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 곁을 함께 쌓아가는 일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격언은 소가 스스로 가려운 등을 비비기 위해서는 적어도 언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혼자 가려운 곳을 긁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앞서 설명했듯 우린 모두 누군가의 ‘짓기’와 돌봄으로 살아간다. 친구와 동료, 가족, 선배와 스승 등 한 사람을 이루는 관계들이 서로의 삶을 잇는다. 삶의 주기와 환경이 변할 때마다 새로운 관계가 쌓여 서로 아랑곳하며 살아간다. 서로 비빌 언덕이 되어 준다.
그렇다면 온전한 개인이란 존재할까? 완전한 자유는 어떤 역할도, 책임도 없는 개인의 상태를 부르는 말일까? 개인주의가 마치 한 사람의 완전히 독립적인 상태를 지향하는 말처럼 사용되고 있다. 경쟁 시스템에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파편으로 쪼개지고, 나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정된 자원을 많이 독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운다. 그렇게 경쟁에 특화된 개개인이 각자의 몫을 챙겨가는 필사적인 노력이 개인주의라는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었다. 개인의 것을 유독 챙기지 않고 양보하는 사람들은 자원 경쟁에서 도태되는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어차피 인생은 혼자니까요’라는 문장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다. 아무리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해도 구성원들이 자신의 몫을 나누고, 역할과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공동체의 방식은 경쟁 구조 논리에 위배 되어 설득력을 잃는다. 공동체는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의 변방’일 뿐이었다. 학습공동체를 구성해 보고, 아랑곳하는 태도로 협력하고, 학습 과정에서 다양한 만남이 일어나는 학습 공원이 신기루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빌 언덕이 신기루처럼 닿지 않는 곳에 있다고 느낀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되풀이되는 경쟁 구조에서 개인주의라는 이름으로 개개인에게 짐을 지운다.
이 책에서 다룬 모든 이야기에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 주도성은 스스로 삶을 돌보고 비빌 언덕을 직접 만드는 힘이다. 특별한 경험을 마주하며 나답게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인 아지트. 일상에 단골과 이웃을 만들며 함께 일상을 채워나가는 마을. 직업 탐색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쌓아가는 진로. 내가 속한 집단과 공동체를 깊이 애정하는 자치.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직접 기획하고, 상상하면서 탁월해지기를 경험하는 프로젝트. 다양한 관계를 직접 조직하거나 참여하면서 함께 연대하는 태도. 기존 경쟁 구조의 판 자체를 온전히 탈바꿈시켰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변방을 일궈가는 우리는 직접 본다.
청소년기를 끝내고 성인이 된 꾸리들은 이내 곧 코디네이터가 된다. 청소년기 자신의 비빌 언덕이었던 다가치학교가 여전히 청년이 되어서도 비빌 언덕이 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이번엔 자기 자신도 누군가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겠다는 아랑곳이다. 몽실학교도 그랬다. 몽실학교가 운영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나고 매년 10명 이상의 몽실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코디네이터로 참여했다. 물론 성인이 되어 코디네이터로서 활동을 이어가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 언젠가 그들이 어디선가 자신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비빌 언덕을 찾아 기대어 있기를 바란다. 또 스스로 누군가의 비빌 언덕이 되기를 자처하는 아랑곳을 실천하고 있으면 좋겠다.
교육자이자, 예술가였던 요셉 보이스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카셀이라는 마을에서는 5년에 한 번씩 〈도큐멘타Documenta(기억)〉라는 이름의 현대미술 박람회가 열린다. 전범국가였던 독일에서 전쟁의 참사를 기억하고 인류를 위협하는 그 어떤 형태의 폭력과 혐오에 저항하고 성찰하는 전위적인 실험 예술이 펼쳐지는 장이다.
1982년, 7번째 〈도큐멘타〉 행사에 요셉 보이스는 ‘사회적 조각’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도심 한가운데에 1미터 정도 크기 현무암 비석 7,000개를 가져다 놓고, 그 옆에는 떡갈나무 묘목을 가져다 두었다. 그는 이곳, 카셀에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같이 심자고 제안했다. 첫 번째 나무는 요셉 보이스가 심었다. 떡갈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옆에 비석을 세웠다. 사람들은 어물쩍 외면하기도, 도시 경관을 해친다고 비난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가족들, 친구들, 연인들,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기부를 통해 나무를 분양받아 가면서 나무를 심고 비석을 세웠다.
마지막 7,000번째 나무는 1987년 8번째 〈도큐멘타〉 행사 기념식 때 심었다. 떡갈나무 7,000그루를 5년 만에 심었다. 안타깝지만 요셉 보이스는 1986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약 40년이 흐른 지금, 카셀은 7,000그루의 떡갈나무가 울창한 도시가 되었다. 처음 나무보다 컸던 비석들은 시간이 흘러 나무의 그늘로 가려졌고, 사람들이 함께 심었다는 증거이자 이야기로 후대에 전해졌다.
요셉 보이스의 조각, 예술 프로젝트로 도시 자체가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도시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 7천 개의 나무를 심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성, 행위가 그 자체로 작품이었다. 한 예술가의 상상력이 퍼져나가 세상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멋진 사례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요셉 보이스의 실험을 본받아 비슷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우리도 나무를 심고 있다. 몇 번째인지, 얼마나 더 오래 심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나무를 심는다. 아지트를 만들고, 터를 닦아 학습자가 무엇인가를 이뤄내는 경험을 해보고, 그 경험이 공동체를 지향하는 태도로 쌓이도록 판을 깐다. 아직은 학교 언저리에서 만들어가는 변방이지만, 이 나무들이 시간이 지나면 교육 현장을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낼 힘이 될 것이다.
적어도 교육 현장은 학습자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결투장이 아니라, 진로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 위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는 공원이자 함께 삶을 채워갈 공동체를 만나는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비빌 언덕 |
그러니 구석구석에, 곳곳에 나무를 심자. 누군가의 비빌 언덕이 될 숲을 만들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