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북 #07 오느른 | 최별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탐방 북 #07 오느른 | 최별
올해 초 “4500만원짜리 폐가를 샀습니다”라는 영상을 시작으로 오느른 유튜브를 구독했습니다. 지난 7월 이후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 되지 않지만 2년 간의 기록은 여전히 유튜브에 남아있습니다. 제 기억에서 오느른이 흐릿해질 무렵, 강화도 독립서점에 갔다가 ‘오느른’ 책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구매했죠. 책을 산 이유요? 특별하진 않아요. 속지가 그대로 노출된 실제본의 느낌이 참 예뻤기 때문이에요.
어떤 이들은 ‘4500만원’, ‘빈집’이라는 키워드에 폐가를 잘 고르거나 집을 수선하는 귀농귀촌 노하우를 기대했을 수 있겠지만, 그런 내용들은 정말 단 하나도 없습니다. 대신 갓 30대에 접어든 한 서울 청년이 김제 평야가 보이는 시골 집을 충동 구매하면서 생기는 잔잔한 이야기를 담았죠. 오늘은 그중에서도 참 공감되었던 몇 얘기를 전해볼까 해요.
첫 번째 공감은 날씨였어요. 서울에서는 날씨 정보를 그리 유심히 보지 않아요. 핸드폰 배경화면 상단에 늘 날씨가 표시되지만 현관을 나설 때 비가 오면 우산을, 추우면 자켓을 꺼내 입을 뿐이죠. 잠깐의 날씨를 견디면 다시 건물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일까요?
반면 자연으로 떠날 땐 일주일 전부터 날씨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곤 시골에 계신 농사부님에게 전화해 날씨가 어떨 것 같은지 한 번 더 물어봅니다. 우산이나 옷차림을 신경 쓰기 위함이지만, 겸사겸사 농부님에게 안부를 물을 때 날씨 만한 것이 없거든요. 탐방에 몸을 담으며 생긴 변화랄까요? 제가 일상에서 느낀 것들이 책에 나오니 참 반가웠어요.
"매일 날씨가 달라요 계절도 매일 다르죠. 그러니까 기분도 매일 다를 수밖에요.
일상이 반복되는 도시에서는 이상하게 그 날의 날씨가 기억나지 않아요. 계절도 뚜렷하지 않아요."
- 오느른 67p 중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사실 TV도 그렇지만 OTT나 유튜브를 두루 섭렵하며 굉장한 피곤을 느끼고 있거든요. 콘텐츠가 너무 많다 보니까 뭘 봐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좋은 콘텐츠를 찾기 위해 검색하는데 또 그 만큼의 시간을 쓰죠.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하이라이트만 빨리빨리 보는 습관이 생겨버렸고요. 누가 옆에 있는 것도 아닌데 경쟁하듯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2시간 짜리 영화를 가만히 볼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예요. 작가가 말하듯 책 속에 어마어마한 장치는 없었지만, 적당한 여백,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쓴 것 같은 글, 감성적인 색채가 큰 영감을 줍니다. 도시의 나는 지금, 편안한 걸까요.
"아마도 이 책 안에는 어마어마한 위로나 깨달음이 없을 거거든요.
그냥, 책을 산 사람 열 명 중 한 명이라도 끝까지 보게 된다면, 그럴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만약 책을 사긴 했는데, 글은 쓸모가 없다고 느껴지면 예쁜 사진 페이지를 찢어 방에 붙여 놓기라도 하세요.
그게 훨씬 기분이 좋아질지도 몰라요."
- 오느른 85p 중
어쩌면 도시의 삶은 선택의 연속일지도 모르겠어요. 쉽게 물건을 구하고 쉽게 어디든 갈 수 있다 보니 고민할 것이 생각보다 많죠. 반대로 시골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편의점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차를 타야 하는 거리인 경우가 많아요. 새벽 배송이나 마트 배송도 기대할 수 없으니 미리미리 계획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도 시골 라이프의 꽃은 자급자족 아니겠어요? 뭐, 물론 농사에 취미가 없다면 불가능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땅을 일군다면 오래전 사람들이 그랬듯 굶진 않을 것 같아요. 해가 뜨면 자리에서 일어나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잠을 청하는 오느른의 단순한 라이프가 정겹기만 합니다.
"도시보다 선택의 폭이 좁아요.
그런데 이 환경에 매우 만족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환경 따위는 없습니다.
모든 일상은 할 수 있는 때가 정해져 있고,
그 환경에 나를 맞춰 살아가면 되는 단순한 패턴일 뿐입니다."
- 오느른 190p 중
편리한 서울 생활에 길들여지면 벗어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배움과 경험들이 도시에 맞춰져 있기에 시골에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죠. 감성적으론 떠나고 싶다가도,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결국 서울입니다.
그래서 오느른이 부러웠어요. 그 한계를 한 발짝 뛰어넘은 것만 같아서요. 서울을 놓지 않으면서도 김제 평야 속으로 잘 스며든 모습이 좋았습니다. 요즘 탐방에서 중요 키워드로 삼는 ‘관계인구’의 표본을 본 것만 같달까요. 모두가 알다시피 도시의 청년들에게 소멸되는 지역을 위해 이주하라는 것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연회비를 내고 이용하는 리조트처럼 도시-시골의 관계를 맺어주는 게 그나마 유일한 답일 것 같아요. 잠시라도 로컬의 맛을 보다 보면 여유롭고 조용한 밤, 농사의 즐거움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까요? 강화의 하니님처럼요.
"서울에서는 채광이 좋은 집을 찾다 보니, 매일 밤이 차 소리가 끊이지 않는 밤이었습니다.
때로는 집 앞이 취객으로 요란스럽고 잠결인 새벽 3시,
빈 도로를 보고 나서야 한밤중이구나 했던 그런 밤들을 보냈습니다."
- 오느른 201p 중
오느른의 뜻은 ‘오늘을 사는 어른들’이라고 합니다. 장르로 보면 어른들은 위한 다큐멘터리와 동화의 사이 그 어디쯤이죠. 끝난 줄만 알았는데 오랜만에 유튜브를 보니 “2022년 12월 24일 오느른이 찾아옵니다”라고 써있습니다. 요즘도 최별PD는 분주한 것 같아요. 김제에서 도시 청년과 로컬 청년을 모아 오후협동조합(@ohoo.coop)을 만들어 숙박 시설과 카페를 운영한다고 하네요. 아마 책과 영상에 등장한 장소들인 것 같은데, 김제에 가게 된다면 꼭 들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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