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 박한솔(탐방)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Interview | 탐방 박한솔님과의 인터뷰
탐방을 시작한 지 만 1년이 되었어요. 한 해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로컬로 먼저 떠난 이들을 만났죠. 로컬을 다룬 책과 공간을 리뷰하고, 팝업 탐방센터를 열어 탐방러들을 직접 마주하기도 했고요. 그때마다 많은 분이 탐방에 대해 궁금해하시더라고요. ‘탐방은 왜 이런 활동을 하나요? 어쩌다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탐방의 리더, 한솔님을 만났습니다. 탐방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어릴 때부터 여행을 좋아해서 많은 곳을 다녔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관광객으로서 여행을 다녔던 것 같아요. 멋진 자연경관이나 건축물처럼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에 가는 걸 즐겼거든요. 그러다 대학원 프로젝트로 강원도 철원에 방문했어요. 제가 처음으로 간 시골이었죠.(웃음) 도시가 아닌 곳으로 여행을 가보긴 했지만, 삶의 터전에 간 건 처음이었어요.
제가 방문했던 곳은 민간인 통제선 너머에 있는 민북마을이었어요. 정말 흥미롭더라고요. 공간, 풍경, 사람들. 모든 게 새로웠달까요? 동시에 제가 갖고 있던 편견들이 깨지는 걸 경험했죠.
지금까지 알고 있던 DMZ는 ‘군사, 전쟁.’ 위험하고 슬픈 공간으로만 느껴졌거든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 생각했고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거기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 안에서 특별한 문화를 유지하고 또 발전시키면서 살아왔더라고요. 당시 DMZ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누군가 DMZ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알려줬더라면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로컬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때부터 철원의 장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하는 활동이 철원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어느새 철원으로 인해 제 삶이 더 풍요로워졌음을 알게 되었죠.
철원에 자주 방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민들과 친해졌어요. 사는 곳도, 나이도 다르지만 가까운 친구들이 생겼죠. 추수 때면 쌀을 지어 보내주시고, 지금도 철원에 다녀올 때면 고구마, 파프리카 같은 농산물이 차에 가득하죠. 그렇게 철원은 저에게 익숙하면서 특별한 공간이 되었어요. 제 고향도 아니고 길게 머물던 곳이 아님에도요. 요즘 흔히 말하는 관계 인구*가 되었음을 느꼈달까요?
* 관계 인구는 타지에서 이주해온 정착 인구도, 관광 등의 교류 인구도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특정 지역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인구를 말해요.
제 관심사도 다양해졌어요. 겨울철 철원에는 두루미가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원래부터 두루미가 많았던 건 아니래요. 주민들이 두루미를 위해서 낙곡을 치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로 인해 세계가 주목하는 두루미 월동지가 된 것이죠.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동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환경에 대해서 자연스레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로컬의 힘을 알았어요. 한 지역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나의 삶을 확장하는 거라는 걸 깨달았죠.
그렇게 ‘aboutdmz; 액티브철원’이 탄생했습니다. 이후 파주, 고성까지 한솔님은 매년 DMZ를 접한 지역을 깊게 들여다보는 aboutdmz를 발행하고 있죠. 또, 철원 민북마을에서 재배한 쌀을 두루미쌀로 선보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북부지역, DMZ는 새로운 지역을 알아가고 직접 경험한 로컬의 힘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탐방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바웃디엠지’를 펴냈더니 다른 지역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북쪽 지역을 이렇게 재밌게 다룰 수 있다면 우리 지역은 더 재밌을 테니 와보라고요. 그중 가장 적극적이었던 곳이 경상남도 하동이었어요. 여행 겸 가볍게 방문했죠. 당시에는 DMZ 외에 다른 지역을 다뤄야겠다는 생각은 크게 없었거든요.(웃음)
도착했더니 봉고차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하동의 유명한 관광지를 이곳저곳 돌아봤죠. 그런데 저희 시선을 사로잡은 건 차창 밖의 풍경이었어요. 언덕마다 몽글몽글, 정말 이상한 식물들이 있더라고요. 뭐냐고 물어봤더니 차밭이라는 거예요.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알고 있던 차밭은 일렬로 쫙 펼쳐져 있는 경관이었는데 하동의 차밭은 뭉게구름 같더군요. 정말 예쁘면서 특이하더라고요.
하동에서는 어바웃디엠지처럼 지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어 했지만, 저희는 이미 차밭에 매료된 상태였죠. 그곳에 살고 계신 분들에게 차는 너무 익숙하다 보니 특별하게 여기시지 않더라고요. 훌륭한 자원이긴 하지만 보성, 제주가 더 유명하다고요.
정말 열심히 설득했어요. 서울에서 하동의 야생차를 주제로 한 팝업스토어를 열자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기는 일이죠. 일을 주겠다는데, 그것 말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떼를 쓰는 꼴이니까요.(웃음) 다행히 담당자님이 저희의 의견을 귀담아들어 주셨어요. 그렇게 지자체 최초의 팝업스토어가 탄생했죠.
하동을 그대로 담아오자는 생각으로 ‘테이크아웃 하동; 야생을 담아가세요.’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역시나 오시는 분들이 좋은 반응을 해주시더라고요. 인스타그램에 게시물도 많이 올라왔고, 팝업스토어를 보고 하동에 여행을 갔다는 분들도 있었죠. 정말 뿌듯하고 기뻤어요.
팝업스토어를 계기로 지역 주민에겐 너무 익숙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 문화가 외부인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또, 이게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에는 단순히 풍경에서 로컬 문화를 느꼈지만, 흥미를 갖고 알아가면서 하동에 오랜 시간 차를 만들고 가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화개골에만 몇백 개의 농가가 있거든요. 차인들이 만들어 낸 하동 만의 차 문화와 상품. 그 모든 것이 촘촘하게 쌓여 만들어진 게 로컬 문화더군요. 저희가 외지인의 시선으로 로컬 문화를 더 많은 이에게 전달한다면 모두에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역은 알려지고, 지역민에게는 생계에 도움이 되고, 외부인에게는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더 생기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때쯤 여기저기서 지방 소멸이라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지방 소멸을 효율적인 국토 관리 측면에서 설명하는 자료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어진다면 그 지역만의 문화가 사라지겠구나. 하동을 몰랐던 것처럼, 아직 발견해야 할 보물 같은 로컬이 가득할 텐데.’ 조급해졌달까요?(웃음)
로컬 문화가 지방 소멸의 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어떤 지역의 환경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한다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고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일에 대한 비전이 생긴 순간이었어요. 그때부터 두 팔 걷고 숨겨진 로컬 문화를 찾아 나서게 되었어요.
여러 지역을 다니다 보니 지역에서 작지만 큰 문화를 만들어가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하나같이 스스로 평범한 삶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로컬에서의 일상 이야기는 너무 특별했어요. 배울 점이 많았고 재밌기도 했죠. 또 그분들과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레 살고 있는 지역이 더 흥미로워지더라고요. 항상 헤어지고 돌아올 때면 그분들을 우리끼리만 아는 게 아쉬웠어요.
다른 지역에 친구가 생기면서 일상이 변한다는 걸 저희가 몸소 경험했잖아요. 더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로컬을 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어요. ‘이 주옥같은 로컬에서의 일상들을 전해보자. 모두에게 로컬 친구를 만들어주자.‘
탐방의 이름도 연장선이에요. ‘어떤 사실이나 소식 따위를 알아내기 위하여 사람이나 장소를 찾아감.’ 탐방이라는 단어가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탐방이라는 공간에서 사용자분도 실제로 잘 모르는 지역,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서 함께 대화하길 바랐죠.
보통 인터뷰하면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주인공이잖아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랄까요? 하지만 탐방의 주인공들은 달라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고민을 하고 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있죠.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는 분들을 만나는 거예요. 인터뷰 주인공 선정에 꽤 고심한답니다. 어른들이 항상 말씀하시잖아요.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웃음)
크게 2가지 기준이 있어요. 먼저, 로컬 문화를 만드는 사람인지 판단해요. 지역에 대해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작은 움직임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요. 그 문화는 완성형이 아닐 수도 있어요. 로컬에서 스스로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과 새로운 경험은 가치 있죠.
다음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죠. 탐방은 함께하는 커뮤니티니까요. 음지에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분들 보다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상대의 이야기도 궁금해하는 그런 분들을 만나고 있어요.
탐방은 여러 방식으로 더 다양한 지역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브랜드가 되길 바라요. ‘알고 나면 매일이 여행일 거야.’라는 탐방의 슬로건처럼, 로컬과 친밀해진다면 매일의 일상이 여행을 떠났을 때처럼 풍요로워지고 다채로워질 거라 확신하거든요.
작년의 탐방이 인터뷰를 통해 로컬 친구를 소개했다면, 올해는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게 목표예요. 더 많은 탐방러와 로컬을 함께 경험하고 싶거든요. 또, 2월부터는 매달 새로운 지역을 주제로 한 인터뷰, 리뷰, 모임 등 다양한 탐방이 시작될 거예요. 탐방이 직접 머물면서 경험한 로컬 이야기도 전해드릴 테니 기대해 주세요!
탐방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가 되셨나요? 한솔님과의 대화처럼, 탐방은 여러분과 함께 로컬을 발견하고 함께 향유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친한 로컬이 하나쯤 생겨나도록요.
로컬의 정의는 정말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마을, 누군가는 나의 위치로부터 반경 몇 km, 또 누군가는 서울이 아닌 지역이라 말하죠. 탐방이 생각하는 로컬은 ‘나와 관계 맺어진 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인 공간, 우리 동네도 로컬이 될 수 있고 저 멀리, 제주의 해변도 로컬이 될 수 있는 거죠. 올해도 탐방은 여러분에게 다양하고 멋진 로컬 친구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열린 마음만 준비해주세요.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도시를 떠나고 싶다면, 로컬로 향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탐방을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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