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디네이터 역량과 전문성
| 전문성 |
전문성의 핵심은 공공의 인정이다. 어떤 영역의 전문성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 영역 자체가 중요하다고 공인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전문성은 공적인 체계 안에서 존재한다.
다가치학교에서는 매년 4월에 코디네이터를 뽑는다. 자기소개서와 서류들을 종합적으로 점수를 매기고 면접 점수를 합쳐 약 20명의 코디네이터를 선발한다. 교육활동, 청소년 자치나 프로젝트 활동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거나 청소년 시기 주도적으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매년 모집하는 인원수보다 더 많은 사람이 지원해서 코디네이터 선발을 위해 면접 심사관들과 운영팀은 치열하게 고민해서 20명을 선발한다. 이 작업은 8개월간 함께 다가치학교와 프로젝트 활동 판을 짤 동료를 뽑는 일이라 매년 심혈을 기울여 왔다.
청소년 교육,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온 사람, 관련 학과를 재학 중인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치학교를 찾아온다. 특히 청소년학 학생이나 사범대나 교대를 다니면서 교사를 진로로 삼고 있는 대학생들이 꽤 있다. 교육 분야가 전공이나 직업이 아니더라도 청소년이라는 대상에 관심이 있거나 교육활동에 참여해 보고 싶은 다양한 분야의 청년들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다가치학교가 위치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마을강사로서 교육활동을 해온 원숙한 선배들도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청소년을 만나고자 다가치학교 코디네이터를 지원한다. 그리고 꾸리로서 활동을 해온 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이제 다가치학교에서 코디네이터를 해보겠다며 스스로 역할을 바꿔 여젼히 다가치학교의 구성원으로 남는다.
다가치학교에서 1년 동안 매주 주말을 청소년들의 삶과 배움, 성장에 아랑곳하겠노라 선언하며 지원서를 넣은 사람들. 이들의 전문성을 어찌 점수로 평가할 수 있을까. 대신 다가치학교의 면접과 심사에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1번. 다가치학교에서의 활동을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가?
2번. 매주 주말 활동, 협의회 등 다양한 코디네이터 활동에 몰입할 전반적인 준비가 되었는가?
3번. 코디네이터 스스로 주도적인 태도로 활동하고 있는가?
애정으로 커질 기대감(1번), 장기간 활동을 끌어갈 수 있는 책임감(2번), 학습자들의 주도적인 경험을 이끌도록 코디네이터 크루랑 함께 도전해 보는 태도(3번)다. 매년 3~4명으로 구성된 면접 심사 위원단을 꾸린다. 그중에는 다가치학교의 청소년, 꾸리 대표가 심 사위원으로 참여한다. 꾸리 대표로 들어온 심사 위원은 얼마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지, 매년 면접 후일담을 코디네이터들에게 들으면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으로 꾸리 대표의 질문을 꼽았다.
코디네이터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아 하루에 3시간씩 평균 30회차 활동을 진행한다. 그것을 시간으로 환산해보면, 약 100시간 내외로 꾸리들과 직접 활동해야 한다. 활동 시간 외에도 매월 1회 정기 회의에 참여해야 하고 배우고 익혀야 할 것도 많다. 20시간의 필수 교육, 1박2일 연수, 자발적 독서 모임 등 이외에도 코디네이터가 의지만 있다면 학교와 연계하는 단기간의 활동에 참여하거나 방학 중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도 있다.
교육공동체 안에서는 학습이 끊임없이 연속으로 일어난다. 교육자는 그 안에서 경험을 쌓으며 성장한다. 또 서로 다른 케이스, 프로젝트 교육과정 사례를 아랑곳하는 코디네이터 크루의 토의 역시 학습을 촉진한다. 정해진 교과서 없이 교육과정을 끌어가는 코디네이터는 결국 경험으로 학습할 수밖에 없다. 이론은 분명 학습자와 교육 환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만, 정형화할 수 없는 현장의 특성상 다양한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활동의 질을 높인다. 분명 ‘잘’하는 코디네이터는 존재한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다가치학교에서는 코디네이터의 탁월함, 학습자들의 성향(태도), 활동 외 다양한 변수에 따라 프로젝트 활동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경계해 왔다. 어떻게 하면 유연한 교육과정 속에서 다가치학교 전체 활동의 평균적인 질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코디네이터 크루를 이루고, 자주 만나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아랑곳, 협력하는 계기를 만들어온 것도 이 고민 때문이었다. 코디네이터는 많은 역할과 책임을 짊어진다. 그럼에도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고, 또 새로운 교육의 변방을 세우는 일이라는 공감대가 있어 코디네이터 스스로 주도성을 발휘하면서 몰입할 수 있다.
이 책의 서두에 적어뒀지만, 교육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 개편안은 학습자 주도성이 가장 핵심이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선 가장 먼저 교사의 수를 줄여가며 소수의 교사가 학습자의 학력, 성장, 인성 등을 모두 책임져야만 하는 시스템을 무너뜨려야 한다. 학습자 주도 교육과정을 시행하라는 지침에 코디네이터라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면 교사는 결코 온전히 잘 가르치는 행위에 집중할 수 없다. 효율성의 논리를 교육에 적용해 학생 수 대비 교사 인원수를 통제하면서 사람의 자리를 늘리는 것에 참 인색했다. 학습자 주도성을 목표로 내건 이상 소수의 교사가 다수의 학생을 지도하고 통제하기 편한 교실의 논리가 아니라 학습 공원을 상상해야 한다. 다양한 역할을 가진 다수의 교육자들이함께 학습자의 학습 경험 전반을 설계하는 모델로 나아간다.
학습자가 주도하는 프로젝트 활동을 기획하고 학습자들의 주도성을 끌어내는 코디네이터는 아직 별도의 경험이나 경력을 인정하는 체계가 없다. 관련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정식 교육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프로젝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교육기관도 많지 않다. 설령 있더라도 대학생이나 청년에게 온전한 현장과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가치학교는 교육자가 되고자 하는 청년이 코디네이팅 경험을 쌓으면서 동료를 만나 탁월하게 성장할 수 있는 현장이 되길 목표로 삼는다.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고유해지고 ‘전문화’될수록 학교의 교육활동도 다양해질 것이라 믿는다.
교사처럼 고등 교육기관, 사범대나 교대에 학습 코디네이터를 양성하는 과정이 신설되고, 전문 자격화하여 학교의 교원으로서 인정한다면 어떨까. 지금까지 학습자 주도성을 연구한 수많은 교사와 대학교수, 또 활동 현장에 있는 코디네이터가 있기에 축적된 이론과 경험을 정리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몽실학교에서 일했을 당시, 몽실학교 사업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기도 도의원은 늘 하나의 문제를 집요하게 물었다. “검증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주민들에게 교육을 맡기고 그렇게나 높은 비율의 예산을 책정한다니, 길잡이 교사(코디네이터)의 전문성을 증명하세요!” 학습자 주도성을 고민하며 교육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코디네이터에게 몽실학교는 적어도 학교 방과후 강사 수준의 강사비를 마련했다.
그에 대한 책임으로 몽실학교는 코디네이터가 학습자의 주도적인 활동, 자치 활동을 촉진하는 어떤 노력을 해내는지를 설득하고 또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게 성과로서 증명해 내야 했다. 길잡이 교사(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것은 봉사활동이 아니라 교육활동이라는 것, 교육 체계 안에서 새로운 전문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가치학교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이 길잡이 교사, 마을 교사 등으로 불완전하게 불리는 명칭을 코디네이터로 정착시켜 전문 영역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교육과정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연수에 공을 들였다. 회의 구조와 코디네이터 활동을 지원하는 체계를 섬세하게 기획했다. 다가치학교에는 이미 3년 차, 4년 차까지 코디네이터를 이어가는 동료들이 있다. 예비 교사도 있다. 또 몇몇은 다가치학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청소년 활동 영역으로 뻗어나갔다. 앞으로도 다가치학교의 코디네이터 경력, 경험을 발판 삼아 주도적인 현장을 만드는 동료들이 많아질 것이다. 비록 지금은 방과후 강사 수준의 수당을 지급하지만 추후 학교의 정식 교원으로서, 교육 현장의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코디네이터의 전문성, 그리고 전문 영역으로서 코디네이터도 곧 변방에서의 인정투쟁을 마치고 중심에 변화를 만들 것이다.
이 현장에서 교육활동을 이어오며 믿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유독 우리가 서 있는 현장에서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현장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매주 주말을 청소년들과 활동하기 위해 비워두는 사람이라면, 공동체에서의 자치를 실현할 방법을 찾아가며 아랑곳하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좋은 사람이다. 서로 방식과 가치관, 생각이 달라도 청소년의 삶에 진심으로 아랑곳하는 마음만큼은 같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변화는 그러한 변방에서 시작된다.
좋은 사람이더라도 코디네이터로서 진행력, 기획력, 소통 능력, 그리고 이론과 가치, 성찰과 피드백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코디네이터의 전문성이 공인되면 자연히 이 역량들을 키울 수 있는 교육과 시스템이 안착될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활동 경력을 인정할 수 있게 요구하는 것도, 자격을 증명하는 시스템을 고민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활동이 전문 영역으로 인정받기 위함이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전문가로 소개하고, 호명되기 위함이다.