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념 같은 푸념

by 올랜드


기품 있고, 우아한 정신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명징하다고 명징하다고 맞추어서 말했던 생각은 실낱같은 희망에 의탁해버린 감정만 조금씩 생동하고 있으니 처량하다고 해야하겠다. 병자는 무엇인가에 기대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의미에서의 인간은 누구나 그리고 그 누군가가 되었건, 모두가 병자이다. 기대는 것이 같이 있는 그 누군가가 되기도 하고, 사상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병을 앓고, 기대는 순간 진통제처럼 약간의 해방감을 주기도 한다.


해방감은 사람을 살아보고 싶게끔 만드는데, 그게 참 어렵다.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지 않고도 그것이 모두 괜찮고 좋다고 이야기 하게끔 한다. 즉, 삶을 불러낸다. 살아있다는 것이 좋은 것이고 그렇기에 나는 너를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좋아하게끔 한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무엇이었나.


사랑한다는 것이 좋아하는 마음에 비롯되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명명한다면 확신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확신해야만 한다고 명령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믿음이 출발하고, 그렇게 이야기가 출발한다. 그러니까 일종의 해방감을 위해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불안정하지 않기 위해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합리적이고 그래야만한다는 것의 의미를 고정시키기 위하여서 불분명한 정신의 깨어있음을 위해서 각성제를 투입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정신은 본디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명명하고, 본디 없어야 하는 것들을 위해 육신을 희생하게끔 한다.


그러나 태초에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호출할 수 있는 모든 전체에 대한 요구. 아니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그냥 지금, 내가 온전하다는 것을 한 번만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확신시키기 위해 존재의 이유를 찾게 되고, 그건 언제나 슬프게도 무언가에 기대게끔 한다. 그 무언가는 무엇이었나. 양태는 다르겠다만, 이름을 지어준 사랑, 근거를 찾은 사상 그리고 육신이 강렬하게 원하는 삶에 대한 욕구이다.


나는 모르겠다. 난잡한 어떤 무엇을 가지고 내가 안다고 말하기 두렵다. 의뭉스러운 어떤 하나의 명제를 가지고 그것이 있다고 말해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허무에의 깊은 갈망이 소용돌이 칠 때면 피어나는 것이 바로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단어를 찾아보고, 그래서 일을 하고, 그래서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원하던 것이었나. 이것이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인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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