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 | 최소연(슬로우슬로우담담)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Interview | 슬로우슬로우담담 최소연님과의 인터뷰
어렸을 적, 찬장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엄마는 왜 잘 쓰지도 않는 그릇들을 모아둘까?’ 그런데 요즘, 예쁜 그릇과 잔을 하나씩 사 모으는 저를 발견해요. 그날의 기분, 분위기, 음식에 딱 맞는 그릇을 사용할 때, 스스로를 소중하게 대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얼마 전부터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대요. 예쁜 그릇보다 직접 빗은 그릇은 또 다른 차원이라며 자랑을 하네요.
친구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나에게 이런 기쁨, 행복, 위로, 안도를 주는 그릇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어떤 생각으로 그릇을 빚을까. 도자기를 빚는 사람이 궁금해졌어요. 그렇게 여름방학의 마지막 주인공, 소연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학까지 강릉에서 나왔어요. 고향이죠. 도예를 전공하면서 흙을 만지는 재미를 알게 된 것 같아요. 더 배우고 싶었죠. 자유롭게 작업을 해왔지만 도예의 기법, 스킬을 배우기에 급급했지 뭔가 나만의 것을 만드는 방법을 깨우치지 못한 느낌이었어요.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로 갔죠.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서울의 삭막함을 제대로 느낀 시간이면서 나만의 것을 찾는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아이러니하죠.(웃음)
환경부터 달랐죠. 서울에는 건물이 수두룩 빽빽하잖아요. 그리고 지하철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요. 사람이 많은 만큼 이슈도 많죠. 저한테는 너무 피로하더군요. 제가 강릉에서도 시골 같은 곳에 살았었거든요. 뻥 뚫린 바다, 호수가 있는 경포, 강릉에도 별로 없는 논이 쭉 펼쳐진 포남동이요.
물론, 처음에는 너무 좋았어요. 서울에는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보고 싶은 전시를 마음껏 보고, 영감 받을 게 천지였죠. 그런데 뭐랄까. 너무 자극적이다 보니까 쉽게 지쳤다고 해야 될까요? 피로하더라고요. 그때마다 엄마 아빠나 보자는 생각으로 강릉에 가면 가슴이 뻥 뚫렸어요. 아무래도 제 고향이니까 그렇겠죠. 그리고 ‘예전에는 참 재미없던 도시라고 생각했었는데, 서울에 있다가 내려오면 여기가 왜 이렇게 좋을까’하며 비교를 하기 시작했어요.
서울의 카페는 도시 뷰지만 여기는 자연이죠. 카페 안의 테이블 간격도 그래요. 서울에선 사람도 많기도 하고, 임대료가 비싸다 보니 많이 팔아야 하잖아요.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죠. 하지만 강릉에서는 벙벙해요.(웃음) 이런 시각적인 것 말고도 소리의 밀도도 낮아요. 사람 소리, 차 소리. 일명, 도시 소리가 작아요. 그러다 보니 바다, 바람,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거죠. 이렇게 밀도에서 해소되다 보니 강릉에 오면 좋은 것 같더라고요. 내가 느꼈던 것들이 가치 있고 더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죠.
작업도 영향을 받았어요. 서울에서는 영감과 자극이 넘쳤지만 내 몸에 맞는 옷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방향을 잃을까 봐 두렵기도 했고요. 그때부터 제 경험을 되짚어보기 시작했어요. 학교 언니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특별한 경험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학교 끝나고 밭을 돌아다닌다든지, 돌에다 꽃을 찧어서 소꿉놀이를 한다거나 바닷가에서 놀았던 그런 일상적인 기억들이 흔하지 않았던 거예요. 이게 지역색이자 저만의 색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렇게 계속 작업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소재를 찾으면서 작업을 해오고 있어요.
휴학을 하고 강릉에 내려오니, 작업할 공간이 없었어요. 그렇게 16년도쯤 첫 작업실인 ‘담담’을 만들게 되었죠. 자동차에 이름을 붙이기도 하잖아요. 저만의 첫 번째 공간이다 보니 꼭 이름을 붙이고 싶었어요. 제가 성격이 차분하지 못하고 늘 급했었는데 흙을 빚으면서 차분해졌거든요. 그리고 제가 경험한 흙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은 분에게 알리고 싶었죠. 그래서 담담의 도예 클래스가 시작됐어요. 이후에 도예의 느림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 ‘슬로우슬로우 담담’으로 리브랜딩을 했고요. 스포츠 댄스에서 ‘슬로우슬로우 퀵퀵-’이라는 용어가 있잖아요. 거기에서 따왔어요. 도자는 차분하고 빠름이 없이 느리고 여유롭죠. 슬로우슬로우 뒤에도 더욱 담담한 것. 제가 생각하는 도예예요.
작년에 더 큰 공간을 찾아 이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전에는 제품을 만들기보다 수업 위주로 운영했어요. 당시 휴학 중이었기에 용돈을 벌며 도예의 즐거움을 알리는데 집중했거든요. 그러다 복학을 하면서 작업실과 학업을 병행하게 되었죠. 강릉과 서울을 오가면서요.(웃음) 다시금 제 작업에 집중하면서 작업 철학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죠. 제가 있는 곳, 강릉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작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이 잔은 포그 머그(Fog mug), 일명 안개 잔이죠. 친구와 바다에 앉아있었는데 멀리 해무가 보이더라고요. ‘안개가 오는구나’ 싶었는데 순식간에 해무가 저희를 덮었어요. 어렸을 때는 그런 압도적인 인상이 없었는데, 저 멀리 있었던 안개가 갑자기 덮치니까 무섭더라고요.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경험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그 경험을 흙으로 빚고 싶었어요. 안개를 표현하기 위해, 하얀색 결정을 피울 수 있는 유약을 만들어 작업했어요.
물건을 만들어 나가면서 상품성이 있는 제품과 작업성이 있는 작품, 두 가지를 함께 전개해가고 있어요. 슬로우슬로우담담이 시작부터 확실한 개념을 세운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이죠. 제가 경험하고 활동하면서 정리해가는 와중 같아요. 저는 이제 평생 흙을 만질 건데, 그렇게 따지면 지금은 완전 새싹 같은 상태잖아요. 저라는 나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그런 걸 생각하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마음잔 시리즈는 작품에 속해요. 사람의 마음은 모두 다르게 생겼잖아요. 텍스처도 다르고 형태도 다르죠. 우리의 마음의 크기나 모양이 다른 걸 이야기하면서 ‘그럼, 내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면서 만들었어요. 그릇이라는 게 크든 작든 쓰임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흔히 마음이 좁은 사람은 대개 부정적인 이미지고 넓은 사람은 좀 더 좋은 이미지이긴 한데, 그릇은 기능이 다를 뿐이죠. 또, 잔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를 담아 마시게 되잖아요. 마음잔을 통해 위로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고 마음잔 시리즈를 데려가신 분이 있었어요. 알고 보니 그분이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이셨더라고요. 나중에 마음잔에 좋아하는 차를 드실 때마다 큰 위로가 되었다고 전해주셨어요. 제 생각대로, 정말 사람들에게 위로가 전해진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저만의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죠.
반면에, 감자잔은 대중성이 높은 제품이죠. 슬로우슬로우담담에서 남녀노소 좋아하는 상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강원도 사람들은 어렸을 때 타지의 친구들에게 ‘감자’라고 놀림당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어요. 강릉도 지금처럼 교통이나 인프라가 좋지 않았으니 그 친구들에게는 시골 중에 시골로 느껴졌겠죠. 그랬던 친구들이 지금은 강릉에서 한 달 살이를 하고 여행을 오고 싶어 하죠. “하, 참나- 그렇게 놀릴 땐 언제고!”(웃음) 이런 재미있는 경험을 담고 있어요. 유머러스하게요. 흙투성이에 못생긴 감자가 흙을 털고 나니,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죠. 그래서 더 반짝반짝하게 만들었어요. 무광이면 더 감자 같았겠지만, 더 빛나고 예쁜 감자를 표현하고 싶어서요.
긴 대화를 마치고, 쇼룸에 있는 그릇들을 다시 보았어요. 이상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참 포근했어요. 소연님의 경험과 생각이 더해졌기 때문이겠죠. 아무래도 집 안에 잔이 하나 더 생길 것 같아요. 느림과 담담함이 필요할 때, 강릉의 여름방학을 떠올리고 싶을 때, 그 잔을 꺼내려고요.
<여름방학> 특집, 소연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과 리뷰로 나누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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