 이게 참 중요한 포인트예요.
나훔님을 만나고 오어즈의 계단을 내려오며 생각했어요. ‘오어즈는 나훔님 부부 그 자체구나.’ 탐방이 들었던 오어즈에 대한 제각각의 소개도 그런 것 같아요. 소품샵이든, 갤러리이든 중요하지 않았던 거죠. 나훔님 부부가 만들어낸 색, 공간, 분위기. 그러니까 오어즈의 주인장, 나훔님과 아내분이 오어즈였던 거예요. 이 부부의 또 다른 상상이 실현되길 바라봅니다. 그러기 위해서,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나훔님이 원하는 삶을 살길. 우리 모두 오어즈(O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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