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불가능성

by 올랜드


사람들은 꽤나 쉽게 말하곤 하는데, 그건 바로 이상적인 인간이다. 뭐랄까 답습한다고 해야겠다. 마치 오래전부터 배워왔다는 듯이 자신이 이렇게 살아왔다는 듯이 이상적인 인간을 논하곤 한다. 이상적이다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다르게 풀이해 봐야겠다. 단순히 그가 되고 싶은 사람을 찾는다. 자신이 생각하였을 때, 전에 했던 생각들을 그리고 선택들을 ‘이렇게 하면 더 좋았을 텐데’ 하며 좀 더 자기가 바라온 사람에 대해 논하곤 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꽤나 쉽게 말하기도 한다. 그건 바로 최악의 인간이다. 이것도 뭐라 해야 할까. 지지부진하게 반복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되어 온 하나의 시스템, 진리라도 있다는 것인지 모르지만 무언가 자신의 오랜 습관이 한 사람에 의해 부정되는 순간에 그 생각이 피어나는데, 조금 심각하게 말하자면 저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저렇게 사는데도 여즉 잘 살고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자기가 경험해오지 않은 무언가 어긋난 것에 대한 융합이다.(자기 안에서 그의 모습과 섞이어 그가 싫은 이유와 자기가 그와 비슷하게 행동하는 것을 바라보며 혐오하는 순간이 있다.) 즉, 저런 인간과는 삶에서 엮이고 싶지 않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듯 그것을 마음 중앙에 놓아두기도 하고, 혹은 흉물을 만들어 온갖 저주를 퍼부어 보기도 한다. 저주는 자신은 그렇게 살기 싫다는 일종의 고백이 되고, 경배함은 자신을 그곳으로 이끌어주길 바라는 일종의 염원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타자가 되고, 타자는 서로가 되고, 서로는 서로를 우상으로 만들고, 흉물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어째서인가. 고백하면 할수록, 염원하면 할수록 우리는 모두 흉물이 되고, 우리는 모두 우상이 되어 버린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떤 삶이 누군가에겐 편안해 보여 그의 삶의 태도를 궁구 할지라도, 누군가에겐 지루해 보여 그처럼 살았다간 재미없어서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저주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인간은 사실을 그대로 놓고 살아가지 못한다.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인간은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제 빛을 못 보고, 다른 사람들이 깎아내리는 것을 보지 못한다. 동시에 인간은 흉물스러운 어떤 것이 제 분수에 맞지 않는 지위를 가지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사실’이라 보기 어렵다. 그러니 인간은 사실을 그대로 놓고 살아가지도 못하고, 사실 외의 가치평가를 가지고도 살아가지 못한다.

결국 그래서 인간은 불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어떤 하나의 인간군상이 아닌 사실일지도 모르고 그저 가치에 대한 평가일지도 모르는 어떤 것을 가지고, 그니까 존재하는 지조차 불확실한 것을 가지고 세상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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