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하는 한 언제까지이고

by 올랜드

작금의 사랑은 옅어진 지 오래다.

수많은 연결은 고독을 궁핍하게 만들었고, 빛나는 도시와 늘 비치는 불빛은 눈을 멀게 해 아름답게 잉태된 그 누군가가 얼마나 빛나고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어지게 되어버렸다. 언제인가 나는 물자욱이 그리도 사랑스러웠는데, 그건 내가 느끼는 살아있음에 대한 깊은 탄복이었다.


사람은 기억과 감정으로 여백을 가꾸어나가고, 숱하게 엮어 나간다. 그리도 많은 감정과 기억 속에서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깊이 하나의 사실, 하나의 느낌이 짜릿하게 빛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그 빛은 어떤 이가 기억하는 한, 느끼는 한 끝없이 펼쳐진다. 물자욱이 사랑스러웠던 이유는 내가 그리도 사람을 좋아해서였다. 그들이 너무나도 빛나 보이는 순간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항상.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펼쳐나가는 것이 빛난다기보다야 그들이 기억하는 것이 그들이 느끼고 있는 그것이 빛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기억하고 있는 존재임에, 그래서 나 또한 감정을 겪는 존재임에 빛나고 있음을 절감하게 한다. 그래서 요컨대 내가 생각하기에 작금의 사람들은 그렇게 한순간, 딱 한순간에만 빛나는 누군가의 모습을 지독하게도 끊임없이 볼 수 있는 무자비한 능력 덕에 물자욱이 아닌 물안개처럼 변했고, 빛은 산란해 버려 옅어졌다.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 하나, 몸을 부대끼고 아프게 맺어두는 전쟁과도 같은 사랑, 초연하고도 아름다운 것이 만연해져서 더 이상 무감각해져 버린 지 모르겠다.


이쯤에서 피어나는 질문, 눈먼 자에게 잠드는 것이란 꿈으로의 초대인가 혹은 하루의 연결인가. 우리가 우리로 불리고, 사람이 사랑으로 맺어지는 그 순간이 여전하다면 우리는 선택할 수 있을 것인데 그 선택은 바로 꿈으로의 초대를 받을지 말지에 관해서이다. 초대된 자들이 얼마나 지독한 사랑을 겪을지 잘은 모르겠다만 살아있다는 감정이 끝없이 고개를 든다면 여전하게도 나는 그 지독한 것을 택할 듯하다. 그래서 감히 그들에게 찾아간 불행을 무엇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까 재단치 않으려 할 것이고, 감히 그들에게 있는 능력에 질투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들이 겪는 불행은 연민하려, 그들이 가진 능력에 깊은 탄복을 잡아둘 것이니. 나의 욕된 육신, 저렴하게 편폐한 자신의 정신을 탓할 것이고, 누군가의 처절한 삶의 몸부림에 찬사를 끝없이 보내보련다. 이것이 드디어 나를 사랑하고, 나의 태어남에 감사하는 방식이 되었다. 작금의 사랑은 옅어진 지 오래다. 그러나 나는 눈먼 자로써 희미하게 들어오는 그 완벽한 찬란을 쉬이 느낄 것이니 그대들은 언제나이고 그 빛을 맘껏 빛내주길 바란다.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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